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리빙센스 2023. 8. 1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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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지를 치는 방법

삶이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정해진 계획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고통받는, 크고 작은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심경선 작가가 전해 온 위로.

글쓴이 심경선

식물을 통해 마음을 쓰다듬는 따뜻한 글을 쓴다.〈정신의학 신문〉 (psychiatricnews.net)에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아주 사적인 숲의 일기', '불안한 당신께 드리는 식물 이야기' 등의 칼럼을 연재한다. 2022년 에세이집《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를 냈다

✽ 식물이 전하는 다정한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jsh@living-sense.co.kr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연을 보내주세요.

Q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계획 세우기를 좋아했습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시간대별로 정해 두는 건 제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인데요. 친구들과의 간단한 약속은 물론이고 어쩌다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방문해야 할 장소, 맛집, 교통편, 이동 시간 등을 세세하게 계획해 두어야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플랜 A에서 더 나아가 B, C까지 정해 두고, 대단한 미션이라도 완수하듯 5분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곤 합니다.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이느라 녹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강행군을 이어갑니다. 미리 계획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제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많아요. 하지만 계획했던 일들을 해내지 못하면 찾아오는 좌절감이 싫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어쩌면 강박증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 34세, 브랜드 마케터, 강지연(가명)

A 사연자분의 이야기를 접하니 철없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저도 약하지만 강박이 존재하거든요. 저의 강박에는 약간의 규칙이 있는데, 외출할 때는 꼭 샤워를 하고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급하거나 짧은 외출에는 한 번쯤 괜찮을 법도 한데 말이죠. 또 다른 강박은 물건의 브랜드 라벨 앞면을 내가 볼 수 있도록 진열하는 것입니다. 이 버릇은 몇 년 전부터 생겼는데,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을수록 더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다행인 것은 위의 두 문제는 저의 일상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강박'이 있다는 그 자체가 싫어서 벗어나 보려고 이런저런 불규칙적 상황에 나를 던져놓고 버텨보라고 강압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대했어요. 작고 규칙적인 것에 집착하는 제 모습을 어딘가 숨기고 싶었다 할까요?

전문가가 아니기에 저는 사연자분의 강박 수준이 치료를 요하는지, 스스로 조절이 가능한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심각하다 여기시면 정신의학의원에서 강박에 관련된 테스트를 진행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삶에 고통을 주고 일상에 방해가 될 만큼이라면 적당 수준으로 긴장을 낮춰주는 치료를 받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식물은 목질화(나무 껍데기처럼 기둥이 갈색으로 단단히 변하는 현상)되는 과정에서 규칙성 있게 자랍니다. 나란히 가지가 자라고, 나란히 잎이 납니다. 인간이 개입해 적당한 환경을 조성해 주면 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바로 '가지치기' 말입니다. 어느 곳을 어떻게, 언제 가지치기하느냐에 따라 식물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규칙성 있게 꾸준히 살아가던 식물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요.

그렇다고 식물이 열심히 살기를 그만두거나, 자신의 가치를 낮춰볼까요? 아닙니다. 가지치기 이후 식물은 중심 기둥이 더 두껍고 단단한, 멋진 나무로 자라납니다. 자신의 성장 방향을 전환하면서 유연한 판단을 하는 것이죠. 큰 테두리의 규칙성 속에 자유로운 변주가 있습니다. 사연자님께는 '휘커스 움베르타'를 추천합니다. 휘커스는 생명력이 아주 훌륭합니다. 목질화하면서 자라기에 잘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잎이 풍성한 낮은 키로도, 높다란 외목대로도 키울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답니다. 가지가 잘리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느낌으로 가지도, 잎도 새로 냅니다. 한 번에 '계획 없는 여행' 같은 목표를 뚝딱 해내실 수는 없을 거예요. 계획 속 세상은 나름대로 사연자님의 성향이고, 사연자님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힘일 테니까요. 봄·가을, 에너지가 새롭게 돌 때, 여유가 있고, 변화할 힘이 생겼을 때 가지치기를 하듯이 조금씩 변화된 환경 속에 자신을 던져보세요. 자신을 자유롭게 할 힘이 그 안에 있을 겁니다. 천천히 시작해 보세요. 아주 긴 도전일지라도 성공할 거예요. 그 어디가 종착지일지라도 규칙이 있든 없든 그것조차 자유로운 사람이 되세요. 스스로의 갑옷으로부터 그리고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말이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CREDIT INFO

editor장세현

words심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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