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아이들은 강하다" 조기퇴영 아쉬움 속 체험활동 나선 잼버리 대원들

용인=손대선 기자 2023. 8. 1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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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핀란드 청소년 400여명 용인농촌테마파크 등 찾아
각계 우려 속에도 밝은 표정 내보이며 "조기 퇴영 아쉽다" 한목소리
새만금 야영장 부적절 지적에 "네덜란드 국토 4분의1 해수면 아래"
9일 오후 네덜란드, 핀란드 스카우트 대원들이 용인시 처인구 용인농촌테마파크 진입로에 접어들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서울경제]

태풍 ‘카눈’ 탓에 등 떠밀리듯 새만금 야영장을 떠나야했지만 표정 만큼은 밝았다. 9일 오후 2시께 용인농촌테마파크에서 만난 스카우트 대원들 얼굴에는 10대 특유의 생동감이 넘쳤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국적의 대원 397명은 전날 오후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을 떠났다. 늦은 밤 용인 현대자동차 마북캠퍼스에 도착해 여독을 풀었다.

정부 요청에 따라 용인시가 급작스럽게 손님으로 받아들인 외국인 대원은 총 4907명. 이날 용인농촌테마파크를 찾은 네덜란드와 핀란드 대원들은 그 중 일부였다.

여드름이 한창인 얼굴이었지만 대부분 체격만큼은 어지간한 한국 성인 남성보다 컸다. 네덜란드 대원들은 오렌지색, 핀란드 대원들은 코발트색 상의를 입어 국적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일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네덜란드 대원들은 쉼 없이 장난을 치고 떠들었다. 핀란드 대원들은 상대적으로 과묵했다.

세계 부모들에게 근심거리를 안겨준, 벌레 물린 정강이는 찾기 보기 어려웠다.

용인시가 제공한 팥빙수 한 그릇으로 영상 30도 무더위를 달랜 대원들은 한국 고유의 농촌생활을 재현한 용인농촌테마파크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곤충체험관과 동물사육장이 가장 많이 붐볐다. 염소들이 깡충깡충 뛰며 반기면 도토리 가지를 철망 사이로 밀어 넣어 먹였다. 세 명의 네덜란드 대원들은 염소들에게 ‘메시’, ‘호날두’ 등 유명 축구스타의 이름을 붙여주며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었다.

이들은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며 “염소는 처음 본다. 좋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뙤약볕은 아랑곳 않고 맨 바닥에 드러누워 쪽잠을 청하는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 탈진한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또래 시선이 쏠리면 금방 웃음기가 도는 얼굴도 일어났다.

9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용인농촌테마파크 관람을 마친 네덜란드, 핀란드 스카우트 대원들이 또래 한국학생들과 마주치자 손바닥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용인농촌테마파크 직원들은 11만9358㎡(3만6000평)에 달하는 공간 곳곳에 배치돼 이국의 어린 손님들을 안내했다. 한 여성 직원은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이라는데 우리나라 농촌생활의 재미를 많이 알려주지 못해 아쉽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용인에서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용인농촌테마파크를 떠나다 좁은 인도에서 또래 한국 학생 10여명과 교차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다음 행선지 와우정사는 대형 황금 불두상(佛頭像)과 와불(臥佛·누워있는 불상)로 유명한 용인시의 대표 관광지중의 하나다. 사찰 특유의 경건함에 경도돼 합장을 연발하던 대원들은 자유시간을 허락 받자 경내 곳곳에 자리 잡은 3000여개 크고 작은 불상들의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기 바빴다. 이들은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실향민 출신 스님이 1970년대 창건한 이 절의 역사와 경색된 남북관계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와우정사 주지 해곡 스님은 멀리 새만금에서 용인까지 온 파란 눈의 중생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했다. 대웅보전 돌마루에 드러누워도 불호령을 내리지 않았다. 불전함을 낙서판으로 활용해도 행자스님들은 “이미 낙서판이었다”며 웃음만 지었다. 스님들의 묵인 하에 ‘CALL ME’라고 써 놓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당당하게 적어 놓은 대원도 있었다. 해곡 스님은 파손을 우려해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이 사찰의 명물 ‘통일의 종’ 타종까지 허락했다. 맑고 깊은 종소리에 이끌린 대원들이 줄 이으면서 예정에 없던 타종이 수십 번 거듭됐다. 불자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타종을 도와주던 행자스님에게 “주지 스님이 종 부서진다고 그만 하시라고 한다”고 귀띔하자 비로소 종소리가 잦아들었다.

9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와우정사 ‘통일의 종’ 타종을 허락 받은 네덜란드 스카우트 대원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오후 4시20분께 대원들은 식음료와 기념품을 파는 매장 앞에서 와우정사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휘하 대원들이 쭈쭈바를 물고 염주를 돌리는 것을 지켜보던 중년의 네덜란드 스카우트는 “더위만 빼놓고 다들 일정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만금 잼버리 조기 퇴영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간척지인 새만금에 대규모 야영장을 만든 것이 부적절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네덜란드 국토의 4분의 1이 간척지로 해수면 보다 낮다. 그곳에서 많은 야영을 해왔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와우정사 대웅보전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네덜란드, 핀란드 스카우트 대원들. 사진 = 손대선 기자

이날 오후 5시30분께 명지대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만난 중년의 독일 여성 스카우트는 음식과 숙소에 큰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휘하 대원들이 조기 퇴영에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의 앞뒤에서 식사하는 학생들을 가리키며 “나는 저 아이들 나이 때부터 잼버리에 참가해왔다”며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잼버리를 했지만 항상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카우트 정신’에 대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원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기자에게 “우리 아이들은 강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기 퇴영을 결정한 ‘organization(조직)’에 대한 불만도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 조직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용인=손대선 기자 sds11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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