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요람된 감리회사… 도면에는 '까막눈'
[편집자주]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공공주택 건설현장에서 철근 부실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감리의 역할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현장의 관제탑 역할을 하는 감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체와 공공기관 출신 퇴직자가 감리 인력 풀의 다수를 채우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짐에도 저비용만을 좇고 고용 안정성마저 보장되지 않는 업계 관행은 '허울뿐인 감리'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법정 감리 인원 기준을 못 채우는 현장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드러나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기사 게재 순서
①퇴직자 요람된 감리회사… 도면에는 '까막눈'
②3000가구 공사 감리 고작 '4명'… 법적기준 못채운 LH 단지 82%
③지자체 감리 감독 유명무실한데… 정부 산하 감리기관 설립 논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현장의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감리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바로잡고 현장의 전반적 관리·감독 일선에 서야 하는 감리가 업무에 소홀했단 지적이다. 업계에선 이번 철근 누락 사태가 현행 감리제도의 유명무실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공사감리는 건축물이나 건축설비가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고 품질·공사·안전관리 등을 지도·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착공 전 허가된 설계도서에 구조상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며 공사가 시작되면 공정별로 시공 단계나 사용 자재가 설계도서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검사한 뒤 다음 단계로의 착수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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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감리 분야에만 몸담아온 '베테랑' 감리 인력은 전문성이 높은 대신 월급도 많이 줘야 한다. 때문에 감리회사가 주로 고용하는 인원은 비교적 낮은 연봉을 제시해도 채용 제안에 응하는 다른 분야 퇴직자들이다.
한 해 매출이 1000억원을 넘는 감리업체는 한미글로벌과 삼우씨엠건축사사무소 등 극소수다. 다수의 감리업체들은 소수의 직원들로 구성돼 인건비로 지출할 수 있는 경비가 한정돼 있어 저연봉의 고령 감리를 선호하곤 한다.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 '1차 직장생활'을 마치고 감리로 인생 2막을 연 기술인 중 많은 이들이 관련 지식이나 현장 경험이 없는 이른바 '까막눈'이란 점에 있다.
불안정한 감리 고용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주택 건설공사 감리자 지정기준'에 따르면 공사중단 기간이 3개월 이상 예상돼도 해당 일까지 감리원을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수 없다. 공사가 미뤄져 감리 업무를 못하는 인력을 활용할 수 없으니 정규직보단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가 많다. 고용 안정성을 추구하는 2030세대의 청년층은 계약직으로의 근무보단 타 분야에서 일하기를 선택한다. 비정규직이어도 괜찮은 이들은 앞서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해 언제 그만둬도 될 소일거리를 찾는 퇴직자들이다. 고령화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수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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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철근 누락으로 논란이 된 LH 아파트 중 두 곳은 LH 전직 직원이 세운 업체가 감리를 맡아 진행했다. 3곳의 감리를 담당한 또 다른 건축사 사무소는 전체 임원 65명(2018년 기준) 가운데 22명이 LH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민간업체가 아파트를 건설할 땐 독립성 확보를 위해 지자체가 감리 업체를 선정한다. 하지만 감리업체에 지급되는 돈이 발주처에서 나오다 보니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다 많은 계약을 체결하려면 발주처와 연줄이 닿아 있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영입해 회사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현장에 팽배한 부실감리를 해결하고 감리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선 보다 엄격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감리 인원의 고령화는 감리 자체를 비용으로만 보는 민간공사 현장에서의 시스템과 감리에 대한 의무교육조차 없는 현실이 맞물려 생기는 문제"라며 "발주처와 감리업체의 계약은 일종의 사인 간 거래이기에 국가가 제도적으로 개입했을 때 어디까지가 적절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우에 따라선 감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도 공사비 등 민감한 정보를 감추기 위해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지난해 발생한 광주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 사고처럼 적정 인원을 배치하지 않고 감리 이름만 빌리는 일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은 "구조설계 안전성이 가장 우선적인 관리감독 대상이 돼야 함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의 감리자가 없는 것이 문제이기에 제도적 정비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감리 채용을 위한 적정 감리비의 기준을 법적으로 세우고 현장에서 부실 감리를 제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는 감리를 선정만 해놓고 공정별로 일은 잘 하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는다"며 "감리자의 역량 부족이나 업무 태만 등이 발견되면 시공사 측에서 낸 의견을 수렴하거나 감리 업체를 교체하는 등 관리·감독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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