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쓰는 방탄복, 성능 미달 헬멧…“장병 안전은 어쩌나” [박수찬의 軍]
적군의 총탄이나 포탄 파편으로부터 군인을 보호하는 방탄장비는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다.
21세기 이후에는 시가전과 대테러전, 국지전 등이 증가하고 총기를 사용한 중범죄도 늘어나면서 방탄헬멧과 방탄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군도 다양한 종류의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사용해왔다. 장병 안전과 직결된 군수품이라는 점에서 요구성능(ROC)에 맞는 장비를 도입,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8일 공개된 감사원의 방탄물자 획득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근 5년간 2708억원을 투입해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들여왔다.
일반 장병은 방탄복 Ⅰ형과 방탄헬멧, 특수전부대는 방탄복 Ⅲ형과 경량방탄헬멧, 함정근무 장병은 부력방탄복을 쓴다.
대테러부대나 특전사 등에서 쓰는 경량방탄헬멧은 방위사업청이 2021년 11월 A사와 43억원 규모의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납기는 같은해 12월 28일로서 사업 관리와 품질검사 등은 육군이 맡았다.
육군은 사업 추진과정에서 절차에 따라 품질검사를 하면 A사가 납기 내 납품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육군에서는 연내 사업 완료를 위해 선납후검을 추진했다. 선납후검은 계약 체결 이후 군에서 긴급소요가 발생하면 납품을 먼저 받고 품질검사를 나중에 수행하는 제도다.
납기를 지키지 못해 업체에 부과되는 지체상금 회피 수단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방위사업청은 실제 적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선납후검이 승인된 것은 2015년 북한 핵실험 등 4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육군 측은 노후 헬멧의 시급한 교체, 해외파병부대 조달, 예산 불용 방지 등을 이유로 방위사업청에 선납후검을 요청, 승인을 얻었다.
육군 군수사령부의 납품 후 품질검사도 문제가 있었다. 제작사는 방탄성능시험을 위해 헬멧에 부착된 밸크로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지만, 군수사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충격흡수력 중 함몰깊이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머리에 손상을 입은 미군 병사들은 총격보다는 폭탄이 터질 때 장갑차 안에 있다가 내부 구조물에 부딪히거나 폭발력에 떠밀려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군도 장갑차나 전술차량을 많이 활용하므로 유사시 미군과 유사한 사고를 겪을 수 있다. 이에 따라 2020년 육군도 충격흡수력을 요구성능에 포함했다.
따라서 헬멧의 충격흡수력과 함몰깊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군수사 측은 재측정 등을 하는 대신 시제품 측정값을 양산품의 측정값인 것처럼 완제품 품질검사 결과를 허위로 작성했다.
해군과 해병대는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따라서 방탄복도 바닷물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작되어야 한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이 방탄성능을 저하하기 때문이다.
영국 경찰 등의 연구에 따르면, 염화나트륨이 있는 해수에 방탄복을 3시간 노출한 뒤 방탄성능을 시험한 결과 방탄복이 뚫릴 확률이 70%까지 증가했다.
미군도 육군 해병대에 보급할 방탄복 구매요구서에 방탄복을 해수에 24시간 동안 완전히 노출한 후 방탄성능을 시험한다.
한국군은 어떨까. 해군과 해병대는 방탄복 Ⅰ형 수만벌을 구매해 보급했다. 방탄복 Ⅰ형은 육군에서 연구개발을 주관한 장비다. 해상작전환경이 고려되지 않은 채 국방규격이 정해졌다.
감사원이 해군과 해병대에 보급된 방탄복을 미군 방식에 따라 시험한 결과 바닷물에 의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 및 해병대 장병의 안전에 위협받을 우려가 제기된다.
해군이 1999년 제1연평해전의 교훈을 반영해 2001년 함정 근무 장병 생존성 강화 차원에서 만든 부력방탄복의 문제도 나왔다.
구명조끼 모양의 부력방탄복을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해군은 파편 방호기준을 1998년 제정된 육군 방탄복 규격에 맞춰서 적용했다.
국방부는 2011년 방탄복 Ⅰ형의 파편 방호기준을 높였지만, 해군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변경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부력방탄복의 파편 방호성능은 방탄복 Ⅰ형보다 약 30%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의 방탄복은 고밀도 폴리에틸렌, 방탄헬멧은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과 케블러, 방탄판은 세라믹과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쓴다. 한국은 여름철에 온도와 습도가 높으므로, 방탄장비의 소재인 폴리에틸렌 특성을 감안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군은 방탄장비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국방부는 2020년 6월 조달청 고시 등을 근거로 방탄복과 헬멧, 방탄판 내용연수를 9~15년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조달청 고시는 군을 제외한 경찰 등의 중앙부서에서 쓰는 방탄복 사용기간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사용환경과 요구성능에서 군과 큰 차이가 있으므로 조달청 고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국방부는 방탄재의 특성 등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하지 않고 조달청 고시와 자체적인 판단을 근거로 내용연수를 설정했다.
방탄물자를 구입한 이후에도 제 성능을 유지하는지를 살피는 절차도 부실했다. 탄약은 국방기술품질원 등에서 신뢰성평가를 실시해 성능을 유지한다.
반면 방탄물자는 육안검사에 의존했다. 그 결과 2002~2003년 납품되어 방탄성능이 의심스러운 부력방탄복이 일선부대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
내피에 구멍이 뚫려 방수기능이 훼손된 방탄복이 해병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15년 납품된 부력방탄복에 구형 방탄판이 있는 사례도 나왔다. 이들 방탄물자는 방호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
◆장병 안전이 최우선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한국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외형상 한국군은 첨단 장비를 갖춘 군대다. 스텔스 전투기와 탄도미사일, 이지스구축함과 잠수함 등을 보유했다. 전문적 성격을 지닌 조직도 계속 늘어난다. 성과가 외부에 드러나고, 군의 규모를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나폴레옹이 장병들에게 좋은 군복을 입히고 보급품에도 신경을 쓴 것처럼, 장병들이 늘 착용하는 방탄장비 등은 최고의 성능을 유지하도록 군 당국이 신경써야 사기와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다.
병사를 지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풍토도 확립해야 한다.
6·25 전쟁 당시에는 ‘대량획득, 대량손실’ 형태였다. 전선에서 많은 병사들이 단기간 내 희생됐고, 병역자원이 많은 상황에서 청년들을 대거 징집해서 전선에 보내 결원을 보충하는 방식이었다. 병사가 도구처럼 쓰이는 비극의 시대였다.
지금은 다르다. 인구절벽으로 병역자원이 감소하면서 병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난제가 되어가고 있다. 기존 군 구조로는 병사를 100% 충원하기가 어려워서 육군 사단이 없어지는 등의 개편이 진행되는 실정이다.
병사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강력한 방탄장비를 지급해 병사들이 전투에서 생존할 확률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상자를 줄여야 군의 전투력도 유지될 수 있다. 장병들이 늘 착용하는 방탄물자 관리가 첨단무기 도입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다. 이를 해결해야 한국군은 진정한 강군이 될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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