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베성 올라 ‘사랑스러운’ 가르가네가를 맛보다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8. 2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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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미네랄 뛰어난 이탈리아 대표 화이트품종 가르가네가의 고향 소아베/고색창연한 성벽 문 통과하면 중세시대로 점프/전통 거부 ‘수퍼 소아베’ 창조한 안셀미/한그루당 3∼4송이로 줄여 품질 혁신

소아베성.
지천으로 깔린 카모마일 밭에 서 있나보다. 사정없이 비강을 파고드는 짙은 사과향과 허브향의 아로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일상의 번잡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몸과 마음은 신선한 꽃향기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로나에서 20분을 달리면 닿는 이탈리아 베네토주 최대 화이트 와인산지 소아베(Soave) 마을로 들어서면 팜므파탈 같은 아찔한 가르가네가의 유혹을 참기 어렵다.
이탈리아 주요 와인산지. 와인폴리
안셀미 가르가네가 와인 산 빈첸조와 카피텔 크로체.
◆봄날처럼 꽃향기 흩날리는 가르가네가를 아십니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을 꼽으라면 가비(Gavi)와 가르가네가(Garganega)이다.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드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와 ‘와인의 여왕’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한 피에몬테에서 생산된 화이트 품종이 바로 가비다. 그런 가비와 쌍두마차를 이루는 품종이 베로나의 위성도시 소아베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가르가네가 품종이다.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지만 보통 소아베의 가르가네가를 좀 더 높게 평가한다. 가르가네가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생산되지만 소아베의 가르가네가는 좀 특별하기 때문이다. 가비나 다른 지역 가르가네가보다 미네랄과 꽃향기가 훨씬 풍부한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카시아나 인동초와도 비슷하면서도 좀 더 식물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데 카모마일 같은 허브향과 말린 국화향, 백후추향이 도드라진다.

가르가네가. 인스타그램
소아베마을 와인홍보 광고판.
소아베성.
보통 화이트 와인은 생산된 해에서 2∼3년안에 소비하고 길어야 5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가르가네가는 숙성잠재력도 아주 뛰어나 10년은 물론 20년도 끄떡없이 버틴다는 점도 가르가네가의 가치를 높이는 매력 포인트다. 매우 뛰어난 산도 덕분이다. 갓 출시된 어린 소아베는 레몬, 사과의 시트러스향과 복숭아향이 지배적이지만 병에서 익어 갈수록 멜론, 파인애플, 말린 오렌지 껍질이 더해지고 아주 오래 숙성된 가르가네가는 꿀향까지 발산된다. 그야말로 고혹적이고 치명적 매력으로 무장한 영화속 여주인공 팜므파탈을 그대로 닮았다.
소아베 성벽.
소아베성 입구 포도압착기.
소아베마을 풍경.
소아베 마을에 도착하자 와인의 도시를 찾은 여행자를 반기듯, 거리 곳곳에 와인을 홍보하는 광고판이 즐비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거리의 와인바와 레스토랑은 하나둘 정겨운 불을 켜고 오늘도 행복한 시간을 추억으로 남길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이 마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또 하나있다. 거대한 요새처럼 쌓은 소아베 성이다. 언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높은 성벽이 완전히 에워싼 성의 규모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성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튼튼히 졌다. 덕분에 베로나에 차를 달리다보면 소아베 성의 장대한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소아베 성 중앙 통로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중세시대로 점프한다. 포도즙을 짜던 거대한 나무 압착기를 지나면 경사로를 따라 시간이 멈춘 듯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놓였다. 와인샵과 와인바,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안셀미 발효탱크.
안셀미 셀러.
◆전통을 거부한 ‘수퍼 소아베’ 안셀미

소아베 와인은 정확히 소아베 마을과 인근 몬테포르테 달포네(Monteforte d’Alpone) 마을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통칭한다. 토착품종인 가르가네가 품종 비율이 최소한 70%를 넘어야하며 국제품종 샤르도네나 피노 비앙코,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를 섞어서 만든다. 베네토주 화이트 와인 생산량의 30%, DOC 등급 와인의 50%를 차지할 정도니 소아베의 화이트 와인 생산량은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대량생산하는 저가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했는데 이를 완전히 바꿔놓은 생산자가 ‘수퍼 소아베’로 유명한 안셀미(Aselmi)다. 토스카나 해안 볼게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수퍼 투스칸’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지통제규정인 DOC나 DOCG 마크를 병에 부착하려면 포도 품종 비율, 양조 방식 등 지역마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 만들어야한다. 하지만 이런 구속이 싫어 자유롭게 만들었는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으로 등극한 것이 바로 사시카이아, 오르넬라이아 같은 수퍼 투스칸이다.

