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경기과학고 3인방이 말하는 '수학을 잘한다'의 의미

손인하 기자 2023. 8.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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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과학고 수학 절친 3인방 김기범, 이상학, 이동령 학생. 수학동아 제공

경기과학고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 3명을 임승현 수학 부장 교사에게 추천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수학 내신이 상위 30~50%라 매우 의아했는데 임 교사는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 학생들이라며 자신을 믿어보라고 했습니다. 

세 학생이 수학에 얼마나 진심인지 임 교사가 왜 추천했는지는 인터뷰 내내 기승전 수학 문제 이야기로 빠져 절실히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Q. 수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언인가요. 

A(상학)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야기로 아주 쉽게 배우는 수학' 시리즈를 보면서 새롭게 수학 개념을 익히는 것이 재밌었어요. 이 정리에서 배운 개념이 다른 정리에서도 쓰여서 신기하더라고요. 

이후엔 수학의 엄밀함이 좋았죠. 증명된 정리는 오류도 없고 예외도 없잖아요. 스스로 논리를 세워보거나 기존의 논리를 따라가는 게 재미있어 수학이 좋아요."

A(동령)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피보나치 수 사이의 관계를 찾거나 원주율의 자릿수를 외우는 등 숫자로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예를 들어 피보나치 수인 1, 1, 2, 3, 5, 8, 13, 21에서 규칙을 찾아봤어요.

피보나치 수열의 연속된 세 개의 수에서 바깥 두 개의 수를 곱하고 가운데 수를 제곱해서 빼면 1과 -1이 번갈아 나와요. 예를 들어 수열의 맨 앞인 (1, 1, 2)에서2 = 1, (1, 2, 3)에서22 = -1, (2, 3, 5)에서32 = 1 처럼요. 이런 식으로 숫자 사이 규칙을 찾아가면서 수학에 흥미가 생겼지요."

A(기범) "중학교 1학년 때 영재학교 준비반에서 수학 공부를 하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이게 됐어요. 모르는 개념이나 정리가 많이 나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위키피디아에서 개념을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니 새로운 정리나 개념을 알아내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특히 이차, 삼차, 사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존재하니 당연히 오차방정식의 근의 공식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오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키피디아를 읽으며 알게 돼서 너무 신기했어요."

Q. 모두 선행학습을 했나요.

A(동령) "교과과정보다 빨리 수학 공부를 하진 않았어요. 어떤 개념을 배우면 관련 개념도 궁금하니까 스스로 찾아본 것뿐이에요. 각 개념과 정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수학 문제를 풀거나 연구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저는 항상 정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개념을 확장하거나 바꿔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어요. 예를 들면 x2 + y2= z2이면 지수를 3, 4, 5…, n으로 바꿔보는 거지요."

김기범, 이상학, 이동령 학생 수학동아 제공

Q. 수학이 안 풀려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A(동령) "고통 받으면서까지 수학 공부나 연구를 해본 적은 없어요. 막힌 부분이 있으면 ‘이 방법이 아니네’ 하고 다시 돌아가서 풀고 도저히 안 풀리면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음 날 풀어요. 문제가 안 풀리면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A(기범) "저도 힘들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약 40일 동안 한 문제를 풀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이 아이디어, 저 아이디어를 적용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오래 생각하는 게 당연했어요. 그러다 다른 문제를 풀거나 다른 개념을 배우면 풀리는 경우가 많았고요."

Q. 수학에 흥미를 잃지 않는 비결이 있나요.

A(상학) "좋아하는 수학 분야를 정하면 푹 빠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방정식이 좋으면 대수학, 숫자가 좋으면 정수론, 함수가 좋으면 해석학을 한번 파보면 좋아요. 제겐 그 분야가 수리논리학과 위상수학이에요. 

수리논리학이 없으면 수학의 다른 이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기반이 사라져요. 그 점이 매력적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체계가 힐베르트 프로그램(20세기 초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가 동료 수학자와 함께 현 수학 체계가 모순적이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만든 프로그램)인데 공리 세 개와 추론 규칙 하나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놀라웠어요.

위상수학은 한 달이 지나도 못 푸는 문제가 나올 정도로 어렵긴 해도 논리 흐름을 주의 깊게 따라가야 한다는 점이 좋아서 푹 빠져서 공부하고 있어요."

A(동령)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태도가 흥미를 잃지 않는 비결인 거 같아요. 뭐든 ‘왜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면 흥미가 생겨요."

Q. 수학을 잘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동령) "좋아하는데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학교 수업이 자신의 이해 속도보다 빨리 진도가 나가기 때문일 텐데요. 수학 개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니 학교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그리고 수업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아요. 저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필기해요. 그리고 필기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따로 적어놨다가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바로 질문하러 가서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해요. 항상 10개 정도 질문하는 것 같은데 수학 개념을 완벽히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A(상학) "수학 시험 기출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보는 것이 수학 공부에 도움되는 것 같아요. 시험 문제는 연습 문제나 기출 문제에서 벗어난 부분에선 안 나와요. 그래서 기출 문제를 풀면 비슷한 문제를 풀 때 바로 활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고 일단 자신 있게 풀어보세요. 막히면 다시 돌아가서 다른 방법으로 풀면 되잖아요."

