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장수 어영담을 잃었다…이 애통함 어찌 표현할까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2023. 8.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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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20> 갑오년(1594년)4월1일~29일

- 몸 불편했지만 통제사 역할 전념
- 매일 장수들 만나 왜적 칠 일 의논
- 인재 얻기 위해 별시 과거장 개설
- 입부 李純信이 신임 충청수사로

▶갑오년(1594년) 4월

몸 아픈 것을 무릅쓰고, 거의 매일 장수들을 만나 적 칠 일을 의논하고, 부하들 챙기고, 적의 정세를 탐지하고, 군기를 확립해 가는 통제사의 일상생활은 이달에도 계속된다. 특히 이달에는 인재를 얻기 위해 진중과거를 본 점과 믿고 의지해 온 장수 어영담을 전염병으로 잃고 슬픔에 잠긴 일이 특이하다. 금오랑이 충청수사 구사직을 체포해 가고 입부 이순신(李純信)이 신임 충청수사로 온다.

경남 통영 한산도 제승당의 건물 앞쪽으로 복원해 놓은 활터 과녁이 보인다. 활터와 활터 정자는 이순신 장군의 군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4월1일[5월20일]

일식(日蝕)이 있었다. 나라에 재차 큰 난리가 일어나선 안 되는데 걱정이다. 장흥부사(황세득), 진도군수(김만수), 녹도만호(송여종)가 여제(厲祭·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위령제)를 지내겠다고 보고한 뒤 돌아갔다. 충청수사(구사직)가 와서 봤다.

*실록(1594년 4월 17일)에 의하면 영의정(류성룡)이 선조에게, 일식이 있었으니 난리가 쉬 그칠 것 같지 않다고 걱정한다.

4월2일[5월21일] 맑음.

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射亭)로 올라가 삼가현감(고상안)과 충청수사(구사직)와 같이 종일 이야기했다. 조카 해가 들어왔다.

4월3일[5월22일] 맑음.

오늘 여제를 지냈다.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 1080동이를 먹였다. 우수사(이억기)와 충청수사도 같이 앉아 군사들을 먹였다. 날이 저물어서야 숙소로 내려왔다.

4월4일[5월23일]

흐리다가 저녁에 비가 내렸다. 원수의 군관 송홍득과 변홍달이 새로 급제할 사람들에게 내릴 홍패(과거 합격증)를 가지고 왔다. 경상우병사(박진)의 군관 박의영이 와서 그의 장수(우병사를 말함)의 안부를 전했다. 식후에 삼가현감이 왔다. 늦게 활터 정자로 올라갔다. 장흥부사(황세득)가 술을 가지고 와서 종일토록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상우병사 박진은 경주성 전투에서 경주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는데, 정유년(1597) 명나라 장수에 구타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4월5일[5월24일] 흐림.

새벽에 최천보가 세상을 떠났다.

4월6일[5월25일] 맑음.

별시를 보는 과거장을 개설했다. 시험관은 나와 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구사직)가 맡고 시험보는 것을 감독할 참시관은 장흥부사(황세득), 고성현령(조응도), 삼가현감(고상안), 웅천현감(이운룡)이 맡았다.

4월7일[5월26일] 맑음.

일찍 모여 시험을 실시했다.

4월8일[5월27일] 맑음.

몸이 불편했지만 끝까지 시험장을 주관했다.

4월9일[5월28일] 맑음.

아침에 시험을 끝내고 합격자를 발표하였다. 큰비가 쏟아졌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무엇으로 말하랴!

*어영담은 이순신이 믿고 의지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장수였다. 부당한 탄핵을 받고 파직된 그를 류성룡에 주청해 자신의 조방장으로 복직시켜 든든하게 의지하던 중 복직된 지 반년도 안 되어 당항포에서 또 큰 공을 세웠고 공을 세운 지 한 달 만에 병으로 죽으니 이순신의 애통함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4월10일[5월29일] 흐림.

순무어사(서성)가 진에 온다는 기별이 왔다.

4월11일[5월30일] 맑음.

순무어사가 들어온다고 하므로 마중할 배를 내보냈다.

4월12일[5월31일] 맑음.

순무어사 서성이 내 배에 와서 이야기하는데 우수사(이억기), 경상수사(원균), 충청수사(구사직)가 모두 왔다. 술이 세 순배 돌자 경상수사 원균은 짐짓 술 취한 척하고 미친듯이 억지소리를 해대니, 순무어사도 무척 괴이쩍어했다. 원수사가 의도하는 바가 심히 음흉했다. 삼가현감은 돌아갔다.

4월13일[6월1일] 맑음.

순무어사가 전투훈련하는 것을 보고 싶다 하기에 죽도(통영시 한산면 상죽도) 바다 가운데로 나가서 연습해 보였다. 선전관 원사표, 금오랑 김제남이 충청수사(구사직)를 잡아가기 위해 진으로 왔다.

