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별천지] ⑩ 천년 주목·왕의 기운 품은 영험한 발왕산

이상학 2023. 8.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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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주목·독일가문비나무 군락지…산 정상 천연수 '콸콸'
동계 아시안게임·올림픽 치른 스키·평화 '성지'…"미래의 산"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평창=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태백산맥은 한반도를 동서로, 그중 대관령 고원은 강원특별자치도를 영동과 영서로 가르는 분수령이다.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왕산면 그 너른 고원에 산 하나, 우뚝 있다.

해발 1천458m, 발왕산(發王山)은 높고, 넓고, 깊다.

발왕산 기 전망대 [모나 용평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옛 지도에는 소우음산(所宇音山) 또는 발음봉(鉢音峰), 망랑산(望浪山)으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가운데 글자를 '왕성할 왕'을 넣은 발왕산(發旺山)으로 불렸으나 2002년 '임금왕'으로 고친 발왕산(發王山)으로 쓰고 있다.

여덟 곳의 길지가 있다고 해서 팔양산(八陽山)이라고도 했다는데, 한자만 보면 왕이 날 기운을 품은 곳이다.

그 기운 만큼이나 산에 붙은 휘장도 화려하다.

199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동계아시안게임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키 경기가 열린 스포츠 성지다.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어린아이도, 노인도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

지난해 눈 내린 평창 발왕산 [평창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계절 역행하는 백두대간 고봉…대자연 천년 쉼터 주목 군락지 비경 천지

20여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전망대가 갖춰져 있다.

북으로는 오대산과 황병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두타산, 남쪽으로는 노추산 등 1천m 고봉이 눈높이를 맞춘다.

동쪽으로는 동해가 실루엣으로 설핏 펼쳐지며 황병산은 그 푸른 보다보다 더 넓게 펼쳐진다.

산행의 시종(始終) 발왕산 정상은 어느 계절에 찾더라도 순색이다.

발왕산 정상 주목 [촬영 이상학]

봄과 여름에는 초록빛, 가을에는 붉은빛, 겨울에는 하얀빛을 뽐낸다.

여름철 30도를 넘는 살인적인 폭염에도 발왕산 정상은 18도 안팎의 찬 바람이 분다.

봄꽃이 만개한 5월에도 함박눈을 뿌리는 탓에 신문 1면 사진을 장식하기도 한다.

한겨울 설경과 가을 단풍은 물론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다양한 야생화가 화려하게 피어 일 년 내내 신비함을 품고 있다.

약성을 가진 100여종 식물이 살아가는 탓에 건강과 치유의 근본이 되는 기운도 가득하다.

항암치료제 원료인 택솔(Taxol)은 주목에, 폐 질환 치료에 특효인 신이(辛夷)는 산목련에 즐비해 최대 군락지로 불린다.

또 우리나라 첫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메인 촬영지이기도 하다.

단풍이 짙은 평창 발왕산 [연합뉴스 자료사진]

산 정상에 서면 영서와 영동을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인 대관령 고원이, 맑은 하늘을 허락한 날에는 저 멀리 동해도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낙엽송과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아 더없이 의연함을 뽐내는 주목이 즐비하다.

정상부 집중하여 포진된 주목은 신비한 생명력을 발산하며 바닥에는 순백의 맑고 깨끗한 청정수인 발왕수가 솟아난다.

바나듐, 규소 성분이 들어있고, 나트륨 성분은 거의 없어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품을 닮은 산으로 불릴 만하다.

발왕산 천년 주목 숲길 [촬영 이상학]

이강근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발왕수 앞 안내문을 통해 "청정수는 발왕산 정상부의 눈이 녹아 단단한 퇴적암 속에 스며들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발왕산 정상에 쌓인 눈은 겨울 동안 산을 덮고 있으면서 생물들을 혹한으로부터 보호하다가 따뜻해지면 추위에 움츠렸던 생명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발왕수가 됐다는 것이다.

발왕산 정상 발왕수 [촬영 이상학]

그러면서 "발왕산과 발왕수에 장구한 지질학적 역사 속에서 자연이 빚어낸 어머니의 품성이 배어있다"고 평가했다.