A(기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데 잘하고 싶은 학생은 일단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요. 잘하는 방법은 수학 개념을 정확히 알고, 복습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올해 한국수학올림피아드 3차 시험을 준비할 때 수학 문제 풀이를 모두 공책에 적었어요.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제 풀이 과정을 적었고 제가 푼 방법 외의 풀이도 썼지요. 시험 한 달 전에 공책에 써놓은 모든 내용을 다시 복기했어요. 비슷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훈련하니 한국수학올림피아드 3차 시험에서 우수상을 탔어요."

김기범, 이상학, 이동령 학생의 수학공부 아이템. 수학동아 제공

● 함께 수학 연구 하는 법

Q. 잠시 쉬는 시간에 수학 게임을 하던데 평소에도 수학 게임을 하나요.

A(상학) "네. 저희끼리 노는 거예요. 10분 안에 가장 큰 소수를 찾는 게임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소수를 찾기도 하고 서로 수열 문제를 내거나 어려운 수열 문제를 찾아와서 규칙을 찾아봐요. 저희 모두 규칙 찾는 걸 좋아하거든요."

A(기범) "보통 칠판에 누군가가 수열을 적으면 답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토의하고 아는 사람은 못 푼 사람이 맞힐 수 있도록 힌트를 조금씩 줘요. 그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많아요."

Q. 경기과학고에 들어온 계기가 수학 때문인가요.

A(동령) "네. 경기과학고에 가면 수학 연구를 할 수 있고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과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수학을 좀 더 깊게 배울 수도 있고요."

A(기범) "수학이 재밌는데 그런 수학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친구가 경기과학고에 있을 것 같아서요."

A(상학) "저도 경기과학고에 가면 ‘수학 얘기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입학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진 않더라고요. 저희 셋, 나머지 동아리 부원 3명 정도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요."

Q. 수학 동아리를 하나요.

A(상학) "네. 저는 연구 동아리와 교지 동아리에 소속돼 있어요. 2학년 때부터 수학 연구 동아리인 ‘항등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수학 연구를 하고 있어요. 현재 동아리장을 맡고 있어요.

작년에는 한 주제를 연구해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어요. 정사각형 내부에 두 개의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두 점 사이 거리의 기댓값을 구하는 연구였는데요. 정사각형부터 시작해서 정육각형, 정십이각형이런 식으로 점차 늘려가면서 기댓값을 찾았어요."

A(기범) "저도 원래 항등원을 했었는데, 현재는 제가 동아리장인 수학 교지 동아리 ‘에르되시’만 하고 있어요.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수학을 흥미로워할까 고민하다가 교지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아 한 달 전쯤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수학 퍼즐, 큐브, 수학논리 등 말랑말랑한 주제로 수학 이야기를 재밌게 전하려고 해요."

경기과학고 수학 연구 동아리 ‘항등원’에서는 연구한 내용을 포스터로 만들어 발표한다. 경기과학고 항등원 제공

Q. 수학 동아리 활동 가운데 가장 짜릿한 순간이 있나요.

A(동령) "항등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있는 논문을 찾았을 때요. 여섯 명이서 2차원에서 n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는데요. 한 친구가 찾은 논문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면 n차원에서도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 너무 짜릿했어요. 실제로 풀렸지요."

Q. 공동연구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A(상학)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아이디어를 칠판에 적어요. 그리고 의견을 나누죠. 그러다 풀릴 것 같으면 실제 계산이 맞는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서 확인해요.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못 찾았을 땐 다 같이 모여서 논문을 찾으면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탐색해요."

Q. 수학동아 폴리매스 문제도 같이 푼다면서요.

A(상학) "맞아요. 문제가 생각날 때마다 같이 의견을 나누곤 해요. 완전히 해결한 문제는 별로 없어서 풀이를 폴리매스에 올리진 않았어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의 길이 문제(국가수리과학연구소 29번)는 무작위 뽑기 확률 밀도 함수를 고려하다가 잠시 보류한 상태고 마르코프 체인 문제(대한수학회 73번)는 완전히 해결한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수학 토론을 하고 있던 세 친구들. 수학동아 제공

Q. 수학 동아리 활동이 각자에게 어떤 도움이 됐나요.

A(기범) "서로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잖아요. 각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지식 공유의 장이 될 수 있어서 좋아요."

A(동령) "함께 떠들면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무엇보다 유익해요. 새로운 걸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공동연구를 하는 법을 알게 돼서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관련기사

수학동아 8월호, [수학 상위 1% 비밀무기] 경기과학고 수학 절친 3인방, 수학을 잘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손인하 기자 cown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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