4월14일[6월2일] 맑음.

충청수사의 체포에 관해 금오랑과 자세한 말을 했다. 저녁나절에 순무어사의 배로 가서 군사전략을 자세히 의논했다. 잠시 후에 우수사도 오고 이정충도 불러오고 순천부사, 방답첨사, 사도첨사도 모두 왔다. 나는 몹시 취해서 어사와 하직하고 내 배로 돌아왔다. 저녁에 다시 충청수사의 배에 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4월15일[6월3일] 맑음.

금오랑과 아침식사를 함께했다. 늦게 충청수사(구사직)가 선전관(원사표), 금오랑(김제남),우수사(이억기)와 함께 왔다. 충청수사 구우경(우경은 구사직의 자)과 이별했다. 날이 저물어 이경사가 그의 형 헌(憲)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4월16일[6월4일] 맑음.

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 쌓인 공문을 처결하여 보냈다. 경상수사(원균)의 군관 고경운과 도훈도 및 변고에 보고책임을 진 담당 아전과 영리를 잡아다가 ‘지휘에 응하지 않고 적의 변고를 급보로 빨리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저녁에 송두남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모든 장계에 대해서 낱낱이 명령받은 대로 시행케 하였다.

4월17일[6월5일] 맑음.

늦게 활터 정자로 올라가 공문을 처결하여 보냈다. 우수사가 보러 왔다. 거제현령(안위)이 급히 와서 보고하는데, 왜선 100여척이 오늘 자기들 본토에서 나와서 절영도로 향해 간다고 했다. 저물 무렵에 왜적에 사로 잡혀갔던 거제 사람들 남녀 16명이 도망쳐 돌아왔다.

4월18일[6월6일] 맑음.

날이 새자, 도망해 돌아온 사람들에게 가서 적정을 자세히 물으니, 대마도 평의지(종의지)는 웅천땅 입암(진해 웅천동 제덕리)에 있고, 평행장(소서행장)은 웅포에 있다고 한다. 충청도 신임 수사(李純信, 이순신), 순천부사, 우우후가 오고 뒤이어 거제현령도 왔다. 저녁때 비가 시작해서 밤새도록 내렸다.

4월19일[6월7일] 비, 비

첨지 김경로가 원수부에서 와서 어떻게 적을 토벌할 것인지 그 대책과 대응에 관한 일을 논의하고서 그대로 한 배에서 잤다.

4월20일[6월8일]

종일 가랑비가 왔다. 우수사, 충청수사, 장흥부사, 마량첨사가 와서 군사 일을 의논하고 바둑도 두었다.

4월21일[6월9일]

비가 오다 개다 했다. 혼자 장대(將臺) 아래 앉아 있어도 저녁내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방답첨사(이순신)가 충청수사가 되었기에 중기(重記 : 교대할 때에 넘겨주는 재산목록 등 인수인계서)를 승계받아 서명해야 한다며 돌아간다고 고했다. 저녁에 김성숙과 곤양군수 이광악이 와서 봤고, 흥양현감(배흥립)도 진에 들어왔다. 본영 탐후선도 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고맙고 다행하다.

4월22일[6월10일] 맑음.

바람이 시원하여 마치 가을 날씨 같다. 첨지 김경로가 돌아갔다. 장계와 조총을 올려보내고, 동궁께는 주문하신 장창을 봉해 올렸다. 저녁에 장흥부사(황세득)가 오고 기다렸던 흥양현감(배흥립)도 왔다.

4월23일[6월11일] 맑음.

아침에 순천부사와 흥양현감이 오고, 뒤이어 곤양군수 이광악이 술을 가지고 오고, 임치첨사와 장흥부사도 왔다. 곤양군수는 몹시 취해 미친 소리로 떠들어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도 약간 취했다.

4월24일[6월12일] 맑음.

아침에 서울로 갈 편지를 썼다. 영암군수와 마량첨사가 보러 왔다. 순천부사는 돌아갔다. 여러 가지 장계를 올려 보냈다.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순찰사의 종사관이 들어왔다고 한다.

4월25일[6월13일] 맑음.

새벽부터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고통스러웠다. 보성군수가 와서 봤다. 밤새도록 앓았다.

4월26일[6월14일] 맑음.

통증이 매우 심하여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 곤양군수가 돌아간다고 했다.

4월27일[6월15일] 맑음.

통증이 잠시 그친 것 같아 배 안의 숙소로 내려갔다.

4월28일[6월16일] 맑음.

기력이 생기고 병세가 수월해졌다. 경상수사(원균)와 좌랑 이유함이 와서 만났다. 아들 울이 문병하러 들어왔다.

4월29일[6월17일] 맑음.

몸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예정한 대로 오늘 전라우도에서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을 먹였다.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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