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파괴’ 매립지엔 ‘이것’이라도 있어야

류석우 기자 2023. 8. 2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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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퀘어]매립지에 숲 조성한 부산·해남… 태풍 등 재해 대비, 주민들에겐 ‘쉼터’
부산 강서구 명지 오션시티의 해안방재림은 자연재해 방재 기능과 함께 시민에게 휴양 공간을 제공한다. 숲은 해안선을 따라 폭 약 45m, 길이 약 2㎞에 이르는 긴 띠 형태로 2012년 만들어졌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린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잼버리)는 새만금 갯벌의 매립 문제부터 대회 준비와 운영까지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많은 문제 중 하나는 나무와 숲이 없는 매립지에서 대회를 열었다는 점이다. 잼버리를 위해 해창갯벌을 메워버린 것이 가장 근본적 문제점이지만, 최소한 매립할 때 숲을 조성할 기회는 있었다. 관광레저용지이던 곳을 농업용지로 바꾸면서까지 매립을 서두른 것이 이번 사태를 낳았다. 만약 새만금에 나무와 숲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드물게 매립지 위에 숲을 복원한 곳들이 있다. <한겨레21>은 2023년 8월16~17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 녹색연합과 함께 부산과 전라남도 해남 등 도서 연안 매립지에 복원된 해안림을 찾아 매립지에 조성된 숲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근 주민들과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봤다.

해양생물 희생을 딛고 매립된 곳에 최소한 나무라도…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경상도를 가로질러 부산을 통해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 하구에 매립지가 하나 있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 남단에 자리한 오션시티다. 2023년 8월16일 오전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아파트를 지나 바다를 향해 가다보니 빽빽한 초록색 띠가 앞을 가로막았다. 2012년 부산시에서 조성한 해안방재림이다.

해안선을 따라 놓인 방파제 뒤로 약 2㎞에 걸쳐 숲이 펼쳐졌다. 해풍과 염기에 강한 곰솔이 가장 앞에 섰다. 해풍 등으로부터 다른 나무를 지키려는 듯한 모양새다. 소나무과인 곰솔은 일반 소나무보다 껍질이 검고 잎이 두껍다. 주로 해안가에서 자라는 특성 덕에 해안방재림을 조성할 때 제일 가장자리에 심는 나무다. 곰솔 뒤로 사시나무와 이팝나무, 팽나무 등 20종 넘는 나무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우거져 있었다.

부산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명지동 남단 인근 매립을 시작해 2000년에 공사를 마쳤다. 매립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매립지 위에 숲을 조성한다는 계획은 없었다. 숲의 필요성을 느낀 계기는 ‘자연’이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국내를 강타했을 때 부산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 중 하나가 오션시티와 바로 옆 신호산단 쪽이었다. 2004년엔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당시 해안가 맹그로브숲이 있는 곳에선 피해가 작았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자연재해를 겪으며 해안림을 조성하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산시가 나선 것은 200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매립지인 오션시티에 사람들이 입주하면서다. 2012년 약 14억원을 들여 해안방재림 조성 사업을 벌였다. 곰솔 등 8종의 나무 2만4940주를 새로 심었고, 가시나무 등 14종 1817주를 옮겨 심었다. 부산시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태풍이 오면 그쪽 지역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며 “2010~2011년에도 태풍이 와서 그 근처가, 이른바 박살이 나면서 산림청 예산을 받아 해안방재림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초기 목적은 태풍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숲이지만, 실질적 기능은 단순 방재림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번 일정에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재해와 재난을 방지해주는 기능도 있지만 생물다양성도 가져다준다”고 설명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의 허태임 팀장은 “이곳은 원래 습지가 있던 곳이고, 당연히 보존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며 “해양생물의 희생을 딛고 매립된 곳이라면, 최소한 나무와 숲이 있어야 플러스마이너스 효과라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 명지 오션시티의 해안방재림에 자란 곰솔 사이 산책로를 따라 한 시민이 운동하고 있다.

주민들에겐 재해를 막는 보호막 구실을 넘어 휴식 공간이다. 약 45m 폭으로 조성된 숲 사이에 작은 산책길이 나 있고, 그 사이사이마다 우거진 나무 밑에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였다. 8월 중순 한여름에도 숲 안은 서늘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숲을 찾은 주민들이 곳곳에 보였다. 2009년 부산 서면에서 오션시티로 이사해 14년째 산다는 김덕수(78)씨는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런 숲이 없었는데 지금은 바람도 많이 막아주고 여름엔 그늘이 있어서 참 좋다”고 말했다. “나무가 있어서 태풍이 올 때 안심도 되고 실제로 많이 막아주죠. 산책로 같은 것도 잘해놔서 여름에는 저녁에 특히 사람이 많아요. 오션시티 안에 한 1만 가구 가까이 거주하는데 다들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한 단계 진화한 복원, 지역 특성에 맞는 자생식물

