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의 강풀 “‘원작보다 낫다’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인터뷰]

김한솔 기자 2023. 8. 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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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원작 웹툰에 직접 각본까지
초반 하이틴물·중반 과거로 역순
“‘무조건 재미있어라’가 목표였다”
<무빙> 원작자이자 이번 드라마 각본을 쓴 강풀 작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강풀(49)은 ‘웹툰 1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다. 멜로, 공포, 미스테리, 판타지까지 장르를 초월한 장편 웹툰을 여러 편 발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좋은 일을 하려는 이야기’라는 따뜻함을 바탕으로 한 그의 웹툰은 매번 큰 인기를 끌었다. <아파트> <순정만화> <이웃사람> 등 여러 편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화된 작품들은 웹툰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언제나 ‘원작이 낫다’는 평가가 따라왔다.

<무빙>은 다르다. 강 작가가 직접 각본을 써 20부작 시리즈물로 제작된 <무빙>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중 가장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강 작가를 2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다음은 강 작가와의 일문일답.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무빙> 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무빙> 공개 후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원작보다 낫다.’ 웃어야 될 지 말아야 될 지…. 처음 들어봤어요. 영화화 경험이 몇 번 있는데, 이번엔 대부분 원작보다 좋다는 반응이에요. 내가 그렸던 만화한테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기분은 좋죠.”

- 직접 각본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

“영화화 할 때 항상 벽에 부딪히더라고요. 처음엔 다들 좋다고 영화 계약하는데, 두 달쯤 뒤에 전화가 와요. ‘이상하다’고. 만화를 영화로 만들려면 축약하거나 변형해야 되잖아요. (영화) 시간에 맞춰야 되니까요. 영화화할 때는 시나리오가 와도 잘 보지 않았어요. ‘영화는 감독님꺼다’ 라는 자세로 했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호흡이 길잖아요. <무빙>에 대한 제 애정도 남달랐어요. 다른 분이 쓴 시나리오를 보고 의견을 냈는데 그런거 있잖아요. 축구보다가 ‘니가 한 번 뛰어봐’ 처럼 직접 한 번 해보겠느냐고 제안이 왔어요. 역으로 ‘한 번 써볼테니 보고 판단해달라’고 제안했어요. 한 2~3달 정도 걸렸어요.”

(위에서부터) 진천(백현진), 나주(김국희), 봉평(최덕문)은 웹툰 원작에는 없던 캐릭터들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무빙> 각본 작업을 하면서는 오히려 만화였기 때문에 덜어내야 했던 스토리들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었다.

“기자들 마감 스트레스 받잖아요? 만화가들도 그래요. 매주 월·목 마감 날짜에 맞추려면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면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더 재미있을 수 있는데 만화에선 못했던 것들이 있어서, 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만화는 어시스턴트가 있긴 하지만 제가 모든 걸 책임지는 구조잖아요. 망해도 저 혼자 망하면 그만이었는데, 이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거니까…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 만화에서는 덜어냈는데, 드라마에선 넣은 것이 전계도나 프랭크 같은 캐릭터인가.

“네. 그리고 나주, 봉평, 진천(<무빙>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의 암호명.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들이다)도 새로 나왔죠. 그리고 한 명의 빌런이 더 추가됐어요. 히어로팀을 너무 강력하게 만들어서 빌런들과 대결을 할 때 균형이 안 맞더라고요.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빌런)로 거의 후반부에 한 명이 또 나옵니다.

1~7화까지 자칫하면 하이틴 멜로물로 갈까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전계도와 프랭크를 넣었어요. 급조한 캐릭터는 아니에요. 프랭크는 <히든>(<무빙> 세계관의 완결판.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에 나올 인물을 앞으로 끌어왔어요. 전 전계도에 대한 애정이 강해요. 봉석이 같은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 없이 자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와 자식 세대 사이에, 중간 세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드라마화된 <무빙>에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인 전계도(차태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갑자기 등장해 초능력자들을 살해하는 프랭크(류승범)와 그에 맞서 싸우는 장주원(류승룡).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재미’요. 고민도 많았어요. 제가 만화를 20년 넘게 그렸는데, 그동안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은 더이상 ‘서사’를 보지 않더라고요. 그냥 줄거리를 보죠. 저에겐 인물들의 서사가 너무 중요했어요. 이야기란 결국 인물이 사건을 만나 결말로 가는 건데, ‘사건’은 누구나 쓸 수 있더라고요. 소재니까. 결국 중요한 건 인물이죠. 인물의 서사를 다 풀어내면 사람들은 지루해할 텐데, 그걸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재미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재미있어라’가 목표였어요.”

- ‘안기부’라는 설정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통할 수 있을지 고민은 없었나.

“‘안기부’라는 이름을 요즘은 잘 모르더라고요. 픽션이긴 하지만 한국 근대 역사를 보면 ‘한국형 히어로’가 뭔지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안기부를 넣었어요.”

비행능력자인 김두식(조인성)과 초인간적 오감을 가진 이미현(한효주)의 데이트는 남산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이루어진다. 강풀 작가는 안기부가 남산에 있었던 것에 착안해 원작의 ‘추어탕집’을 드라마에서는 남산 돈까스로 바꿨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캐스팅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견을 냈나.