와인병으로 예술작품을 꾸민 안셀미 셀러.
로베르토 안셀미. 인스타그램
안셀미도 비슷하다. 소아베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떼루아로 소문이 지자한 싱글빈야드 카피텔 포스카리노(Capitel Foscarino)와 카피텔 크로체(Capitel Croce)에서 최고의 소아베 와인을 만들지만 정작 병에는 소아베 DOC 표시가 없다. 와이너리 오너 로베르토 안셀미(Roberto Anselmi)가 2000년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소아베와인협회에 새로운 재배와 양조 방식 도입을 요청했지만 묵살 당하자 협회를 탈퇴하고 스스로 와인 등급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안셀미 포스카리노 포도밭. 인스타그램
안셀미 셀러 작품들.
당시 소아베 와인이 인기를 끌자 생산자들이 대량 생산하면서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가격 역시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소아베의 뛰어난 떼루아에서 훨씬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로베르토는 포도나무 식재 밀도를 ha당 6000그루로 대폭 높였다.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으면 생존을 위해 영양분을 찾아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다양한 토양 성분과 미네랄을 끌어 올린다. 또 대량생산에 적합한 퍼골라(Pergola) 재배 방식을 버리고 프랑스 부르고뉴처럼 생산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기요(Gyot)와 꼬르동(Corton) 방식으로 바꿔 한그루당 포도송이를 3∼4송이로 대폭 줄였다. 또 신선한 과일향을 잘 뽑아내는 저온침용과 저온발효, 긴 숙성을 통해 가르가네가 품질의 혁신을 이끌었다. 부친이 생산하던 와인의 양과 비교하면 95%를 잃었지만 대신 그는 소아베 최고의 생산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안셀미 셀러 포도작품.
안셀미 와인. 인스타그램
대대로 와인을 빚는 집안에서 태어난 로베르토는 대학 졸업 뒤 1975년 와이너리에 뛰어 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20∼1945년 뛰어난 포도를 재배하는 생산자였다. 하지만 세계 대전과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포도밭을 모두 매각하고 말았다. 포도밭은 없었지만 로베르토 부친은 대를 이어 와인을 만드는 열정을 이어갔고 로베르토는 더욱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빚겠다는 열망 끝에 1976년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언덕 위 포도밭을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현재 안셀미는 소아베 마을과 몬테포르테 마을 사이에 위치한 소아베 클라시코 지역의 가장 높은 언덕지구에 70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75만병을 생산한다.
안셀미 전통방식 스푸만테 폰카로.
리사 안셀미.
토마소 안셀미.
현재 로베르토의 딸 리사(Lisa)는 마케팅을, 아들 토마소(Tommasso)는 와인메이킹에 참여하고 있다. 안셀미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 유통그룹 에티카 와인스와 까브드뱅을 통해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리사를 따라 셀러 투어에 나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탄성이 쏟아진다. 마치 멋진 설치 작품들로 꾸민 갤러리에 온 느낌이다. 벽마다 홈을 파 셀러를 만들고 그 위에 와인병을 쌓은뒤 은은한 조명을 달았다. 스테인드 글라스 처럼 꾸민 셀러 벽과 오크통이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안셀미 셀러.
안셀미 카피텔 크로체.
가르가네가 100% 와인 카피텔 크로체는 살구와 오렌지향이 어우러지고 은은한 아몬드향이 따라온다. 안셀미는 크로체 포도밭 32ha중 5ha를 소유하고 있으며 카피텔 크로체는 몬테포르테 지역 가장 높은 언덕 조페가(Zoppega) 꼭대기 남향 경사면 포도밭에서 생산된 가르가네가로 빚는다. 라임스톤 토양에서 자란 포도여서 미네랄이 뛰어나다. 저온침용을 거쳐 오크 배럴에서 발효하고 8개월동안 바리크에서 숙성한다.
안셀미 카피텔 포스카리노.
카피텔 포스카리노는 가르가네가 90%에 샤르도네를 10% 섞어 볼륨감을 더했다. 레몬, 살구, 아니스와  짭짤한 아몬드맛이 느껴지고 화산토양에서 오는 스모키향이 매력이다. 안셀미는 소아베 포스카리노 언덕 120ha 포도밭중 해발고도 350m인 언덕 꼭대기의 포도밭 10ha를 소유하고 있으며 남향 경사면 포도밭들은 화산성 토양으로 이뤄졌다. 저온 발효를 거쳐 6개월동안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만 숙성해 신선한 과일향이 뛰어나다. 
안셀미 산 빈첸조.
산 빈첸조(San Vincenzo)는 안셀미의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가르가네가 70%에 샤르도네와 소비뇽블랑을 30% 섞은 독특한 블렌딩이다.  신선한 레몬, 오렌지, 자몽,구즈베리, 복숭아향 등 풍성한 과일향이 신선한 허브향과 어우러지며 화려한 복합미를 뽐낸다. 더불어 풍부한 미네랄과 소비뇽블랑의 생동감 넘치는 산도도 돋보인다. 몬테포르테 언덕의 가장 높은 포도밭은 화산성 토양이며 일부는 라임스톤이다. 저온 발효를 거쳐 6개월 스틸 탱크에서 숙성하고 병입한 뒤 3개월 숙성한다.
안셀미 이 캐피텔리.
이 캐피텔리(I Capitelli)는 포스카리노와 크로체 포도밭에서 잘 익은 포도만 골라 12월까지 포도를 건조시키는 파시토 방식으로 당도를 농축시킨 스위트 와인이다. 작은 오크배럴에서 발효한 뒤 8개월 동안 스틸 탱크에서 숙성해 복합미와 신선한 과일향, 산도를 모두 잡았다. 감귤류와 사과향으로 시작돼 온도가 조금 오르면 열대 과일향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아카시아꽃 향이 따라오고 과하지 않은 오크향이 과일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며 피니시는 길게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소아베는 이탈리아어로 감미로운, 사랑스러운, 부드러운이란 뜻이다. 입안에 달콤한 여운을 길게 남기는 이 캐피텔리는 왜 이 지역 와인이 소아베로 불리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로미와 줄리엣이 실존 인물이라며 아마 이 와인을 마시고 불같은 사랑에 빠졌을 것 같다.

소아베(이탈리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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