하루 매일 410t의 천연 암반수가 나오는 발왕수를 발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모나용평 리조트는 수국차빵이나 김치, 간장 재료로 사용한다.

발왕산은 우리나라 주목 최대 군락지이기도 하다.

산 정상부에는 최고 1천800년 수령을 비롯해 260여 그루의 훤칠한 주목이 왕궁을 호위하듯 기세 차게 서 있다.

1977년 산림유전자원원보호림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한 이 산은 2006년에 동부지방산림청이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숲 100선에 선정됐다.

올림픽 유산 남기자…정상에 '평창평화봉' 조성

산 정상에 세워진 평창평화봉 [촬영 이상학]

평창 발왕산 정상 명칭은 2020년 '평창평화봉'으로 지정됐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알파인 경기가 열렸지만, 그동안 정상 봉우리 명칭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창군과 동부지방산림청이 올림픽 유산인 평화올림픽을 기념하고 주민들의 기상과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한반도 평화의 발원지인 발왕산 정상에 평화를 상징하는 지명을 정했다.

그러면서 평창군은 동부지방산림청과 함께 산 정상에 평화봉 기념 전망대와 숲길 7.2km를 조성했다.

발왕산 평창 평화봉 숲길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인 주목을 보호하고 숲길 걷기를 통해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천년의 경관과 함께 치유의 시간을 선사할 만하다.

평창군과 등산로를 끼고 있는 모나 용평 리조트는 이곳을 국내 사계절 관광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발왕산 관광 케이블카 탑승장 입구 [촬영 이상학]

왕복 7.4km로 국내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 그대로 보존된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왕산 정상에서 35m의 높이로 우뚝 솟아있는 '발왕산 氣(기) 스카이워크'를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평온한 상태에서 발왕산의 기운을 온전히 받을 수 있어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린 정상 부근에는 수천 년 주목의 신비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천년 주목 숲길이 펼쳐진다.

이 숲길은 유모차와 휠체어도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이나 턱이 없는 무장애 데크길로 조성해 노약자는 물론 장애인 등 관광 약자도 불편함 없이 발왕산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산악인 엄홍길씨가 남긴 '천 년 이상을 살아온 나무는 혼이 깃든 산신(山神)이며 발왕산은 영산(靈山)'이라고 적힌 글귀가 선명하다.

산악인 엄홍길 글귀 [촬영 이상학]

숲길은 저마다 전설과 사연을 담아 마유목, 일주목, 왕발주목, 8자주목, 고늬의 주목, 어미니왕주목, 겸손의 나무, 승리주목, 고해주목, 아버지왕주목, 8왕논이주목, 서울대나무로 의미가 담겨 있다.

가는 곳곳에는 산목련, 발왕수, 산목련, 이끼가든 등으로 정해 쉬었다가 가도록 했다.

정상 부근에서 잠시 내려온 발왕산 자락 볼거리는 덤이다.

천년주목숲길 입구 [촬영 이상학]

국내 최대 독일가문비나무 군락지를 이룬 '애니 포레'(Ani-Fore)는 힐링 명소로 손색이 없다.

영어 Animal(동물)과 Forest(숲)의 줄임말로 길을 따라 알파카 목장과 쉼터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발왕산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산나물이나 약초를 따러 산을 오르던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설악산 등 국립공원처럼 여느 산만큼 알려지지 않은 발왕산을 주민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대표 관광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욱환 평창문화원장은 19일 "발왕산은 옛날부터 산세가 험한 곳도 많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워 산을 신성시하는 분위기도 있었다"며 "올림픽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된 발왕산을 천혜의 자연을 느끼도록 발전시켜 지역 대표 관광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일가문비나무 군락지 [촬영 이상학]

발왕산의 자연을 보전할 부분은 보전하고, 개발할 수 있는 곳은 발전시키는 관광 자원화를 통한 명산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왕산의 모습은 변화를 거듭하며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발왕산을 오르는 제2케이블카 관광시설이 추진되고, 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상품이 개발 중이어서 앞을 더 기대하는 미래의 산이다.

h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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