“성인 배우들 캐스팅 과정에는 다 참석했고, 의견도 많이 냈어요. 배우들에게 직접 전화도 많이 했어요. 차태현, 김성균, 문성근, 류승범, 박희순 배우께는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안한대요. 소속사한테 이야기한다는데 제가 이 일이 처음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게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캐스팅이 순조로웠어요. 류승범 배우는 제가 류승완 감독(류승범의 형)과 친하거든요. 프랭크라는 캐릭터를 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의 느낌이 나면서, 영어도 잘해야되는데, 좀 이상하게 하길 바랬어요. 류승범밖에 생각이 안났어요. 영상통화로 부탁하고, 카카오톡으로 대본 보내고. 장고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1주일 만에 ‘형 할게요’ 해서 제가 더 놀랐어요. 너무 고마웠죠.”

무한재생능력자인 주원의 딸 희수(고윤정)는 17대1로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무빙>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화부터 7화까지는 초능력을 물려받은 아이들의 ‘현재’, 8화부터는 그 부모들의 ‘과거’ 이야기다. 마지막 파트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나온다. 회상 장면으로 과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두세 편이 통째로 한 시대를 다루는 특이한 방식이다. 강 작가는 이 설정을 위해 제작진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제작할 때 가장 많았던 의견은 ‘시간 순서대로 가자’는 것이었어요. 어떤 드라마 제작진들도 다 똑같이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안기부에서 시작해 고등학교 나오는 식으로…. 전 끝까지 반대했어요. 전 경험을 해봤거든요. <무빙> 웹툰을 연재할 때도 초반에 반응이 별로였어요.

고집을 부렸던 이유는 시간 순서대로 가면 미스테리 구조가 사라지기 떄문이었어요. 학생들 이야기가 중간에 나오면 갑자기 너무 평화로워서 텐션이 떨어질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만 앞에 나오지만 어쨌든 마지막과 연결되거든요. 서사를 위해 양보를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알아요. ‘아 이거 지루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보다는 전체를 보는게 작가라고 생각해요. 고맙게도 제작진, 감독님이 이해를 해주셨어요. 굉장히 큰 모험인거죠. 거액(약 650억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인데, 앞부분을 하이틴 멜로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모험이었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10~11화에서 무한재생능력자인 장주원(류승룡)은 여관과 골목길에서 100명이 넘는 조직폭력배들과 싸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제작비의 규모도 크고 ‘<무빙> 망하면 디즈니플러스 망한다’는 말도 있었다. 부담은 없었나.

“가장 고민했던건, 저는 막 저지르고 싶은데 ‘이걸 제작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였어요. 디즈니플러스가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은 ‘1.5배속’이 되는데, 디즈니는 안되더라고요. 이제는 창작자의 의도보다 구독자의 의견이 더 중요해졌어요. 제가 OTT 8개를 구독하는데, 1.5배속으로 보는게 이해가 안됐어요. 내가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 시대를 못 쫓아가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빙>을 공개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어요. 1~7화를 하나로 풀고, 8,9화가 같이 나가잖아요. 8,9화를 합치면 1시간 40분, 영화 한 편이에요. 매주 하나씩의 영화를 발표해보자는 마음으로 했거든요.”

- 액션의 수위가 높다. 18세 관람가를 처음부터 염두했나.

“네. 15세 관람가가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표현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장주원이라는 캐릭터예요. 장주원은 재생능력자인데 그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됐어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주원은 엄청 잘싸운다기보다 막 싸우잖아요. 표현에 한계를 둬서 수위를 낮추는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어요. 저도 당황하긴 했어요. 글로 ‘뼈가 부러진다’ 라고 쓰는 거랑 실제 보는 건 다르더라고요. 여기서만큼은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고,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 각본에 주석을 달아 설명을 했다고 들었다.

“기존 드라마 각본들을 봤는데 저랑 안 맞더라고요. 빨리 배워서 그렇게 쓸 자신이 없었어요. 제 각본은 그림 그리는 식으로 썼어요. 대사보다 지문이 더 많은 경우가 있어요. 감독님께는 내 생각은 이런데, 각본에 얽매이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각본은 내비게이션이고, 목적지만 잘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길게 쓴 것일 뿐이라고요.”

강풀 작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극 초반에 봉석에게 엄마가 ‘자기 능력을 뽑내는게 히어로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히어로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 대사 뒤에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실제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해주는게 공감이잖아요. 엄청 힘이 세고 이런 것보다도, 사람으로 살면 공감이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생각해요.”

- 웹툰 아닌 오리지널 각본을 쓸 생각도 있나. <히든>은 언제 나오나.

“제 앞날을 제가 모르겠어요. 외려 머리를 많이 비우려하고 있어요. 9월21일에 한꺼번에 <무빙> 남은 이야기가 풀리는데, 그 이후에 제 행보가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나부터 구해야···괴물·영웅 아닌 인간의 이야기 ‘무빙’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8211449001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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