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미동맹 70주년에 생각하는 고엽제 참전용사들…국가는 무엇인가?

정충신 기자 2023. 8.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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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은 월남파병 그 이후
유영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문위원

유영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이 월남전에 파병한 이유와 그 결과를 보면, 왜 우리가 참전용사들에게 보훈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있어 초석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냉전이라는 큰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은 국제전략적 측면에서, 한국 역시 내부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한국은 월남전에 참여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한미동맹을 강화시킨 월남파병

월남파병의 의미를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월남파병이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 부국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지원과 전쟁특수가 아니었다면 경제 기적은 결코 이룰 수 없었다. 국군의 월남파병에 따라 국내에 유입된 거액의 외화는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한국이 파병을 시작한 1964년 당시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겨우 130달러를 웃돌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필리핀이 200달러 정도였다니 참으로 한국은 가난했다. 당시 유입된 외화는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원조 10억 달러를 비롯해 직간접으로 유입된 외화가 5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1965년 한일수교로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 지원을 받은 것과 비교해 그 10배인 엄청난 액수의 종잣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5년 단위로 착실히 진행해 나갈 수 있는 밑천이 됐고,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 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지원으로 한국전쟁 당시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의 성격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팽창정책에 맞서서 미국과 월남을 우방국으로 도왔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체제는 더욱 강화됐고, 미국 일변도의 한미동맹 관계를 제한적이나마 상호의존적 형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미국도 한국과의 동맹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월남전 파병이 그 당시 한반도의 안보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한국이 파병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주한미군 2개 사단을 베트남에 파견했을 것이기에, 당시 한반도의 불안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국군의 참전은 한반도 안보에도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

◇치명적인 독극물 고엽제

1964년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의 파병을 시작으로 맹호, 청룡, 백마부대의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1973년 3월 완전 철수까지 약 32만여 명이 월남에 갔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고,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5000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현재 생존자 17만여 명 중 13만여 명이 고엽제에 피폭돼 다양한 종류의 병을 앓고 있다. 게릴라(베트콩)들이 숨어있는 밀림을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뿌렸는데, 이 제초제 이름이 고엽제(Agent Orange)였다. 고엽제 성분에는 다이옥신이라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함유돼 있는데, 이것은 분해도 용해도 잘되지 않아서 인체에 극소량만 흡수돼도 몸속에 축적돼 10~25년이 지난 후에 각종 암은 물론 신경계 손상, 기형 유발, 독성유전 등의 각종 후유증을 일으킨다. 현재는 그 독성이 유전돼 2세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을 주도한 미국은 밀림을 제거하기 위해 8360만 리터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당시 참전용사들은 뿌려지는 이 약제가 무엇인지도 주의사항도 없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월남파병으로 얻은 것이 많은 이면에, 한국이 잃은 것은 그 많은 사상자와 독성이 강한 고엽제에 노출된 한국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안고 살아가야 할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파월 장병은 비록 나라가 가난하고 스스로가 가난해서 갔다 하더라도 국가의 부름에 응했고,개인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개인적 가치인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터로 나갔던 사람들이다. 이제 보편적 가치로서의 국가가 특수한 개인적 가치로서의 국민에게 어떤 존재로 답해야 하는지만 남는다.

월남파병 장병들에게 해결돼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월남전 참전군인에 대한 미결의 전투근무수당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전용사 중 고엽제로 인해 피해를 본 용사들의 피해보상과 후유의증 용사들의 미망인 승계에 관한 것이다.

월남전 참전군인에 대한, 아직도 미결 상태인 전투근무수당에 대해서, 당시 정부는 ‘군인보수법’ 제17조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는 외국의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대한민국의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해석되고, 월남전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을 지금까지 미뤄오고 있다. 하지만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가 주가 아니라, 그 장소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그러한 위험 상황에서 전투를 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다. 전장은 비록 베트남이지만 우리 전투군인들은 법이 정하는 똑같은 위험에 노출됐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현장을 생각한다면 전투수당은 일종의 위험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이고,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베트남의 안보가 한국의 안보와 연계돼 있다는 인식, 즉 베트남 공산화의 저지가 한반도 공산화 저지에 이바지했다고 보면,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를 결코 국내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법원 역시 국가가 참전군인들의 전투근무수당 수급권을 침해했더라도 이미 30년이 경과한 것이라 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이미 소멸됐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당시 전투부대를 파병한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미국과 태국은 각각 자국의 재정부담으로 전투수당을 지급했다. 해외파병의 경험이 없었던 한국은 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혼합해 사용했다. 1963년에 제정된 ‘군인보수법’은 64년에 파병하면서 시행령을 고쳤어야 했다. 이 또한 정부가 제대로 국민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그 이후에 이에 대해 규명하는 일이 더러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국가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자 인간 존엄과 가치에 대한 문제이다. 그간 정부나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무능으로 직무를 방기 내지 유기했으므로,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국가는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인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면, 실제도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지구 끝까지 가서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국민을 구출하고 유해를 송환해 온다. 미국이 민주주의 하는 나라답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우리는 아직도 왕조사상이 근저에 있어 관(官)이나 정치인이 주인인 줄 착각하고 있다.

국가에 묻고 요청한다. 첫째, 고엽제 후유증과 고엽제 후유의증의 구분을 없애고 고엽제 후유증으로의 단일화해야 한다. ‘의증’이라 함은 의심이 된다. 즉,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월남참전 유공자분들께는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며 최대한 많은 분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후유의증이라고 해서 결코 후유증보다 가벼운 질병이 아니다. 다발성경화증과 같이 전신이 마비되기도 하는 중증의 질병들이 후유의증에 포함되어 있어 이분들과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결코 후유증 못지않다. 오늘날 치매처럼 이 고엽제 피해 역시 가족 전체가 감내해야 하는 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모든 가족분께도 똑같은 위로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둘째,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는 본인 사망 후 유족들에게 그 보훈이 승계되나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비롯한 참전유공자에게는 승계가 매우 제한적인 불합리가 있다. 현재는 상이등급 6급 이상의 경우 배우자 등에 대해 유족승계가 되지만, 상이등급을 떠나서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가 있는 가정의 경우에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등급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상이등급 6급 미만도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가 포함된 가정에 대해서도 유족승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월남참전유공자는 고령으로 인해 빠르게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분들이 살아계실 때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것은 물론, 젊은 날을 되돌아볼 때 그래도 가치 있는 일에 젊음을 바쳤다는 심리적 보상의 차원에서도 서둘러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미래세대들에게도 국가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중요한 귀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전쟁의 폐해를 딛고 눈부신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를 지켜온 호국영웅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한 연설문 중 일부다.

정리=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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