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마다 다 곯았다” 폭염에 속타는 농심 [현장, 그곳&]
밭작물은 탄저·무름병 등 감염병 고통
道농기원 “폭염대처 상황실 등 운영중”
“불볕더위에 잎은 타버리고 열매는 다 곪아버렸네요…올 한 해 농사는 다 망쳤습니다.”
8일 안성시 공도읍의 한 포도농가. 36도의 푹푹 찌는 날씨에 밭으로 나가는 오선화씨(가명·54)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오씨의 요즘 일과는 곪아버린 포도알을 솎아내거나 타버린 잎사귀를 제거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약 1만㎡의 밭에 심어져 있는 포도나무들은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지만, 많은 비가 내린 후 폭염까지 이어지며 뿌리는 약해졌고 잎은 햇빛에 그을린 탓이다.
오씨는 “특히 올해는 비도 오랜 기간 내렸고, 폭염도 길다. 밤에도 30도를 웃돌다 보니 포도가 제대로 익지 못한 채 터지고 있다”며 “잎은 갈색으로 타고 줄기는 마르고, 열매는 곪고 있다”고 토로했다.
작열하는 태양에 속수무책인 건 과수뿐만이 아니다. 용인특례시 처인구에서 고추농장을 운영하는 이강수씨(71)는 공들여 키우는 고추에 최근 탄저병이 들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씨는 “비가 많이 와서 병충해가 유독 심한 것 같다. 노지에서 재배하다 보니 덥고 습한 날씨에 재배하는 고추의 3분의 1 가량이 탄저병에 걸린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4년 만에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로 상향되는 등 ‘불볕더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도내 농가들이 농작물이 햇볓에 타버리는 피해가 속출하며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경기도가 발표한 폭염 대처상황 보고(7월25일~8월7일)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안성 38.3℃ ▲평택 38.2℃ ▲용인 37.8도 등 하루 최고기온이 40℃에 육박하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과수 농가는 ‘일소 현상’(햇볕데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고추 등 밭작물 농가는 탄저병, 무름병 등 감염병이 퍼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장마 이후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폭염이 지속되며 병해충 발생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도는 농업기술원과 함께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을 운영해 농업 폭염대처 상황실을 21개소 운영 중이다. 아울러 기술지원, 영농작업장 예찰 활동을 전개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조치와 피해 발생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달 집중호우가 길게 이어진 탓에 일사량이 예년에 비해 적었다”며 “그러다 보니 농작물이 온전히 뿌리를 내리며 자라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폭염까지 지속되면서 햇볕데임과 탄저병에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진 기자 ej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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