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야생화 천국 초카이산, 수줍은 듯 얼굴 감추다

조경훈 2023. 8. 1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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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카이산 우중 산행] 호코다테산장~초카이 호수 원점회귀 5.5km 산행
여름 초카이산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200여 종이 넘는 야생화가 초카이산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높이 2,236m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한여름에도 군데군데 녹지 않은 만년설이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초카이산鳥海山(2,236m)은 일본 중북부지역 서해안, 야마가타현과 아키타현 경계에 솟아 있다. 일본의 국립공원 바로 아래 단계인 국정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도호쿠 지방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초카이산은 야마가타현과 아키타현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산악신앙이 발달했던 야마가타 지역 사람들은 초카이산을 신으로 숭배했다. 매년 초카이산을 찾아 풍년과 행운을 빌었고, 봄철 눈이 녹은 초카이산의 사면을 보고 파종할 시기를 점쳤다고도 한다. 초카이산은 후지산과 닮은 외관 때문에 데와후지出羽富士라는 별명도 있다. 데와는 야마가타의 옛 지명이다.

초카이산은 라멘처럼 진하고 다양한 개성을 지녔다. 바다와 정상의 거리가 15km에 불과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고, 계절마다 특색 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초카이산에 서식하는 야생화는 200여 종으로, 여름 초카이산은 야생화의 천국으로 변신한다. 백록담을 닮은 초카이호수와 여름에도 눈을 간직한 U자형 계곡 센자다니 등 지형적으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비가 만든 등산로 폭포를 따라 올랐다. 경사진 곳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보이는 건 새하얀 구름… '곰탕 산행'

이른 새벽, 초카이산은 구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바닷가 쪽은 아직 비가 오지 않았지만, 구름 속 초카이산은 분명 비가 쏟아지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영역이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비행기 타고 외국까지 온 마당에 오를 수 있는 데까지는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과 간식, 도시락을 배낭에 집어넣고 초카이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이 완전히 곰탕이네!"

버스는 일행들을 싣고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호코다테산장(1,150m)에 내려놓았다. 오르는 중간부터 창밖이 하얘진다 싶더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박 같은 빗방울이 재킷 위로 우두두둑 떨어졌다. 일본 전문 여행사 브라이트스푼을 통해 초카이산 산행에 함께한 일행들은 비를 피해 산장 처마 아래로 몸을 숨겼다. 젖은 옷을 털어내는데, 오늘의 산행을 이끌어줄 가이드 모리씨와 사토씨가 나타났다. 그들은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등산 일정을 설명했다.

"날씨만 따라준다면 호코다테산장에서 출발해 초카이호수를 지나 신산新山(2,236m) 정상까지 갔다가 원점회귀할 거예요. 오늘 초카이산은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으니, 중간에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자, 모두 방수 옷 챙겨오셨죠? 잠시 후 출발할게요!"

우리는 방수 옷으로 완전무장했다. 고어텍스 재킷, 판초우의, 방수 스커트 등 종류도 다양했다. 옷을 입은 사람들은 곧장 등산로로 향했다. 맹렬하게 내리는 빗방울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돌풍도 몰아쳤다. '과연 오늘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사진처럼 야생화가 잔뜩 핀 초카이산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제공 야마가타현&유자마치관광협회

등산로 초입은 계단과 수로가 반반 섞인 아스팔트길. 얼마 지나지 않아 흙길로 바뀌었는데, 근처엔 나무의자가 놓인 호코다테 전망대가 있었다. 날이 좋았다면 나소협곡 위로 실타래처럼 흘러내리는 시라이이토폭포가 보였겠지만, 지금은 새하얀 구름과 저 멀리서부터 온 폭포소리뿐이었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대부분의 등산로는 커다란 돌들로 평평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샛길이 없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간혹 마주치는 흙길은 흙탕물 천지였다. 아무리 단단히 무장했어도 신발이 온통 젖을 것 같았다. 우리는 물에 잠기지 않은 돌을 골라가며 조심히 움직였다.

천천히 고도를 높일수록, 일행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구름은 서서히 두꺼워졌다. 총 27명 일행의 중간쯤에 있던 나는 선두와의 거리가 20m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선두의 뒷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초카이산과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앞서가던 이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고는 안쪽 주머니에 고이 보관했던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퍼붓는 비를 맞는 와중에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휴대폰 액정 속에는 보랏빛 제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휴대폰의 주인은 식물 마니아인 김미희씨였다. 나는 빗소리에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니,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도 사진을 찍으시다니! 꽃을 정말 사랑하시나 봐요."

"저는 초카이산에 야생화를 보러 왔어요. 운이 좋으면 정상으로 가면서 원추리, 마가목, 엉겅퀴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식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방수바지를 입어도, 스패츠를 착용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모두 신발이 젖고 말았다.

산죽 군락 너머로 들리는 폭포소리

비는 그칠 줄도 모르고 기세를 높여갔다. 완만했던 등산로는 돌연 가파르게 변했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흘러내린 빗물이 등산로를 폭포로 만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브라이트스푼 김용균 대표는 입을 벌리고 등산로 폭포를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도 아마 나와 같이 '이 길이 맞나?'라고 했을 것이다.

등산로 옆으로 군데군데 조그만 건폭들이 있었다. 걷는 데는 문제가 없겠거니 했는데, 물살은 생각보다 강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밀리지 않기 위해 힘을 줘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빤쓰까지 다 젖겠구마이~!"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일동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머리털이 삐쭉 설 정도의 긴장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잠시 후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가팔랐던 협곡은 어느덧 부드러운 능선으로 변해 있었다. 산죽들은 완만한 능선을 여백 없이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앞으로는 농구코트만 한 넓이의 눈밭도 보였다. 초카이산에는 7월의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녹지 않은 만년설을 보고 놀란 내게 가이드 사토씨가 다가와 몇 가지 설명을 해줬다.

