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kg 주웠는데 고작 4000원” 폐지 단가 하락에 폭염까지...한숨 느는 노인들

최효정 기자 2023. 8. 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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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일하고 수중에 4000원… 폐짓값 47% 급락
중국 폐지 수입 제한 영향
30도가 넘는 날씨지만 생계 위해 폐지 수집해
시간당 948원 버는 노인들… “정책 지원 나서야”
“남편이 치매 노인이라 내가 나와야 돈을 벌어. (폐지가) 있으나 없으나, 젊으나 늙으나 밖에 나와서 일을 해야 먹고 살지.”
-폐지 수집 노인 이옥자(85)씨
16일 오전 8시쯤 모은 폐지를 끌고 이동 중인 임순현(82)씨 /강정아 기자

16일 오전 8시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빌라 앞에서 임순현(82) 씨가 전날 밤부터 모은 폐지 80㎏를 수레에 쌓고 있었다. 폐지를 얇게 펴 최대한 꾹꾹 눌러 담은 뒤 끈으로 고정했다. 출근길 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수레를 끌며 10분 정도 이동하자 자주 가는 고물상이 나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돈은 4000원. 임 씨는 “전에는 이렇게 담으면 1만원은 받았는데 파지 값이 반으로 줄었다”며 “한창 비쌀 땐 노인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주우려고 했는데 이젠 필요한 사람만 나와서 줍는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 가격 하락과 폭염으로 폐지 줍는 노인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의 현황’과 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은 지난해 기준 약 1만5000명. 이들은 하루 평균 12.3㎞를 이동하고 11시간 노동하며 1시간당 948원을 번다. 대부분이 생계를 이어갈 목적으로 폐지를 줍는데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수입을 제한한 뒤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며 어려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동대문구 회기동 고물상에 한 노인이 폐지와 폐품을 팔기 위해 대기 중이다. /강정아 기자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당 골판지(종이상자) 가격은 2년 전 평균 138.3원에서 전월 72.7원으로 47% 급락했다. 폐지 가격은 2021년 중국 정부의 폐지 수입 금지 조치 이후 하락세다. 중국은 자국 내 환경보호를 위해 2017년 고체폐기물법을 개정해 고체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2년 전 수입 금지 대상에 폐지를 포함했다. 이에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수거를 하지 않으려는 국내 업체들이 많아졌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A 고물상 직원 김 모(56) 씨는 “박스가 ㎏당 130원까지 올랐을 때는 노인들이 많이 오갔었는데 요즘은 오는 노인분들이 줄었다”라며 “중국으로 폐지 수출이 잘 안되다 보니 가격이 계속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폐지 가격이 떨어지면서 취미 삼아 폐지를 줍던 이들은 떠나고 생활비를 구할 수 없는 이들만 현장에 남았다. 이런 노인들 역시 폭염에 이전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못해 수거량이 예전만 하지 않다. 8월 초에는 폐지를 줍던 노인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2일 광주 동구에서 폐지를 줍고 귀가한 60대 여성이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 여성의 사망 당시 체온은 41.5도로 보건당국은 온열 질환(열사병)으로 숨졌다고 추정했다.

16일 오전 11시쯤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고물상 방향으로 폐지 수집을 하는 이옥자(85)씨가 수레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강정아 기자

더위가 태풍 카눈이 오기 전보다는 꺾였지만 이날 오전 11시가 넘자 기온이 30도로 올라갔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더운 열기가 올라오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이해용(76) 씨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폐지를 주워 테이프를 하나하나 떼고 있었다. 15년째 폐지 수집 일을 하는 이 씨는 지적장애 3급인 아들과 함께 폐지를 줍지만 이날은 아들 몸이 좋지 않아 혼자 나왔다. 이 씨는 “새벽부터 나와 돌았는데 폐지를 팔아 겨우 1000원 좀 넘게 벌었다”라며 전날보다 수입이 적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에서 만난 이옥자(85) 씨는 이날 아침 7시쯤 회기동 고물상에 전날 모은 폐지를 판 뒤 다시 폐지를 모으고 있었다. 자신보다 두 배는 되는 수레를 끌고 골목에 쌓인 박스를 주우며 제기동 고물상 방향으로 이동하는 길을 기자가 1시간가량 같이 걸은 뒤 이 씨의 두피 온도를 재보니 41.1도로 뜨거웠다. 이 씨는 치매 노인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홀로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다. 자식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손 벌리기 미안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날 제기동 고물상에서 그가 챙긴 돈은 7100원. 폐지는 2300원에 그쳤지만 함께 가져간 깡통이 6㎏로 48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집에서 쉬다가 해가 지면 다시 폐지를 주우러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12시쯤 폐지 수집 노인과 한시간 정도 돌고 난 뒤 두피 온도를 측정하니 41.1도로 나왔다. 이날 체감온도는 33도였다. /강정아 기자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국내 재활용 자원 순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국내 폐지 발생량의 35%, 재활용량의 74%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폐지 수집 활동에 대한 활동비나 정부와 지자체가 다른 일자리 연계 등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생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1만5000여명의 노인들에게 정책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라며 “폐지 수집 노인이 더 이상 위험노동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이며 이를 위해 직접 지원을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다른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게끔 하는 일자리 연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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