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지역 ‘제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윤희일 기자 2023. 8. 1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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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경운동연합 ‘제비·귀제비 모니터링’ 결과
도시 외곽 저층 아파트 등 처마처럼 생긴 공간 골라
인근 농경지·하천에서 진흙 등 자재 구해 둥지 지어
“최근 개체수 급감…서식지에 보호 대책 마련해야”
대전 중구 서남부터미널 건물 구석에 둥지를 틀고 지내는 제비 가족. 제비집 아래에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받침대가 설치돼 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제비들에게 있어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도시화’는 거대한 ‘재난’이다. 그 수가 크게 줄기는 했지만, 강남(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등) 갔던 제비는 봄마다 한국을 찾아온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번식하는 습성이 있는 제비는 도시지역을 보금자리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은데, 도시로 오는 순간 무수한 난관에 부닥친다. 도시를 찾아온 제비가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처마가 있는 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제비는 보통 전통가옥의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데, 도시지역의 주택이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면서 둥지를 틀 곳을 찾기가 어렵다.

또 하나의 재난은 어쩌다 둥지를 지을 곳을 구해도 ‘건축자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비는 논 등 농경지의 진흙을 갖다가 둥지를 만드는데 대전과 같은 대도시에는 농경지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요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건축자재 가격이 급등해 어렵다고 하는데, 제비들은 아예 건축자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지역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제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살아갈까.

14일 대전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실시한 ‘대전지역 제비·귀제비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도시지역 제비의 일부는 운 좋게 도시 외곽의 처마가 있는 가옥을 찾아 둥지를 틀지만, 상당수는 역시 도시 외곽에 있는 저층형 아파트·상가·학교 등의 처마처럼 생긴 공간을 골라 둥지를 트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아파트와 빌딩이 많은 도심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제비와 귀제비는 비슷하게 생겼는데, 제비는 보통 처마 아래에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귀제비는 입구를 좁게 만든다.

입구가 좁은 귀제비 둥지. 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도시 외곽인 대덕구 장동의 여러 민가에서는 10개의 제비 둥지가 확인됐다. 이 중 제비가 실제로 사는 제비 둥지는 3개였다. 또 서구 기성동 일대의 민가에서는 5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3개)의 둥지가, 유성구 금탄동 일원의 민가에서는 9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5개)의 둥지가 각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도심지역인 동구 대동에서도 13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7개)의 둥지가 확인됐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대동의 경우 처마가 있는 구형 가옥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는 아파트·학교·상가·터미널 등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 외곽인 대덕구 장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19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5개), 같은 구 신대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10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9개)의 귀제비 둥지가 각각 발견됐다. 유성구 자운동의 아파트에서는 무려 47개의 귀제비 둥지(실제 귀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18개)가 확인됐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이들 아파트는 도심 외곽에 있는 저층의 구형 아파트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면서 “베란다와 베란다 연결 부위 아래에 처마 비슷한 공간이 있는데 그런 곳에 둥지를 튼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밖에 대덕구의 한 초등학교 건물에서 4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2개), 대덕구 신탄진시장의 상가건물 등에서 40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18개), 동구 가양시장의 상가건물 등에서 3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2개), 중구의 서남부터미널 건물에서 14개(제비가 살고 있는 둥지는 4개)의 둥지가 각각 발견됐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초등학교 건물이나 전통시장 상가 건물, 터미널 건물의 처마 비슷한 공간에서 둥지를 튼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도심 외곽에는 일부 농경지가 있고, 하천·습지 등이 있어서 제비나 귀제비가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진흙 등 자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실시한 모니터링에서는 대전지역에 모두 174개의 제비와 귀제비 둥지가 확인됐다. 하지만, 이 중 98개는 빈 둥지였고, 76개 둥지에서만 제비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제비가 서식하지 않는 둥지는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보통 한 쌍이 둥지를 만든 뒤 4~5마리의 새끼를 키우는 것을 고려하면 대전지역에서 서식하는 제비의 수는 380여 마리에서 45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제비는 과거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조류였지만, 주택구조의 변화로 처마가 사라져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이 줄고, 살충제 등 농약의 사용으로 곤충 등 먹이가 줄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제비 서식 실태를 조사한 뒤 서식지로 확인된 지역에 대해서는 지자체 등과 함께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제비가 둥지 아래로 배설하면서 사람들이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발생하자 대전 서남부터미널 등에 있는 제비 둥지 아래에 배설물 받침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앞으로 제비 서식 둥지가 있는 주택·아파트·상가 등에 배설물 받침대를 확대 보급하기로 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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