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철근 사태 15곳 중 8곳 도면 재하청”…책임의 구조가 흔들

윤지원·심윤지 기자 2023. 8.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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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누락’ 아파트 사태
경향신문 초청 전문가 4인 좌담회
철근 누락 LH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 4인이 1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민 부회장(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박성준 부회장(대한건축사협회), 안홍섭 회장(한국건설안전학회), 박상호 전무(A건축사사무소). 2023.08.17 |서성일 선임기자

21개 단지 아파트 건물에 철근이 빠진 게 드러났다. 이중 한곳의 지하주차장은 붕괴됐다. 자칫 커다란 인명피해가 날 수 있었다. 설계, 시공, 감리부터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관리 감독까지 전 영역이 총체적 부실이라고들 말한다. 업계 이해당사자들이 자신의 책임은 빼고 다른 이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는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나. 과연 우리집은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은 지난 17일 각 분야를 대변하는 네 전문가를 초청해 좌담회를 열고 답을 찾아봤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 박성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박상호 A건축사사무소 전무(감리)가 참여했다.

15개 철근 누락 단지 구조기술사 모두 도면 안그려
건축사사무소 ‘이중계약서’ 작성하고 별도 업체 재하청줘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중 설계부분 오류가 최소 11건에 달했다. 계산도 틀리고 구조 도면도 제대로 못그린 일도 있었다. 국내 구조기술사들 전문성이 부족한가.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이하 김영민)=구조기술사 대표자로서 이번 사태 깊이 반성한다. 구조기술사는 국내 1273명이 있고 이중 70% 이상이 건축공학 석·박사 학위를 지녔을만큼 전문성이 높다. 건물은 구조전문가가 계산뿐 아니라 도면으로 표현한 뒤 전문가 감독 아래 지어져야 안전하다. 문제는 현재 도면 작업에 구조기술사가 투입되지 못하는 구조다.

폭로성 발언을 하겠다.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이번에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 단지 15곳을 맡은 구조기술 업체 8곳이 모두 도면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LH 업무지시서상에는 도면을 구조기술사가 그리게 되어있었지만 이중계약서를 쓰고 건축사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준 것이다. 인천 검단에서는 철근 표시 ‘V자’를 도면에 너무 작게 표시해 배근이 누락됐는데 무자격 업체가 도면을 그리면서 일어난 일로 보인다.

박성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이하 박성준)도면 작업을 하기 위해선 별도 인력을 갖춰야하는데 구조기술 사무소는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수지가 안맞는다는 이유로 도면 작업을 거절하니, 건축사들이 도면 업무를 재하청 주고 있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이하 안홍섭)건축사들이 발주처와 일대일로 계약해서 설계비를 큰 틀에서 정한다. 그 비용 내에서 하청을 받아 구조설계를 하다보니 구조도면 업무까지 역량을 키울 능력 없이 열악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단, 잘못된 부분을 누군가는 바로 잡았어야 한다. 계약서상에는 건축사가 최종 책임자인데 스크리닝이 왜 작동하지 않았나.

박성준=건축사들이 구조기술 업체를 잘못 선정한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구조 계산이 잘못된 채 넘어오면 이를 잡아내기가 어렵다. 건축사가 잘 못하기 때문에 구조계산을 애초에 구조기술사들에게 맡긴 것이다. 구조사무소 자체적으로 오류가 생기지않도록 제도적 보완은 필요하다. 제3의 구조기술사가 구조계산을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김영민=맞다. 도면에 대한 피어리뷰(동료평가)를 도입함과 동시에 구조기술을 현재 건축사 하부 구조에서 분리 독립시켜야 한다. 현재 책정된 건축설계비는 그대로 건축사들이 받고 구조기술만 건축주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하도록 분리해야 된다. 이래야 구조기술에 적절한 인건비가 돌아가고 책임도 강화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건축사가 형사 책임까지 물게 되는 상황도 피할 수 있다.

박성준=구조기술사들이 독립적으로 계약을 맺게하는 데 개인적으론 동의한다. 그럼에도 전기, 소방, 통신, 구조 등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는 있어야 한다. 특히 건축사가 어떤 구조기술사랑 일할 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건 유지돼야 한다. 건물의 안전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안홍섭=좀더 설명을 붙이자면, 건축사법 4조는 ‘건축 등의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있다. 설계에 구조, 전기, 소방, 도면 등이 다 포함되는데 이들의 권리나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구조기술 역량이 없는 건축사가 사인 하나로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든 건 전세계적으로 있을 수 없다. 엉터리 법이다.

현장엔 임시계약직만 수두룩…짓고 나니 설계 도면과 딴판

계산과 도면은 맞는데 공사 현장에서 배근이 잘못되거나 누락한 일도 있었다. 부실 시공 왜 일어났나.

안홍섭=감리, 감독은 후차적 문제이고 첫째 중요한 것은 시공사가 제대로 건물을 짓는 것이다. 현재 건설 현장의 공사팀은 완전히 황폐화됐다. 1979년 제가 아파트 현장 시공기술사로 일할 때는 12층 아파트 한동을 기사 2명이 붙어서 일했다. 지금은 한 사람이 30층에 달하는 2개동을 맡는다. 시공사들의 원가경쟁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장 기술사들이 감리만큼 현장을 확인할 틈이 없다. 건설산업기본법이 총체적인 문제인데, 법상 현장 대리인으로 시공기술사 1명만 배치하면 되어서 기술사들이 계약직 일회용으로 전락했다.