조성된 지 10여 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들어선 오션시티의 해안림과 달리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곳도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에 조성된 기업도시 ‘솔라시도’ 연안에 복원된 해안림이다. 이 숲은 전라남도가 산림청에서 약 4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2017년 복원을 완료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해안가에 나무를 심는 ‘조림’ 수준에서 ‘복원’으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본래 남쪽 지역 연안에 자생하는 다양한 상록활엽수를 중심으로 숲을 조성했다. 서재철 위원은 “부산만 해도 종이 단순했는데, 이곳은 다양한 난대수종이 들어서 있다”며 “과거와 다르게 복원 기법이 발달했다. 단순히 나무 심기 정도가 아니라 복원 개념”이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 솔라시도의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신생 숲’ 전경.

8월17일 찾은 솔라시도 해안림에는 부산과 달리 황토색 편책(나무 울타리)이 해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편책 뒤에는 곰솔이, 그 뒤로 다양한 난대수종이 심겨 있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돈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철 푸른빛을 내는 돈나무는 해안가에서 잘 자란다. 특히 해풍과 염기에 강한 곰솔 뒤에서 자생적으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나무 외에 후박나무와 녹나무 등 다양한 자생식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곳이에요. 물론 곰솔이 밖에 있지만 곰솔 안쪽으로는 다양한 난대수종이 있어요. 대부분 이 일대에 자생하는 식물이거든요. 해남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이해하며 수종을 선택한 것 같아요.”(허태임 팀장)

이 숲은 솔라시도 기업도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계획됐다. 당시 숲 복원에 참여한 윤병성 전 전라남도 산림연구소장에 따르면 솔라시도 연안에 나무를 꼭 심어야겠다는 내부적 고민이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숲을 조성할지 연구를 거쳐 산림청 예산을 얻어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윤 전 소장은 “해안변에 제일 좋은 것은 곰솔인 건 맞지만 남쪽의 난대수종을 다양하게 심어보자고 생각했다”며 “주로 가시나무나 후박나무 같은 난대수종을 심었다. 또 활엽수가 해풍에 좀 약하기 때문에 편책으로 바람막이를 했다”고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선 염분이 강한 특성 때문에 매립지 위에 흙을 두껍게 쌓았다. 수분 건조를 막기 위해 나무 부스러기로 멀칭(토양 표면을 덮어주는 일)도 했다. 이곳은 2017년 전국 우수 산림복원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이런 방법은 전북 새만금 간척지 복원을 위한 자료로도 제공됐지만, 실제 새만금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다. 윤 전 소장은 “새만금 쪽도 와서 조언을 듣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복원 공법도 전달은 했다”며 “이후에라도 벤치마킹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잼버리 사태를 보면서) 좀 아쉽긴 했다”고 말했다.

전남 해남 솔라시도의 복원림. 조성 당시 땅의 염분을 낮추기 위해 흙을 10~20㎝ 깔아 해수면과 높이차를 뒀다. 해안가에 설치된 나무울타리가 어린나무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바다에 접한 곳은 해송을 심었다. 그 뒤에는 예덕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돈나무, 가시나무, 팽나무, 다정큼나무, 감탕나무 등 본래 연안에 자생하는 다양한 상록활엽수를 중심으로 숲을 조성했다.

최근에야 ‘생태복원’ 개념 들어서

매립지에 숲을 조성하는 일은 국외에서 더 활발하다.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대표 사례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2012년 100만㎡ 규모의 매립지에 조성된 초대형 식물원이다. 식물원 주변으로 녹지대가 형성됐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허 팀장은 “싱가포르와 한국은 물론 환경이 다르겠지만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사례는 매립지가 아름다운 숲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부산이나 해남 사례처럼 매립지나 도서 연안에 숲을 복원하려는 사업은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의 손에 맡겨뒀다. 부산 오션시티와 해남 솔라시도 복원도 지자체에서 정부에 예산을 신청해 직접 진행한 사업이다. 다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태복원에 나서도록 법도 개정됐다. 2020년에는 산림청에 산림 복원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산림생태복원과도 생겼다.

