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한 승무원 유니폼도, 퇴역 항공기도 쓸모가 있다
최근 대한항공은 의약품 파우치 500개를 제작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 파우치 안에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등 직원들의 기부로 마련한 필수의약품 6가지를 담았다.
검은색 또는 하늘색 천을 이용한 파우치 중앙에는 각각 운항승무원과 객실승무원 유니폼 자켓 무늬를 새겼다. 승무원들이 충분히 입고 반납한 헌 유니폼으로 만들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사용 후 반납된 유니폼은 통상 폐기하지만, 이를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 헌 유니폼, 구명조끼, 퇴역 항공기 자재 등을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새활용) 움직임이 활발하다. 업사이클링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일환으로 사회적기업 등과 협업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기내에서 사용한 낡은 담요로 핫팩 커버를 제작해 기부했다. 올해 초에는 구명조끼를 활용한 화장품 파우치 판매 수익을 환경단체에 전달했다.
청바지 유니폼을 갖춘 진에어는 지난 6월 낡은 청바지로 필통을 만들어 기내 이벤트 기념품으로 제공했다. 제주항공은 항공 폐기물 자원을 활용한 여권 지갑, 여행용 가방, 파우치를 판매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헌 유니폼으로 여행용 파우치, 태블릿 파우치를 선보였다. 에어부산은 버려지는 승무원 캐리어 가방 원단으로 만든 열쇠고리 판매 수익금을 바다 정화활동에 사용한 바 있다.
임무를 마치고 은퇴한 항공기 외벽 조각으로 만든 네임택(이름표)도 눈에 띈다. 대한항공은 지난 5월 은퇴 항공기를 활용한 네임택과 골프 볼마커를 출시했다. 2002년 도입 이후 95개 도시, 총 1만1274회 비행을 마치고 2020년 3월 샌프란시스코-인천 비행을 끝으로 은퇴한 보잉 777-200ER 항공기가 대상이었다. 기종과 항공기 일련번호를 새겨 희소가치를 높였다.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핀란드 핀에어는 최근 폐유니폼에서 파쇄된 직물과 재활용 플라스틱을 혼합해 벤치 의자·테이블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에선 델타항공 퇴역 항공기에서 나온 금속을 이용한 한정판 신용카드가 출시되기도 했다. 항공 마니아들을 겨냥해 퇴역 항공기 네임택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업체도 존재한다.
항공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ESG 경영 실천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길 만하다. 하지만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 항공유(SAF)’ 도입과 같은 핵심적인 탄소 감축 방안과 병행되지 않으면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사 단체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까지 항공사들의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합의했다. SAF 도입에 한발 뒤처진 국내에선 정부, 항공사, 정유사 등이 함께 2026년 SAF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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