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진 작가 “힘들 때면 일단 만화나 하나 그리자고 생각해요"

김경미 기자 2023. 8.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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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2023 부천만화대상 수상
인기 웹툰 '카산드라'는 “내년 초쯤 완결 목표”
[서울경제]

지난해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후 책으로도 출간된 ‘도박 중독자의 가족(사진)’은 남편의 셋째 동생이 주식 중독에 빠지면서 함께 고통을 겪게 되는 가족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개인투자자가 어떻게 도박 중독자가 되는지, 그 과정에서 형제와 시어머니 등 가족들이 ‘공동 의존’이라는 괴로운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되는 모습 등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특히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조차 중독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과정을 세심히 묘사하며 이런 불행이 결코 누군가의 끔찍한 악의로 비롯하는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에 올해 부천만화대상 선정위원회는 “한국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를 찌르면서도 진솔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이라고 호평하며 올해 대상의 영예를 안겼다.

수상자인 이하진 작가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어색한 소감을 말하면서도 “솔직히 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고민하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고 했다. 작품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묘사되지만 도박 중독자 가족이 겪는 고통을 작가 역시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일 테다. 만화 속 주인공인 며느리이자 형수인 ‘하진’은 주식 실패로 시동생이 곤란을 겪는 상황에서 ‘도박 중독을 고치려면 절대 금전적으로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다가 시댁 식구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다. 작가는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여기에 쓰인 이야기들은 도박 중독자 가족들의 일반적인 코스라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은 서로 감추는 게 많기 때문에 상황을 모두 알기가 힘들 뿐더러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깥에 내보이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고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만화를 그린 것은 잘한 일이었다. 이 작가는 “내게 만화를 그리는 건 언제나 마음의 화를 풀어주는 것이어서 감사한 일”이라며 “독자들이 ‘우리 집 일 같다’고 공감해주거나 혹은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이 됐다는 분들을 볼 때면 그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웹툰 카산드라 /출처=카카오웹툰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작가의 대표작 ‘카산드라’를 2014년 휴재한 후 8년 만에 다시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다시 손을 풀고 연습을 시작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작품이기도 했다. 2012년 카카오웹툰에서 정규 연재를 시작한 웹툰 ‘카산드라’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카산드라는 여성의 의견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작가는 연재를 중단했던 이유에 대해 아이와 가족을 돌보는 시간을 우선했다고 설명했다. ‘카산드라’의 연재 재개 전 ‘도박중독자의 가족’을 먼저 그린 또 하나의 계기도 “오랫동안 기다려준 독자들께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카산드라’ 연재를 오랜만에 재개한 만큼 당분간은 연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완결은 내년 초로 내다보고 있다. 출판이나 해외 수출 등도 생각은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다. 그는 “카산드라를 출판용으로 수정하려면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 미뤄두는 중”이라며 “영상화 등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으니 작품의 해외 수출이 이뤄진 후 그때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데뷔 시점부터 따져보면 올해로 20년차를 맞이하는 작가지만 지금껏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으로는 좀 더 집중해서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끼리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호다(HODA)’라는 이름의 법인도 하나 세웠다. 이 작가는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만화 하나 그리고 죽자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화를 그리다 보면 또 마음이 좋아져서 살고 싶어지곤 했다”며 “앞으로도 그렇게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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