부산과 해남 사례처럼 복원된 숲은 산림청에서 10년 동안 모니터링하며 관리한다. 이규명 산림생태복원과장은 “산림생태복원 사업을 도입하면서 10년 동안 모니터링하도록 시행령에 규정됐다”며 “지자체마다 특성을 반영해 조성해야 하지만 일정한 기준에 맞춰 잘하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유지 관리다. 산림청에 모니터링 역할은 부여됐지만 유지·보수를 할 수 있는 예산은 없다. 2023년 처음으로 유지 관리 사업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상황이 이러니 지금은 지자체가 알아서 유지·보수해야 한다. 이번에 찾은 솔라시도 복원지도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지만 그 위로 칡덩굴이 덮은 모습이 보였다. 서재철 위원은 “산림 복원은 초기에 잘 관리해야 한다”며 “5~10년 동안은 인큐베이팅 개념으로 관리해줘야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사업과 별도로 산림청도 직접 복원에 나서고 있다. <한겨레21>이 산림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까지 산림청이 산림생태를 복원한 면적은 도합 854㏊(헥타르)에 이른다. 이 중 도서 연안의 복원 면적은 188㏊다. 2023년에는 76㏊의 숲을 복원할 계획이다. 산림청이 직접 복원에 나선 곳 중 대표적 사례가 완도 금일읍 해당화 해변이다.

전남 해남 솔라시도의 해안가에 설치된 나무울타리는 어린나무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매립지 숲이 수백 년 지난다면

해남과 부산의 숲이 지속적으로 잘 관리돼야 하는 이유는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해안가의 숲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수백 년에 걸쳐 마을 주민들이 보존해온 ‘방조어부림’이 있다. 이 숲은 17세기에 마을 주민들이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농지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말 나무들을 한 번 베었다가 태풍으로 마을이 큰 피해를 본 뒤로는 주민들 스스로 숲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왔다고 한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단순히 ‘방조’ 구실만 하는 게 아니라 물고기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 ‘방조어부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 150호로 지정된 경남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8월16일 물건리 숲을 찾았다. 숲 입구에서부터 오래된 팽나무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팽나무를 끼고 숲 안으로 들어가니 바다도 마을도 사라졌다.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매미 소리로 가득 찼다. 숲 가운데 나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걷자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푸조나무, 노린재나무, 사철나무, 예덕나무 등 수많은 나무가 반겼다. 10~20m 위로 뻗은 나무들 밑으로 맥문동과 찔레꽃, 마삭줄이 자리를 차지했고 어린 팽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여기엔 신도시를 조성할 때처럼 의도적으로 심은 식물은 없어요. 냉문동은 원래 해안가에 잘 자라고 마삭줄도 남부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자라는 아이들이고요. 신기한 건 팽나무와 푸조나무 등이 살기 좋은 숲이 되다보니 팽나무뿐 아니라 그 과에 해당하는 다양한 종이 자라면서 팽나무 혈통의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숲이 워낙 좋아지니까 가능해지는 거예요.”(허태임 팀장)

주민들에게 이런 숲은 보물이다. 19세기 말부턴 나무를 베어내면 돈을 내야 한다는 규칙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느티나무를 일부 베어내려다 마을 주민들이 막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평생을 물건리에서 살아온 박춘식(89)씨는 “여기 귀목나무(느티나무)가 있는데 일본놈들이 군인들이랑 들어와서 베려고 했는데 마을에서 베면 안 된다고 해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물건리에서 나고 자란 이순엽(87)씨에게 숲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이다. “옛날엔 숲이 반달눈썹 같다고 해서 ‘반달눈썹숲’이라고 불렀거든. 제방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 숲 그늘을 보고 멸치가 억수로 많이 들어왔어. 애들이랑 와서 멸치를 억수로 잡았거든. 그게 우리 어릴 때라.” 방조어부림 해안 앞에는 현재 좌우로 방파제가 설치됐다. 그 뒤로 물의 흐름이 적어져 멸치떼는 사라졌다.

경남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찾은 시민들이 숲이 만든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박씨는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될 숲”이라고 했다. “지금은 방파제가 있지만 옛날엔 큰 태풍이 오면 이 숲까지 바닷물이 왔거든. 사라호 태풍(1959년 경상도에 큰 피해를 남긴 태풍) 때는 숲을 넘어 고랑까지 왔어. 숲이 없었으면 들판을 다 쑤셨을 거요. 태풍이 오면 바람막이가 되고, 농사지을 때는 바람을 막아주고. 동네에서 큰 덕을 보고 있지.”

부산 명지 오션시티의 숲과 전남 해남의 솔라시도 숲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과 같은 숲이 되려면 앞으로 수백 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백 년에 걸쳐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물건리 숲에 있다. 매립지의 경우 더 그렇다. “매립이라는 건 원래의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땅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면, 그래서 숲을 이루면 거기에 다양한 생물이 모여요. 그러면 그 생물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사람이 살기도 좋은 거죠.” 허 팀장의 말이다.

부산·남해(경북)·해남(전남)=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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