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폐지, 재초환 완화… 도대체 언제 되나요”
2년 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내년 2월 입주 예정이던 직장인 김모(47)씨는 지난 4월 현재 사는 전셋집의 계약 기간을 2년 연장했다. 올 초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실거주 의무를 없애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딸의 고등학교 졸업 시점에 맞춰 새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것이다. 실거주 의무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에 청약 당첨된 경우, 주택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2~3년간 거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주택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6개월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입주 때까지 실거주 의무가 남아 있으면 기존 전세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며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분양 대금을 못 낼 수도 있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등 부동산 정책들이 국회 입법 지연으로 1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주택 시장이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부동산 현안들도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청약을 준비 중인 무주택자나 재건축을 추진하던 조합은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행정 집행을 못 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부동산 정책은 유독 ‘정치 바람’에 지나치게 좌우되면서 실수요자 등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 국회에서 낮잠
정부는 올해 초 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꽁꽁 얼어붙었던 상황이라 야당도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5월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 심사를 끝으로 3개월째 논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정부 발표 8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첫 관문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불확실해지면서 청약 당첨 후 입주를 기다리는 66개 단지 4만4000여 가구의 실수요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회사원 정모(41)씨는 “새집을 전세 놓고, 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모두 헝클어졌다”며 “새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 법이 통과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작년 9월 발표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완화도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못 넘으면서 1년 가까이 시행이 밀리고 있다. 초과 이익 환수제는 재건축에 따른 시세 차익을 일정 부분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재건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작년 9월 초과 이익 환수제 면제 대상(시세 차익)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고, 부과율을 산출하는 구간의 금액대도 확대해 재건축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이후 야당에서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혜택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국토부는 부과율 산출 구간을 조정해 부담금을 소폭 높이는 절충안을 내놨다. 하지만 아직 국회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면제 구간에 걸린 41개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사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서초구 반포현대 재건축과 은평구 연희빌라 재건축은 담당 구청들이 법 개정 가능성 때문에 아직 부담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혼란만
부동산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것은 정치권이 부동산 정책을 실수요자 입장이 아니라 지나치게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가격 급등락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지만, 관심이 식으면 뒷전으로 밀쳐두거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것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의 경우도 당초 야당은 별 이견이 없었지만,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지자 ‘갭 투자’에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로 돌아섰다.
법안이 장기간 국회에서 발이 묶이면서 시장 상황이 바뀌어 해당 정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치권이 부동산 정책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판단하면서 정작 실수요자들의 입장은 외면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한 부동산 정책들이 제때 시행되지 못해 시장만 혼탁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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