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하지 않는 원칙’ 아들 윤석열에게 남겼다···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

박윤균 기자(gyun@mk.co.kr) 2023. 8. 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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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인 尹대통령에게도 원칙 중요시해
윤석열 대통령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윤 대통령이 지난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투표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2023.8.15 [연합뉴스 자료사진]
15일 별세한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원칙주의자’의 삶을 살아온 인물로 평가된다. 아들인 윤석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중시하게 된 것도 아버지인 윤 명예교수의 성품과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윤 명예교수는 1931년 충남 공주 탄천면 삼각리에서 태어났다. 파평 윤씨 문정공파 12대손인 윤 명예교수는 파평 윤씨 집성촌이 위치한 논산 노성면 등에 거주하기도 하면서 공주농업고등학교(현재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학교 상경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윤 명예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직후인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1966년에서 1968년까지 일본의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윤 명예교수는 박사학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또한 그의 ‘원칙주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윤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지만, 일본 문과계 대학원에서는 뚜렷한 학문적 업적이 없는 이상 박사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관행이 존재해 박사학위를 따지 못했다.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소수였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한양대 경제학과 전임강사가 됐다. 그 이후 연세대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엔 박사 학위 없이 교수가 된 교수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제(舊制) 박사’ 제도가 있었지만, 윤 명예교수는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윤 명예교수는 학계에서 큰 업적을 쌓아 이름을 알렸던 학자다. 연세대 상경대학 학장과 한국통계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학술 발전에 현저한 공이 있는 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자격을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경제통계분야의 개척자 역할을 담당해왔는데, 소득과 부의 분배 불평등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1999년에 3.1문화상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자유주의 경제의 기본 취지와 원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학문에 있어서도 ‘원칙’을 중시했던 셈이다.

제자들에게도 ‘원리원칙’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대학가엔 학점을 후하게 부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의 수업은 달랐던 것으로 졸업생들은 회고했다. 결석이 많은 학생들은 예외없이 낙제점인 F학점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방법을 활용해, 결국 윤 대통령이 원칙주의자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고도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한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버지 또한 원칙을 중요시하는 분이었다. 대학 다닐 때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술 먹고 밤늦게 돌아다니다 혼도 많이 났다”고 전했다. 이어 “공부도 안 하고 친구들과 맨날 밤늦게 다니니 고무호스를 접어서 실로 묶어 놓으셨더라. 맞고 나니 술이 다 깼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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