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전 마주하는 “손님, 팁 어떠세요”…안 내면 그만?

이승준 2023. 8.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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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나 식당에서 팁을 권유하는 ‘팁 박스’를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자주 나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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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식당과 카페 일부 매장에서 팁(tip·봉사료) 요청을 받거나 팁을 넣는 ‘팁 박스’를 경험했다는 소비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한국 상황과 어울리지 않고, 미국에서도 최근 팁에 대한 거부감이 늘고 있는데 굳이 왜 ‘팁 문화’를 따라가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한 누리꾼이 어느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팁 어떠냐’며 5%, 7%, 10% 등을 누를 수 있는 결제화면을 제시했다는 경험담을 올린 글에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왜 팁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유명 베이글 전문점을 다녀온 이들도 계산대 옆에 ‘팁 박스’가 있다는 목격담을 올리며 ‘팁을 줄 만한 서비스를 받은 적이 없는데 왜 팁을 줘야 하나’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팁 권유 어떻길래

유명 베이글 전문점에서 계산대 옆에 둔 팁박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팁 권유는 빵집이나 카페에만 있지 않다. 택시 호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카카오 티(T) 택시’는 지난달 19일부터 ‘택시를 이용하고 특별히 사례를 하고 싶은 경험을 했다면 별도로 감사 팁을 드릴 수 있다”며 ‘감사 팁’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한 뒤 앱에서 별점 5점을 평가를 남기면 1000원, 1500원, 2000원 팁을 줄 수 있는 화면이 보인다. 물론 원하지 않으면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택시 기사들과의 상생협의회 때 기사들의 바람을 이번에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결이 다르지만 배달 플랫폼 앱 ‘배달의 민족’도 배달비를 ‘배달 팁’으로 표현하고 있다.

카카오T택시 ‘감사팁’ 기능. 카카오모빌리티 누리집 갈무리

팁 문화에 부정적인 이유

소비자들이 에스엔에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팁 권유에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팁을 줄 정도로 서비스를 받지 않는데 왜 팁을 요구하나” “팁이 직원이 아니라 업주에게 가는 것 아닌가” “미국이 팁이 활성화된 것은 법정 최저임금 낮은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취지지만, 최저임금이 동일한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나중엔 팁을 주는 게 정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21일 엑스(X·옛 트위터)에 @HA*******라는 이용자는 “지금이야 호의로 시작되는 서비스이지만, 나중엔 팁을 줘야만 정상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고, 근로자의 낮은 임금을 정당화하는 악질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팁 문화를 반대하는 포스터를 올리기도 했다.

설문조사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은 도드라진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최근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 도입에 대한 20~50대 소비자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00명 중 36.7%가 ‘매우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팁 기능 도입의 찬성 의견(서비스 질 향상, 사용자에게 선택권이 있음)과 반대 의견(제2의 배달비처럼 고착화, 강제될 가능성)을 제시한 뒤 의견을 묻자 전체의 71.7%가 “반대에 더 가깝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이 2만29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여론조사(7월27일~8월2일)를 보면 ‘팁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약 61.1%가 ‘부정적’(매우 부정적 38.1%+약간 부정적 23%)이라고 응답했다. 카카오 택시의 팁 서비스 도입에 대해선 “시범식으로 도입되다가 결국 배달비처럼 사회에 고착할 것이 우려되어 부정적이라고 생각”(57.4%)이라고 한 답변이 “팁을 받기 위해서라도 친절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생각”(22.5%)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팁이 도입될 경우 저임금에 시달리는 서비스직 노동자의 현실을 은폐하고,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또 계속 치솟는 물가와, 높은 배달비 등을 경험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자리 잡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감사 팁 시범도입 뒤 지난 2일 공개한 자료에서 “(팁 기능을 원한) 기사님들의 바람 뒤에는 팍팍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정부가 택시요금을 올리면서 ‘택시비가 비싸다’는 여론도 많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택시요금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고 설명했는데 팁이 기사들의 소득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물론 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팁이 제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감사팀 도입 후 1주일간 지켜본 결과 하루 평균 2000여명의 승객들이 감사 팁 기능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멀미하는 아이를 위해 부드럽게 운전해준 기사, 분실물을 찾아준 기사,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기사 등에게 손님이 팁을 줬다고 한다.

한편, 온라인에서 팁을 요청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손님이 호의로 주는 것이라면 현행법에서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식품접객업영업자 등의 준수사항으로 ‘가격표대로 요금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팁 피로감

정작 팁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최근 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220만 구독자로 유명한 유튜버 ‘올리버쌤’(본명 올리버 샨 그랜트)은 7월 중순 ‘한국인 여러분,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미국에서 팁 내지 마세요’라는 영상을 올렸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스타벅스, 빵집 등에서 신용카드 결제 시 팁을 요구받는 경험을 보여줬다. 그는 “2달러 베이글 사는데 팁이 최소 1달러?”라며 “‘노 팁 버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 베이글에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지 불안해서 억지로 팁을 내게 된다”고 했다.

유명 유튜버 올리버 샨 그랜트는 지난 7월 미국 텍사스의 팁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올리범샘’ 유튜브 채널 갈무리

실제로 코로나19를 거치며 팁에 대한 미국사회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대면 서비스를 받지 않는데 키오스크 화면에서 팁 결제를 유도하고,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들이 신용카드 팁 결제를 속속 도입했기 때문이다. 팁 요금도 많이 인상됐다고 한다.

지난 6월 공개된 미국 금융 정보 업체 뱅크레이트의 보고서는 설문조사(2437명 대상)를 토대로 “미국 성인 3명 중 2명(66%)이 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41%가 “업주가 팁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직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보였고, 32%는 “(결제 화면에)미리 입력된 팁 화면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보고서는 미국 사회가 2019년 이후로 팁을 주는 빈도가 감소하고 있고, 20~30대에서 팁을 주는 비율이 낮다고 분석했다.

유명 유튜버 올리버 샨 그랜트는 지난 7월 미국 텍사스의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방문해 팁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올리범샘’ 유튜브 채널 갈무리

“팁 피로감(tip fatigue), 팁플레이션(tipflation)이 현실”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자주 나오고 있다. 마이클 린 코넬 호텔 경영대학원 소비자 행동 및 마케팅학 교수는 지난 7월5일(현지시각) 미국 시엔비시(CNBC)에 “소비자들은 팁 문화에 대해 피로감을 넘어 짜증을 느낀다”고 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팁으로 급여를 보전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시엔비시는 지난 18일 “서비스 종사자들이 생계를 위해 팁에 의존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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