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기업가치 산정에 숨겨진 그들만의 꼼수... 삼프로TV도 불안하다

이인아 기자 2023. 8.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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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발기인·합병 법인만 동의하면 ‘좋은 일’
미국도 버진갤럭틱·니콜라 투자자 피해에 관리감독 강화
스팩 합병 결정한 삼프로TV, 고평가 논란에 불안한 스팩 투자자들

“스팩 합병 상장으로 이득을 보는 주체는 발기인(스폰서), 증권사, 피합병법인(합병 대상) 딱 셋뿐이다. 합병만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부실한 기업이라도 일시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든 뒤 스팩에 붙이려고 한다. 몸값 뻥튀기도 다분하다. 피해는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는 개인주주에 전가된다.”

올해 들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합병 시도 또한 급증하는 가운데, 스팩 합병 과정에서 진행되는 비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산정 방식이 불투명해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상장과 달리 비교군이 없어 이해관계자 간 합의에 따라 몸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손민균

28일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스팩은 총 82개다. 스팩은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증시에 상장된 페이퍼컴퍼니를 의미한다. 여기에 알맹이인 합병 대상을 붙여 우회상장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다. 비상장 우량기업의 상장을 활성화하고, 개인투자자의 인수합병(M&A)시장 참여를 도모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취지와 달리 직상장하기 어려운 애매한 기업들만 문을 두드리는 시장이 됐다. 스팩 구조상 어떤 기업이라도 합병만 성공하면 이해관계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에 재무구조, 사업성을 따져 우량한 기업을 유치하기보다 부실해도 합병 성공 의지가 높은 기업을 접촉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스팩 상장 과정에서 증권사는 수수료를 두 번 챙긴다. 통상 증권사는 여러 기관투자자와 공동 발기인으로 스팩을 만든다. 스팩이 상장하면, 증권사는 공모 금액의 일정 부분을 인수 수수료로 받는다. 이어 합병 상장에 성공하면, 합병 대상에게 컨설팅 명목으로 자문 수수료를 받는다. 증권사는 스팩을 많이 상장시켜야 돈을 번다.

스팩 발기인은 앉은 자리에서 두 배 이익을 얻는다. 발기인으로 참여 시 스팩 공모가(2000원)의 절반인 1000원에 공모주를 받을 수 있다. 합병에 실패할 경우 7~8%가량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절반 이상의 스팩이 합병 성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실 리스크는 그리 크지 않다.

직상장 문턱을 넘지 못한 기업에는 상장 자체가 큰 이득이다. 우선 직상장보다 유리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스팩 합병에서 합병 대상의 기업가치를 정할 땐 비교군을 제시하지 않고, 절대 평가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합병 대상, 기관투자자 간 합의가 최우선이다. 시장 관계자들이 반대하지 않을 수준의 기업가치만 내놓으면 된다.

사진=이브로드캐스팅

최근 논란이 되는 기업은 NH스팩25호를 합병키로 한 이브로드캐스팅(삼프로TV)이다. 이브로드캐스팅은 합병으로 얻게 되는 공모 조달 자금이 50억원(기존 스팩의 보유자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브로드캐스팅 주당 평가액 3만4623원을 기준으로 김동환 이브로드캐스팅 대표의 지분(31.04%) 가치만 약 758억원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브로드캐스팅의 현재 기업가치는 직상장으로는 절대 인정받지 못할 기업가치”라며 “공모가 밴드를 그 정도로 썼다면, 금융감독원이 바로 반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풀려진 기업가치는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기업가치가 합병 대상에 유리하게 책정되다 보니 상장 후 주가가 연일 하락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올해 스팩 합병 상장한 10개 기업 중 기준가보다 주가가 오른 곳은 슈어소프트테크, 라온텍 등 두 곳에 불과하다. 스팩을 아예 청산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개인이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해 합병을 부결시키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합병 결의가 취소된 스팩은 총 7개다.

내부자들만 상당한 차익을 챙기면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스팩 사기’가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늘어나자 미국에서는 스팩에 대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팩을 통해 우회상장한 460여개 회사에서 제출한 내부자 주식 매도 공시를 분석한 바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내부자들이 주가가 붕괴하기 전 220억 달러(약 29조원)어치 주식을 판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미국 사모펀드 플래티넘에쿼티의 톤 고어스,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전기트럭업체 니콜라 창업자 트레버 밀턴 등이 포함됐다.

결국 스팩 합병 상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건 개인투자자다. 개인이 인수합병 시장에 참가할 수 있다는 명분과 달리 정보 비대칭성이 심해 실제 이득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여서다. 다만 스팩은 상장 후 3년 안에 기업과 합병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에 공모가 기준의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돌려준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만약 올해 기업공개가 뜸하다 싶으면 증시에 스팩이 더 많이 상장되는 경향이 있다”며 “직상장은 수요예측을 진행하지만 스팩은 주주들이 합의만 해주면 합병이 되기에 좋은 기업이 상장해야 한다는 유인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스펙 합병도 철회되는 게 있어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지만, 직상장보다는 훨씬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프로TV 기업가치가 한국경제TV(1400억원)보다 비싸고 YTN(3100억원)과 비슷하다는 걸 누가 인정하겠느냐”며 “기존 주주들의 자금 회수를 위해 상장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결국 다른 시장 참여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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