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외국” 정부 유인책 안 먹히는 해외여행 쏠림… 돌아오는 유커는 위안

세종=전준범 기자 2023. 8.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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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하반기 내수 회복세 위해
내국인 국내여행 유도책 냈지만
수년 억눌린 해외여행 수요 폭발
중국인 복귀는 여행수지 긍정적

“리조트에서 만난 관광객 10명 중 9명은 한국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지난달 말 베트남 나트랑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학원 강사 유종원(38) 씨는 현지에서 가는 곳마다 한국인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뜨거운 해외여행 수요를 실감했다. 나트랑뿐만이 아니다. 최근 베트남 다낭·하노이를 비롯해 일본 오사카·후쿠오카, 태국 방콕·치앙마이 등 외국의 인기 여행지마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해외여행 수요 폭발은 내국인의 해외관광 수요를 국내로 돌려 하반기에도 내수 회복세를 이어가려던 정부 계획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의 외국 사랑은 9월 추석 명절 기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 쏠림은 여행수지를 악화해 경상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다만 중국 정부가 중국인의 한국행 단체여행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여행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올해 들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여권 발급 건수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8월 6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이 출국하려는 이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 전국 지자체서 여권 발급 급증

11일 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급된 여권 수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충청남도의 상반기 여권 발급량은 11만1555건으로 2만3460건을 기록한 전년 동기 대비 4.8배 수준으로 증가했고, 강원도는 상반기 발급 건수(1만7298건)만으로 이미 작년 연간 건수인 1만4786건을 넘어섰다. 제주도에선 올해 들어 7월 16일까지 여권 4만137건이 발급됐다. 지난해 연간 발급 건수인 2만9333건을 한참 웃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자영업자 김준영(37) 씨는 “아내, 두 아이와 방콕 여행을 가기 위해 지난주에 여권을 갱신 발급했다”며 “예상 경비를 짜 제주도와 비교해 보니 오히려 방콕이 더 쌀 정도로 경쟁력이 있길래 기왕이면 해외로 나가자고 가족을 설득했다”고 했다.

여행 업계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3년 동안 억눌린 해외여행 욕구가 올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평균 항공 교통량은 1941대로, 지난해 연간 일평균 항공 교통량과 비교해 31.2% 늘었다. 일평균 항공 교통량은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증가해 올해 4월을 기점으로 2000대를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 국제선 교통량은 월평균 5.2%씩 증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평균 항공 교통량은 1941대로, 지난해 연간 일평균 항공 교통량과 비교해 31.2% 늘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주차장이 여행객 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 연합뉴스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지만, 다가오는 9월 추석 명절 연휴에도 내국인의 해외여행은 이어질 전망이다. 여가 플랫폼 야놀자가 7월 6일~8월 3일 자사 항공 발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탑승일이 9월에 속한 구매 고객 비중은 국제선이 17%로 국내선(8%)을 2배 이상 웃돌았다.

◇ 정부 내수 회복 전략에 방해

내국인의 해외여행 증가는 팬데믹 종식의 다른 말로 해석되기에 반갑다. 다만 하반기 내수 회복의 일환으로 내국인의 해외관광 수요를 국내로 돌리려던 정부 입장에서는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외국인 관광객 국내 유치와 내국인의 국내여행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 내수 회복 흐름에 속도를 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여행 유인책으로 정부는 부산·인천·대전·전주·강릉·통영·진주 등 7개 도시를 ‘야간 관광 특화 도시’로 명명하고,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을 방문하면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디지털 관광 주민증’의 대상 지역을 넓히겠다고 했다. 서울·부산 등지에서 한국 사람의 공유 숙박도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는 농어촌 또는 한옥이 아닌 도심에서 내국인이 공유 숙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내국인의 국내여행 확대를 추진해 내수 회복 흐름에 속도를 더하겠다고 밝혔다. 8월 3일 강원 철원군 김화읍 화강 쉬리공원에서 개막한 제17회 철원 화강 다슬기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패들보드를 타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직장인 임혜인(36) 씨는 “해외여행을 포기하게 할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고 했다. 임 씨는 “수년간 억눌린 외국행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주변에도 너무 많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아 비용적으로도 국내여행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가정주부 손지연(33) 씨는 “폭우·폭염·태풍 등 국내 날씨가 계속 나빠 올해 휴가는 해외로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해외여행객 증가는 경상수지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이달 8일 발표한 ‘2023년 6월 국제수지’에 따르면, 여행·운송·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의 거래를 포괄한 서비스수지는 26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한은은 해외여행 수요 회복으로 여행수지(-12억8000만달러) 적자 규모가 확대된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그간 금지했던 한국행 단체여행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연말로 갈수록 여행수지는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돈 씀씀이가 크기로 유명한 유커(중국인 단체여행객)가 한국 여행을 재개하면 국내 주요 관광지 매출이 늘고 내수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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