“780시간 공짜 노동”…간호조무사 실습생들 임금청구 소송
교육도 없이 온갖 잡무 떠넘겨
최고의 스승은 유튜브·인터넷”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이 5개월의 실습기간 동안 교육은커녕 무급으로 허드렛일을 떠맡았다며 임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780시간의 실습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이 ‘공짜 노동’ 문제를 제기하며 임금을 청구한 첫 사례다.
간호조무사 유모씨와 임정은씨,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등은 30일 오전 서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습생이 병원의 부족한 인력 충당을 위해 활용되고 병원의 온갖 잡일을 떠맡는 무료노무인력으로 전락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유씨는 2021년 5개월 동안 한 산부인과에서, 임씨는 2022년 한 정형외과에서 실습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보려면 의료기관에서 780시간의 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유씨와 임씨는 실습 과정에서 교육도 없이 무급으로 병원의 온갖 잡무를 떠안았다고 했다. 유씨는 “하루 수백명의 환자들이 오는 병원에서는 정말 많은 양의 설거지와 빨래가 생겨나는데, 이를 모두 나에게 떠안겼고 은행·약국 등 심부름까지 시켰다”며 “교육을 요청하면 바쁠 땐 바쁘다고 안알려주고, 환자가 없는 한가한 시간에 물어봐도 학생은 몰라도 된다고 하거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라는 답변만 했다”고 했다. 유씨는 “실습하면서 병원에서 가르친 것은 빨래, 설거지 등 잡무를 하는 루틴뿐이었으며, 실습기간 동안 저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은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이었다”고 했다.
임씨는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을 실제 경험하고 배울 수 있겠다는 설렘과 긴장으로 병원 실습을 시작했지만, 실습 중 했던 업무는 청소와 혈압·체온 재기, 환자 안내, 기본문항 작성, 문서파쇄, MRI 검사안내 등 단순업무였다”며 “780시간 동안 병원에 단순반복 노동을 제공하고 보니 실습기간이 너무 허무했다”고 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김진형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는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이 순수하게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종사자들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면 (판례상) 마땅히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법의 사각지대에서 근로기준법과 근로자보호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무임금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했다.
최서현 특성화고노조 위원장은 “보건복지부는 실습 기준을 정하고 관리감독하고 있는데, 실습생들이 노동착취당하는 현실을 모를 리가 없다”며 “공짜 노동이 중단되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장 나서서 간호조무사 실습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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