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만나다

김용출 2023. 8.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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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윤옥 ‘이청준 평전’ 출간
우수한 성적 불구 서울대 독문과 진학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 공모 등단
돈과 권력 아닌 ‘문학적 지배의 길’ 선택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축제’ 대표작
영화로도 제작된 ‘서편제’ 큰 사랑받아

그해 가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군 집과 땅, 재산을 모조리 탕진한 둘째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형제 가운데 살아 있는 유일한 남자로서 가족의 부양을 책임져야 했다.

당장 둘째 형의 장례비용부터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재직 중이던 잡지사 사정이 어려워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대학 동창이던 소설가 박태순에게 들어온 원고청탁을 넘겨받아서 작품을 썼다.

젊은 소설가 이청준은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두 양상을 상징적으로 포착한 단편소설 ‘병신과 머저리’를 1966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했다. 소설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국전쟁의 실존적 고통을 간직한 형과, 절실한 체험도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동생 ‘나’를 통해 인간 실존의 고통 근원과 그 극복 양상을 형상화했다.
동생인 ‘나’는 부업으로 화실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가다. 어느 날 의료사고로 소녀가 죽은 뒤 병원 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는 의사인 ‘형’의 소설을 읽게 된다.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하던 주인공과 김 일병, 오관모 이등중사 세 사람의 이야기다. 소설은 오관모가 냄새 때문에 더 이상 김 일병과 남색을 할 수 없게 되자 김 일병을 죽이려 하면서 균열이 생긴 상태에서 중단돼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없던 나는 형의 방에 들어가 주인공이 김 일병을 처치하고 오관모와 함께 탈출하는 것으로 형의 소설을 마무리한다. 형은 오해하고 있다며 김 일병이 오관모에 의해 사살되지만 주인공이 다시 오관모를 사살하는 것으로 소설을 고친다. 형은 비로소 병원 일을 시작하지만 얼마 뒤 오관모를 만났다며 소설 원고를 불태운다.
소설에서 병신은 한국전쟁의 아픔과 죄책감으로 인해 일상적 삶을 포기하려는 형이고, 머저리는 절실한 체험도 없이 자신의 아픔이나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동생을 의미한다. 이듬해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그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작가적 지위를 굳히게 됐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이청준 작가의 평전이 전집 간행을 주도한 이윤옥 문학평론가에 의해 출간됐다. 사진은 생전의 작가 모습과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서편제’와 ‘밀양’ 포스터. 세계일보 자료사진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병신과 머저리’부터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을 거쳐 토속적 세계를 미학적으로 그린 ‘서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었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의 평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톺아보고 전집 간행을 주도한 이윤옥 문학평론가에 의해 집필됐다.

이청준은 왜 문학의 숲,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까. 작가로서 주요한 변곡점은 무엇이었고, 작품 세계는 어떠했을까. 신간 ‘이청준 평전’을 중심으로 작가 이청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그가 쓰는 세계로 들어온 것은 중학 시절부터였다. 광주서중 2학년생 이청준은 교지에 콩트 ‘시험 날’을 실었다. 콩트는 병남이라는 학생이 시험 보는 날 부정행위를 하려고 온갖 준비를 했지만 실패하고 자성한다는 내용. 이듬해 다시 교지에 전남방직을 탐방한 기사와 함께 짧은 소설 ‘눈과 그 소녀’를 실었다.

명문 광주일고에서 전체 수석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지방 수재들이 흔히 가는 법대가 아닌 서울대 독문과로 진학했다. 그것은 출세의 길이 아닌 ‘문학의 길’이었다. 그는 간절히 돈과 권력을 원했지만, ‘지배’와 ‘복수’라는 관점에서 ‘문학적 지배의 길’을 택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청준은 자기식의 지배를 완성하는 길로 예술을 택했다. 그는 사람을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유로, 다시 말해 문학으로 지배하기로 결심했다. (고교 시절 과외를 했던) 현씨 집을 포함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겠다는 무서운 야망이 그로 하여금 대학의 전공 학과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1939년 전남 장흥에서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 이남석과 유복한 양반가 딸인 김금례의 5남3녀 가운데 4남으로 출생한 이청준은 친구의 투병과 죽음을 모티브로 존재의 막막한 상황과 자기회복의 소망을 그린 단편소설 ‘퇴원’으로 1965년 ‘사상계’ 신인작품 모집에 당선돼 등단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여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축제’, ‘신화의 시대’ 등을,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조율사’, ‘이어도’, ‘눈길’, ‘서편제’,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 17편의 장편소설과 155편의 중단편 소설, 1편의 희곡을 창작했다.

많은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석화촌’, ‘이어도’,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이 잇따라 영화로 제작됐고, ’서편제’와 ‘벌레이야기’도 각각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제작돼 큰 사랑을 받았다. 동인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이청준은 시대와 역사 현장에서 행동하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시대와 역사에서 한 발짝 비껴서서 바라봤다고 할까.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당연히 가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적 성취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시대와 현장에만 매몰되고 문학적 성취를 놓치면 ‘알리바이 문학’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의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모두 거론을 하려 들고, 그가 그의 시대의 문제들과 문학인의 책임에 등한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찬양받을 만한 문학이요, 문학인의 태도임을 그의 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성급하게 소망한다. 이게 바로 알리바이 문학이라 할 만한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즉, 소설은 하나의 사회적 징후로 인식돼야 하는 반성적 장르라는 것이다. “소설이 한 시대와 사회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자 할 때는 그것은 무엇 무엇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기보다 그 소설 자체가 그 징후의 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가난이 그 시대의 문제일 때 그것은 가난에 대해서 말한다기보다 소설 자체가 그 가난에 관계된 문젯거리의 한 증상으로 보여지기를 소망한다.”

이청준은 1966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상계’에 입사했고, 이듬해 ’여원’사로 이직했으며, 1971년에는 ‘월간 지성’ 창간에 참여했다. 1999년 순천대 문예창작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2008년 7월 삼성서울병원에서 6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죽기 두 달 전, 그는 자꾸 사람이 겹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이윤옥은 전했다.

“사람의 숫자가 자꾸 헷갈려요.”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과 기억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을 동시에 봤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들도. “요새는 사람들 뒷모습만 보여요. 속까지 훤히 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했던 시인, 수십 년간 친교를 이어온 평론가, 평소 형으로 부르며 살갑게 굴던 후배 소설가….

평전에는 이청준의 주요 변곡점이나 현대사의 주요 사건, 이것들이 작품에 미친 영향 등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소설가 김승옥과 평론가 김현 등 유명한 작가들의 모습이나 이들과의 관계도. 길고 치열한 숙고와 결론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해 버리는 김승옥, 문학적 논쟁을 자주 벌인 김현, 삶과 처신이 깔끔해 ‘학’ 같은 황순원, 다양한 사람과 어울렸던 김동리….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결혼 전에 ‘여원’ 직원들과 함께 충무로 대원호텔에 가서 가불받은 월급을 탕진할 정도로 파친코에 몰입하기도 했고, 결혼해 생활이 안정되자 컴퓨터를 통해 주식 투자를 하고 주위에도 투자를 권장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하루 일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간단히 밥을 먹은 뒤 서재로 들어가 주식창과 씨름하다 나와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 소설을 썼다. 저녁에는 책을 읽고 늘 술을 마셨다. 그는 주로 집에서 술을 마셨지만 약속이 있는 날에는 밖에서 마셨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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