초카이산에는 7월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한여름 산행에도 아이젠을 챙겨야 한다.

"초카이산은 상상 이상으로 눈이 많이 내려요. 한겨울에는 눈이 50m 넘게 쌓이죠. 겨울철 등산은 거의 불가능하고, 5~6월에도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많아 산행이 쉽지 않아요. 만약 오늘 센자다니千蛇谷雪까지 간다면 계곡 위로 쌓인 만년설을 걸을 수 있을 거예요"

김용균 대표가 덧붙였다.

"초카이산의 눈은 야마가타현의 보물이기도 해요. 겨우내 쌓인 눈이 바닷가로 흘러내리면서 땅을 비옥하게 하죠. 덕분에 초카이산 아래 쇼나이 평야에선 품질 좋기로 유명한 쓰야히메つや姫라는 품종의 쌀을 재배합니다."

그의 말이 끝날 때쯤 선두에 선 일행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휴식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들 앞에는 종아리 높이까지 불어난 개울물이 있었다. 비, 폭포 그리고 개울까지. 초카이산은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했다.

"어어, 넘어진다! 퍼억."

앞쪽에서 누군가 넘어졌다. 모리씨였다. 그는 선두에서 개울을 건너다 물살을 이기지 못했다.

"다이죠부~ 다이죠부."

모리씨는 괜찮다고 했다.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주변의 바위를 옮겨 디딜 만한 곳을 만들어줬다. 덕분에 나머지 일행들은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개울을 건넜다.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돌풍이 우리를 강타했다. 작달비는 무하마드 알리의 잽처럼 온몸을 난타했다. 어퍼컷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휘청였다. 바람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이 있었다. 개울이다. 건넌 지 5분도 되지 않은 개울은 아까보다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깊은 곳은 무릎 위까지 잠겼다.

'하산이냐, 강행이냐' 선택이 필요했다. 가이드들은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결국 우리는 안전을 위해 하산하기로 했다. 초카이호수를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계획했던 거리의 3분의 1도 가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쉽게도 정상에 가진 못했지만, 일행들 모두

하산하는 길은 속전속결이었다. 단체사진을 찍은 걸 제외하고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걸었다. '정상에 가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호코다테산장에 도착한 이들의 얼굴에는 아쉬움보단 즐거움이 더 많아 보였다. 나는 몇몇 일행들에게 오늘 산행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용인에서 온 김용훈씨는 "오늘 본 풍경 또한 초카이산의 선물"이라며 "다음에 오면 초카이산은 분명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의 말에 공감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산의 행복은 정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산장에서 나와 구름에 갇힌 초카이산을 올려다봤다. 초카이산이 내게 거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다음에 또 와줘. 그때는 오늘 보지 못한 멋진 풍경 꼭 보여 줄게. 야쿠소쿠스루요約束するよ!"

내가 들은 건 환청이었을까? 아마 폭포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뭐든 상관없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으니까. 우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비 때문에 사인과 도장은 생략하기로 했다!

예정 코스

호코다테산장(1,160m) - 초카이호수 - 몬쥬다케 - 시치고산 & 신산(2,236m, 정상) - 오모니이미신사 - 센쟈다니 - 호코다테산장 (원점회귀, 총거리 14.5km, 9시간 소요)

다른 코스

야시마구치 등산로 입구 - 시치고산 - 초카이호수 - 호코다테산장 (종주코스, 총거리 12km, 9시간 소요)

이외에도 후쿠라구치의 오다이라산장이나 남쪽의 다키노코야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는 코스가 있다. 두 코스 모두 정상까지는 편도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왼쪽부터 사토, 모리씨.

Mini Interview

초카이산 산악 가이드 모리 야스아키, 사토 마사토시씨.

Q. 지역 주민에게 초카이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리 야스아키

신과 같은 존재예요. 초카이산의 물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하고, 땅을 비옥하게 하죠. 우리는 초카이산에게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매년 초카이산에 가서 그해의 풍년과 행복을 기도하죠. 정상 아래에는 초카이산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도 있어요.

Q. 초카이산 등산은 어떤 시기가 가장 좋은가요?

사토 마사토시

7월 말에서 8월 초를 추천해요. 초카이산의 야생화가 만개하는 시기거든요. 장마가 끝나서 맑은 날도 많아요. 단풍이 절정인 10월도 좋습니다. 다만, 가을철은 기온이 낮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요.

겨울엔 눈이 많이 쌓여 일반적인 산행은 불가능해요. 4월 하순이면 백컨트리를 즐기러 오는 마니아들도 꽤 많습니다.

Q. 초카이산 등산 시 주의할 점이 있나요?

모리 야스아키

안전이 제일 중요해요. 초카이산은 이렇다 할 위험구간이 많지 않지만, 날씨에 따라 산행가능 여부가 달라져요. 맑은 날이어도 바람이 세서 하산하는 경우도 허다하죠. 일본산은 한국처럼 공식적인 입산금지가 없어요. 안전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입니다.

조경훈 기자의 우중산행 복장

초카이산 우중산행을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수 아이템으로 무장했다. 가방은 레인 커버로 덮었고, 스패츠도 착용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면할 수 없었다. 모자, 상의, 하의 모두 몽벨mont-bell. 신발은 캠프라인.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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