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는 캡틴 아메리카… 특급 물리학자들 모아 ‘어벤저스’ 만들다

이혜운 기자 2023. 8.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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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문과생도 쉽게 보는
영화 ‘오펜하이머’ 해석판

“문과생들은 ‘지루하다’고 하고, 이과생들은 ‘인생작’이라고 환호하는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관객 200만명을 바라보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이다. 세계적으로도 7억달러(약 9366억원)를 넘어 영화 ‘인터스텔라’의 기록을 깼지만 호불호가 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나치 독일이라는 거대한 빌런을 물리치기 위해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캡틴 아메리카가 돼 전 세계 특급 물리학자들을 모아 ‘어벤저스’를 만들어 성공하는 이야기다. 어벤저스를 볼 때처럼 각자의 캐릭터, 무기 등을 알아야 재미있다. 원래 동지였다가 적이 된 윈터솔저 같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마티아스 슈바이크회퍼)도 등장한다.

당시는 뉴턴으로 대표되던 고전물리학의 시대가 끝나고, 현대물리학이 시작된 시기다. ‘물리학의 황금기’로 불린다. 비행기의 발달로 학자 간 교류도 활발했다.

물리학은 크게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으로 나뉜다. 이론 물리학은 원리나 가설을 세워 이론적 체계를 만드는 것이고, 실험 물리학은 이론을 토대로 실험하거나, 실험에서 나타나는 경험을 토대로 법칙을 만드는 것이다. 이론 물리학은 ‘몽상가’들이, 실험 물리학은 ‘현실주의자’들이 많다.

오펜하이머의 미국 하버드대 학사 시절 전공은 화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리학이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케임브리지대는 ‘실험 물리학의 성지’였다. 하버드대에서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오펜하이머는 여기서 ‘낙제생’ 취급을 받는다. 기분이 상한 그는 지도 교수의 사과에 독성 화학물질을 주입하고 그게 문제가 돼 학교에서 쫓겨난다.

/유니버설 픽쳐스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영화 '오펜하이머'를 촬영 중인 아인슈타인 역할의 톰 콘티(왼쪽)와 오펜하이머 역의 킬리언 머피. 배우들이 실제 인물과 닮아 촬영장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때 우연히 케임브리지대를 방문한 독일 이론 물리학자 막스 보른 교수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이론 물리학의 성지’로 불리던 괴팅겐 대학교로 떠나게 된다. 보른 교수는 현재 ‘양자 역학’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다.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독일의 보른, 덴마크의 닐스 보어(케네스 브래너 역), 네덜란드의 파울 에렌페스트, 스위스의 볼프강 파울리, 미국의 아인슈타인(톰 콘티) 등이 당시 물리학 스승 라인이다. 이들은 우수한 제자를 서로의 연구실에 보내며 연구하기를 즐겼는데, 이 과정에서 오펜하이머와 하이젠베르크도 동료가 된다.

유럽 유학을 마친 오펜하이머는 귀국해 UC버클리의 교수로 임용된다. 그곳에서 실험 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조시 하트넷)를 만난다. 1930년 입자가속기의 일종인 ‘사이클로트론’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UC버클리부터 이론과 실험의 합을 맞춘 그들은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도 함께한다.

원자폭탄은 ‘핵분열 이론’에서 출발한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줄 알았던 원자(우라늄)에 중성자를 가했더니, 엄청난 열을 발생하면서 쪼개지더라는 것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물질의 질량 결손에 비례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걸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쪼개질 때 추가로 중성자가 나오기 때문에 설계만 잘하면 연쇄 폭발이 가능하다.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1938년 독일의 과학자인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 리제 마이트너. 이 소식은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공유됐고 ‘거대한 폭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미국에서 이 핵분열 연구를 계속하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대니 드페라리)다.

당시 헝가리 태생 물리학자인 레오 실라르드(마테 하우만)는 다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편지로 써 미 대통령인 루스벨트에게 보낸다. 자신의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것을 예상해, 아인슈타인의 서명도 담는다. 이 편지를 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핵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오펜하이머가 이끈다. 함께 공부했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독일 핵무기 연구의 수장이 된다.

/유니버설 픽쳐스 과학자들의 록스타 리처드 파인만(잭 퀘이드, 가운데)과 훗날 스파이로 밝혀진 클라우스 푹스(크리스토퍼 덴햄, 오른쪽)

맨해튼 프로젝트 속 물리학자들도 이론팀과 실험팀으로 나뉘었다. 이론팀 대표 학자들은 유머를 탑재해 ‘과학자들의 록스타’로 불리는 리처드 파인먼(잭 퀘이드)과 한스 베테(구스타프 스카스가드),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등이다. 파인먼과 베테는 핵무기 수율을 계산하기 위한 방정식을 만들었다. 텔러는 훗날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의 아버지’가 된다.

/유니버설 픽쳐스 훗날 '수소 폭탄의 아버지'가 된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이들이 처음 연구한 핵폭탄은 우라늄을 이용했다. 농축된 우라늄을 양쪽에서 부딪쳐 열을 발산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를 개발했다. 그러나 우라늄을 농축시키는 것은 과정이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이들은 플루토늄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플루토늄은 밀도상의 문제로 양쪽에서 두 개를 부딪치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때 렌즈처럼 중앙으로 힘을 가하는 내폭형 방식을 개발한 사람이 세스 네더마이어(데본 보스틱)다.

구형 중앙에 플루토늄을 놓고 바깥에서 폭약들이 터져 압력파가 한 번에 중앙으로 도달해 폭탄이 터지도록 한 것이다. 이를 10개월 만에 계산한 사람이 폰 노이만, 이것의 폭발력을 관측한 사람이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알렉스 울프)다. 이 방식은 낯선 것이라 실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구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는 이 플루토늄 핵폭탄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장면. 처음에는 소리 없이 빛이 강하게 발사된 다음, 엄청난 굉음이 들리는데, 광속이 음속보다 90만 배 빠르다는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둔 연출이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은 플루토늄 핵폭탄이다.

핵분열 이론이 발견된 후 핵폭탄이라는 실용화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나치 독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과학자가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핵폭탄을 개발했을 때 트루먼 대통령은 스파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펜하이머가 스파이로 지목돼 고통을 받은 건 이 때문이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스파이는 실제로 있었다. 영국 국적을 가진 소련의 이론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크리스토퍼 덴햄)다. 그도 보른의 제자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일했고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먼과 친했다. 플루토늄이 최단시간 안에 임계점에 도달하는 핵분열 에너지를 계산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렇게 연구한 결과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끌었지만 이 정보를 소련에 넘겼다. 아이러니한 당대 과학자들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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