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이돌보미도 근로자” 대법 판결, 돌봄 공공성 강화 계기로

2023. 8. 2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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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빠가 자녀를 등에 업고 산책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맞벌이·한부모 등 가정을 방문해 아이를 돌봐주는 ‘아이돌보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 163명이 광주대학교 산학협력단 등 서비스기관 4곳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기관들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지난 18일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아이돌보미들도 근로기준법에 맞게 야간·휴일·연차 등 각종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노동 약자를 착취하면서 공공 사업을 유지해온 나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성가족부가 시행하고 있는 아이돌보미 사업은 양육 공백이 발생한 가구에 돌봄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비스다. 하지만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베이비시터’보다 낮은 시급에 노동자로서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해 처우가 열악한 질 낮은 일자리로 인식돼 왔다. 시급은 9630원으로 법정 최저시급(9620원)에 불과 10원이 더 붙을 뿐이다. 소송을 제기한 아이돌보미들은 광주광역시가 위탁한 서비스 기관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근로자성을 주장하며 그간 받지 못한 각종 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2018년 1심은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2심에서 뒤집혔다가 대법원이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들이 기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아이돌보미가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2013년 고용노동부가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이후부터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여가부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다가 2018년 1심 판결이 나온 후에야 ‘아이돌봄 서비스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현재는 법정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아이돌보미 5000여명이 미지급 수당을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수요는 많지만 열악한 처우 탓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처우를 대폭 개선해 서비스 공급을 안정화해야 한다. 정부가 이를 외면·방치해 돌봄을 민간부문에 떠맡기려 하는 것은 돌봄의 공공성 후퇴를 초래한다. 노동 약자를 차별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저출생 대책은 헛바퀴 돌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이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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