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논리에 사라지는 상생…서울 ‘도농상생 공공급식’ 위기

손지민 2023. 8. 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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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자치구와 농촌 지방자치단체가 일대일 협약을 맺고 어린이집 등에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는 서울시의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이 내년부터 학교급식 식재료를 공급하는 친환경유통센터 소관 업무로 통합된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상생이란 가치보다 운영의 효율성을 우선한 조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치구 공공급식센터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강제개편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달부터 “친환경유통센터와의 통합은 오히려 공공급식 이용 시설 및 식재료 공급 품목, 친환경 식재료 공급 비율 축소 등으로 이용 시설의 불편이 증가하고 급식의 질이 후퇴될 우려가 있다”며 개편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2017년 도입된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지난해 말 기준 12개 자치구 1591개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시설에서 이용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보도자료를 내어 개별 자치구의 공공급식센터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이 사업을 서울시 산하기관인 친환경유통센터로 통합 이관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편안은 즉각 현장의 반발을 불렀다. 학교급식이 주 사업인 친환경유통센터는 대농 중심의 대규모 공급체계로, 소규모·소포장 배송을 원하는 어린이집과 맞지 않는다는 게 반발의 이유였다. 어린이집만 센터로 통합되고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시설은 다시 공공급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윤 서대문구 공공급식센터장은 “규모가 작으면 주문량과 금액이 적어서 기존 급식시장에서 소외되기 쉽다”며 “급식시장에선 소규모 시설일수록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통합 이관을 추진하며 든 근거는 효율성이었다. 현행 시스템은 산지의 사정에 따라 같은 식재료 공급가가 천차만별이고, 일대일 계약을 맺은 산지에서 나오지 않는 품목은 별도로 구매해야 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였다. 각 자치구가 공공급식센터를 따로 운영하는 것도 비효율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대해 손성훈 송파구 공공급식센터장은 “가격에 문제가 있다면 농가의 생산비가 적정한지 검토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표준가를 맞춰놓고 이에 맞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몰아간다”고 꼬집었다.

일반 농산물에 대해 전수검사 체계를 갖춰 한주에 600∼650건의 안전검사를 시행하는 친환경유통센터와 달리, 표본검사를 하는 공공급식센터는 검사 횟수가 주 60건에 불과하다는 서울시 지적에 대해서도 공대위는 반론을 제기한다. 친환경유통센터든 공공급식센터든 일반 농산물은 전수검사, 친환경 농산물은 표본검사라는 기준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겨레가 확보한 ‘서울특별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학술용역최종보고서’를 보면, 친환경유통센터도 친환경 농산물은 표본 14건을 검사한다. 공공급식센터는 자치구별로 5건씩 표본검사(12개 자치구, 총 60건)를 한다.

어린이집과 학부모 등 이용자들은 현행 시스템에 만족한다는 의견이다.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이용 중인 송파구의 어린이집 원장 이아무개(46)씨는 “신선한 물건이 매일매일 조금씩 소량이라도 배송되고, 배송해주는 납품서에 온도까지 다 적어서 오는 점이 너무 좋다”며 “지금의 공공급식에 만족해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2살 아이를 공공급식 이용 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모 임아무개(33)씨도 “지금의 어린이집 급식이 집에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해줘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구체적인 개편 방식과 산지 계약 체계, 예산 등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농상생에 따른 공공급식은 변함없이 간다는 것이 서울시의 방침”이라며 “불편하고 문제점이 발생했던 부분을 개선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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