박상호 A건축사사무소 전무(감리 경력 30년·이하 박상호)=맞다. 아파트 착공부터 준공까지 36개월이 소요되면 딱 36개월만 쓰는 직원을 구한다. 팀장급 이하는 대부분 현장 채용인데 감리인 나보다도 공사 진행 상황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공사가 개판 5분전이다. 당연히 현장채용이 많은 곳일수록 인명 사고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박성준=현장 상황은 설계자로서도 상당히 불안하다. 왜 관공사 건물은 설계에 돈을 많이 쓰고도 좋은 건물이 안될까. 설계부터 시공까지 퀄리티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서다. 도면이 현장으로 넘어간 뒤 설계자는 현장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 현장에 와보면 설계와 완전히 다른 건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설계자에게 묻지도 않고 편한 방식으로 시공해서다. 골조를 이미 세워버리면 되돌릴 수도 없다.

공사비 줄이면 상주는 LH 사업 특수성
전관보다 문제인 ‘관급자재’

LH발주 현장은 건설산업 전문가들이 기피한다고 알려졌다. LH 현장만의 특수성이 있나.

박상호=공사는 여건상 공기가 연장되거나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다. 하지만 LH 현장은 공사 금액이 증가한다고 하면 수정사항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민간보다 감리 인원도 더 부족하다. 예를 들면 700세대 LH 공사 현장에 건축 감리는 총 7명이 배정된다. 이것도 적은 편인데 LH는 특유의 서류 작업이 많아 감리단장과 공무보조가 서류에 매달려야 한다. 실질적으로 18개 아파트동을 도는 건 청년 할당으로 뽑힌 청년감리원 1명과 일반 감리 4명뿐이다.

또 현재 관급 공사는 전기, 토목 감리를 공사기간 내내 두게 되어있다. 토목을 예로 들면 1년6개월이면 작업이 끝나는데 3년 내 현장에 들어와있다. 문제는 그 인원수까지 포함해서 전체 감리 인원수를 맞추기 때문에 정작 준공까지 건물 상세하게 봐야할 건축 감리 인원은 적은 숫자로 유지되는 것이다.

안홍섭=전기, 소방, 통신 감리는 현재 산업통상부 소관으로 분리 발주된다. 이들은 건설 공사 범위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인원 수를 공정 별로 조정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업무량에 비할 때 건축 감리 인원이 제일 열약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박상호=지급·관급자재도 큰 문제다. 공공기관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고시한 품목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여기서 품질 관리가 잘 안되고 납품 날짜를 못 맞춰주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조달청에서 업체를 잘 바꿔주지도 않기 때문에 납품 업체가 ‘갑 중의 갑’이 된다.

안홍섭=관급자재는 폐기해야 맞다. 부실의 원천이다. 공사현장 폐기물 처리도 관급으로 진행되는데, 현장 쓰레기가 쌓이는 상황에서 차일피일 미루고 치우질 않으면서 현장 안전을 위협한다.

건축 감리 전문성은 어떤가

박상호=전문성이 있는 감리자가 100명 중 1~2명 밖에 안된다. 주로 공공기관 퇴직자들이 많다. 최소 6년간 건설현장 두개 정도는 경험해야 감리직에 대한 감이라도 생기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젊은 인재를 양성한다는 청년감리원 제도가 있지만 이들도 얼마 안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보고 시공사로 넘어간다. 40대 초반이 되어도 시공사 연봉에 절반밖에 안되니 감리를 안하려는 것이다.

안홍섭=해외에서는 건설현장의 산전수전을 겪은 최고 베테랑이 하는 게 감리, 즉 컨설턴트다. 법적 책임도 감리가 지는 게 아니라, 발주자와 건축주가 진다. 반면 국내에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열악한 대우를 받고 일하는 직종이 됐다. 발주자나 시공사 책임을 덤터기 쓰는 도구로 잘못 도입된 것이다.

발주처 책임 쏙 빠진 산언안전보건법

정부의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 이것만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나

김영민=무량판 구조에 철근이 없다는 건 콘크리트로 겨우 견디고 있다는 의미다. 전수 조사를 통해 미리 찾아낸 것은 잘한 일이다. 순간적 붕괴가 일어나는 무량판 구조는 철근이 위험을 방지하는 열쇠였고,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이후엔 PEB형태 건축물은 보강용 내부 보(스트럿)가 추가됐다. 이런 안전과 직결된 핵심 부분은 구조기술사가 현장에서 감리를 따로 볼 수 있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 발주처·건축주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 사람 몸도 필요한 데 근육과 살이 각각 있어야 하듯 건축물도 무조건 철근이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라 핵심 부분에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원가도 절감하고 안전한 건물을 만든다. 지금은 무조건 싸고 빨리 해주는 업체를 선택하면서 공공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안홍섭=맞다. 건축산업 관련 모든 법의 주어는 발주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모두 건설공사 발주자의 책임은 빠져있다. 이를 고치려는 법안이 두번이나 발의됐지만 건설기업 반대로 발목이 잡혀있다. 영국 등 선진국처럼 발주자에게 포괄적 책임을 부여하고 책임을 이행할 장치로 감리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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