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표 장르물 '아씨 두리안', 미쳐도 곱게 미친 문제작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조선 주말드라마 <아씨 두리안>의 장르는 '임성한'이다. 이미 전작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은 남녀상열지사를 보여주는 드라마로 시작해 시즌3에 이르면 임성한식 오컬트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씨 두리안>은 아예 처음부터 오컬트, 타임워프, 로맨스 등 모든 요소들이 뒤섞인 장르다.
물론 이걸 하이브리드 장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묘하게 다르다. 장르물의 조합은 어떤 논리적인 가상의 체계 위에 존재한다. 하지만 임성한식 하이브리드는 임성한의 기괴한 상상력과 혼을 빼는 필력 위에 펼쳐진다. 특히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시작은 의외로 조용하고 평범한 드라마지만 전개될수록 전혀 본 적 없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아씨 두리안>은 극 초반 사실 임성한의 한계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아씨 두리안>은 전생과 현생이라는 두 세계를 보여주는데, 이 세계를 너무 안일하게 이어붙인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아씨 두리안>은 조선시대 시어머니 두리안(박주미)과 며느리 김소저(이다연)가 현재의 시간으로 타임워프하면서 이뤄진다. 두 사람은 조선시대의 인연이었던 사람들을 현실 세계의 공간에서 다시 만난다. 두리안과 김소저는 타임워프지만 현실의 다른 인물들은 전생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일반적인 드라마의 흐름이라면 조선시대 부분은 짧게 인서트로 치고 현재를 중심으로 끌고나갈 것이다. 하지만 임성한 작가는 전생의 두리안(박주미)과 머슴 돌쇠(김민준)의 인연을 굉장히 애틋하고 디테일하게 살려나간다. 드라마의 중심은 현재인데, 정작 중요한 서사는 과거에 있는 전개였다. 현실 속 세계는 갑자기 두리안의 며느리 소저가 영화배우가 되고 가정부가 '신내림' 받은 영매처럼 변하는 황당한 코미디 전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전략은 두리안과 돌쇠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 기류를 살리는 데 성공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코미디처럼 어수선한 전개에서 두리안과 돌쇠, 현실의 두리안과 돌쇠의 후생인 단치감의 로맨스의 애틋함이 더욱 도드라진 것이다.
그래, 이렇게 주인공의 과거와 현실을 잇는 로맨스 구도는 성공했다. 허나 임성한은 어느 순간 이 로맨스를 버리고 다른 로맨스에 몰두한다. 과거 두리안의 시어머니이자 현실에서는 단씨 집안 재벌가 총수인 백도이(최명길)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회사 직원들과 클럽에 간 1954년생 백도이 회장. 그런데 가발을 쓴 백도이를 보고 서른 살 연하의 드라마 PD 주남(곽민호)이 반해버린 것이다.
이후 <아씨 두리안>은 두리안과 소저보다 백도이와 주남의 로맨스에 포커를 맞춰 움직였다. 그리고 임성한은 뚝심 있게 백도이와 주남의 비밀결혼과 허니문까지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게다가 관록 있는 배우 최명길의 호연과 은근히 로맨스를 잘 쓰는 임성한 작가의 필력 때문인지 백도이와 주남의 관계는 호기심은 물론 백도이의 입장에서 공감대까지 이끌어내며 시청자를 잡아끄는 데 성공한다.
솔직히 임성한의 <아씨 두리안>은 시시하고 빤한 설정으로 결국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교훈이나 설파하는 주말극이나 일일극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괴한 분위기가 있는데 보다보면 어느새 적응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동남아에는 냄새에 헉, 하다가 맛에 중독되는 과일 두리안이 있다면, 한국에는 처음에는 괴상해서 미간을 찌푸리며 어이없어 하다 결국에는 중독되는 <아씨 두리안>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가끔 황당하긴 해도 의미 없이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르물보다 생각 없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미쳐도 곱게 미친 드라마랄까?
그런데 임성한 작가는 이제 2회 차가 남은 <아씨 두리안>이 어떻게 이야기를 끝낼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솔직히 임성한 작가는 흥미로운 인물들의 밀당으로 이야기를 늘리는 데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이야기의 마무리에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어찌 아는가, 이야기가 좀 시시해진다 싶으면 <아씨 두리안>의 중심인물이 두리안, 백도이에서 다음에는 오이지로 넘어갈지.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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