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고라니에 작물 훼손 극심한데 정부는 ‘뒷짐’…지자체·농민만 ‘발동동’

김윤호 2023. 8. 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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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철 멧돼지·고라니 등 극성
농가 피해 연평균 100억 상회
국비, 올해 48억…10억 줄어
군비로 충당해도 부족해 ‘진땀’
손해보전 예산 요청도 묵살돼
강원 춘천시 동내면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박명근씨가 멧돼지 습격으로 쓰러진 복숭아나무를 근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과수원·농작물 망치는 멧돼지에 농심 멍들어=“이거 보세요! 복숭아 수확철인데 멧돼지가 새끼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복숭아밭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최근 찾은 강원 춘천시 동내면 고은1리. 이곳에서 1.65㏊(5000평) 규모로 복숭아를 재배하는 박명근씨(63)는 멧돼지 습격으로 엉망이 된 밭을 가리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 일부는 큰 가지도 부러지고 과원 바닥엔 먹다 버려진 복숭아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박씨는 “나무 위에 달린 맛있는 복숭아를 먹으려고 멧돼지가 나무를 넘어뜨리는 통에 어림잡아 0.19㏊(600평) 정도 피해를 봤다”면서 “피해액만 1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야생동물의 먹이활동 등으로 농작물과 과수 피해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는 상황에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포획단을 운영하기도 한다.

경남 김해시는 2년 전부터 30여명의 엽사를 선발해 이들의 활동을 독려했다. 가장 극심한 피해를 끼치는 멧돼지는 상시 출동해 포획하고 고라니는 농가 민원이 있을 때 현장으로 나가는 식이다. 시는 예산 범위 안에서 엽사에게 사고를 대비한 수렵보험료와 포획 포상금(멧돼지 1마리당 5만원, 고라니는 2만원)을 준다.

엽사로 활동하는 백남전씨(68)는 “최근에는 멧돼지가 자두와 복숭아밭에 자주 나타났는데 수확철이 끝나가자 이제는 단감 과수원에 출몰하기 시작했다”면서 “과수는 물론 고구마 같은 뿌리작물도 가리지 않는 탓에 농촌의 큰 골칫덩어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사람·가축 잡는 들개 극성…‘동물보호법’에 막혀 난관=제주지역은 공격성이 강한 들개가 기승을 부린다.

최근 들개가 농작물을 훼손하는 데다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며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사는 70대 여성이 자치경찰단에 신고해 4마리를 포획하기도 했다.

김은섭 제주당근연합회장은 “들개는 야생에 쉽게 적응해 잡기 쉽지 않고, 공격 성향을 띠면서 야외활동이 잦은 농민을 위협하기 일쑤”라며 “다른 야생동물에 비해 몸집이 작다고 해서 들개 문제를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들개포획단을 운영해 지난해 640마리를 잡았고, 올 상반기에도 107마리를 포획했다. 두 지자체에 따르면 들개가 원인이 된 농작물·가축 피해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한 사례는 지난해만 30건에 이른다. 주로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피해가 컸고, 소·말·염소 등도 피해 보고가 있었다.

들개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유기견 급증 때문이다. 도동물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입소한 유기견은 4122마리다. 올해도 7월말 기준 2258마리가 들어왔다. 관광 성수기인 7월 입소 건수는 380마리로 올해 월별 입소 건수 중 가장 많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해 발표한 ‘유실·유기 동물 발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인구 1만명당 유실·유기 동물 발생 건수는 제주가 71.1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최하위인 서울(5.7건)을 1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이는 제주에 온 관광객이 반려견을 버리는 일이 심심찮다는 주장에 힘을 실을 만한 근거다.

들개가 법적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돼 유해 야생동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들개를 함부로 잡았다간 ‘동물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어 일개 농가가 대처하기도 어렵다. 들개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려는 법 개정 시도도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난항 중이다.

한춘규 대한양계협회 제주도지회장은 “고라니나 멧돼지와 달리 들개는 사람의 생활영역과 상당히 겹쳐 더 큰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농가 피해가 누적된 만큼 행정기관에서도 민생을 보살피는 차원에서 들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도 들개포획단과 자치경찰단 관계자가 들개 포획용 틀을 설치하고 있다. 들개는 사람의 생활영역과 겹쳐 더 큰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야생동물 피해 예방 예산 줄어 지자체·농가 발동동=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과수 피해액은 연간 평균 100억원을 상회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피해액 규모가 평균 106억원을 넘는다. 지난해에도 멧돼지(53억400만원)·고라니(11억7100만원)·까치(4억4300만원)·꿩(3억5300만원) 순으로 피해가 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에 쓸 예산을 오히려 깎았다. 전기울타리·철조망 등을 설치할 때 들어가는 환경부 예산은 지난해 58억원에서 올해 48억원으로 10억원 줄었다. 사업 우선순위, 시급성 등을 따져 기획재정부에서 감액을 요구한 것이다.

야생동물 민원은 줄지 않는데 국비가 급감하자 기초지자체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가령 전북 임실군은 국비·도비를 포함한 관련 예산이 지난해 1억4500만원에서 1600만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에 군비 1억5600만원을 증액해 겨우 균형을 맞췄다.

그런데도 전기울타리를 신청한 농가 160곳 가운데 98곳만 혜택을 받았다. 철강 등 원자재값이 급상승하면서 혜택이 고루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군 환경보호과 관계자는 “야생동물 피해 건수가 2021년 138건에서 지난해 205건으로 급격히 늘면서 농가 불안감이 커진 게 사실”이라면서 “어렵사리 국비 축소분을 군비로 상쇄하려 했으나 원자재값 같은 대외 변수로 효과가 미미하다”고 토로했다.

피해 농가의 손해를 보전하는 사업도 정부가 지자체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2015년부터 줄곧 기재부에 정부 차원에서 ‘유해 야생동물 피해 보상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요청했지만 의견이 반영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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