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력 충분하다지만, 폭염·태풍이 설비 위협… 전력 피크에 긴장하는 정부

세종=전준범 기자 2023. 8.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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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7~8일 전력수요 최대 93GW”
공급 능력 충분하지만 사고 잇달아
노후 변압기 말썽…교체 속도 더뎌
태풍에 쓰러지는 송전선로도 골치
심해지는 재해 강도 “대응 철저히”

에너지 당국이 폭염 속 전력 수요 절정에 대비해 예비 전력을 확보하고도 긴장의 끈을 전혀 놓지 못하고 있다. 발전기와 송·변전 설비 등에서 예기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수 있는 탓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는 낡은 변압기가 갑자기 늘어난 전력 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해 정전을 일으키고 있다. 새 장비 교체 사업은 예산 한계로 속도가 더디다.

올여름을 비롯해 앞으로 폭염 강도가 점점 세질 것이란 전망은 에너지 당국의 긴장감을 더 키운다. ‘끓는 지구’가 전력 수요를 끌어올려 공급 시스템을 종종 무기력하게 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 불볕더위뿐 아니라 날로 거칠어지는 폭우·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외부로 노출된 전력 설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선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에너지 당국은 8월 7~8일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92.9GW 수준의 전력 수요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7월 3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직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8월 7~8일 전력 수요 최고조

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8월 둘째 주로, 전력 수요가 최대 92.9기가와트(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6월 내놓은 기존 전망과 유사한 수준이다. 산업부는 “태풍 ‘카눈’ 경로에 따른 날씨 변화 등을 고려할 때 8월 7~8일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92.9GW 수준의 전력 수요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했다.

다만 전력 공급 능력은 6월 예측치인 106.4GW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0.95GW 설비용량의 한빛 2호기가 지난달 24일 고장파급방지장치(SPS) 개량시험 도중 갑자기 가동을 멈췄다가 이달 4일 오후 11시 10분부터 가동을 재개했지만, 양산 열병합 발전소 상업운전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어서다.

이 여파로 예비력도 6월 예측치인 13.7GW에서 다소 감소할 전망이다. 에너지 당국은 공급 능력이 당초 예상보단 줄었지만, 7~8일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도달해도 전력 수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물론 위기 대응 태세는 갖춘다. 여름철 전력 최대 수요가 2020년 89.1GW, 2021년 91.1GW, 2022년 93.0GW 등으로 계속 증가 추세여서다. 최근 폭염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까지 발효됐다는 점에서 올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폭염 위기 경보 ‘심각’ 단계까지 발효될 정도로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자전거를 탄 시민이 에어컨 실외기들이 설치된 서울의 한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 뉴스1

만약 예비력이 10.7GW 안팎까지 떨어지면 정부는 미리 협의된 기업 등 전기 사용자에게 요청해 전력 수요를 줄인다. 예비력이 7.5GW로 내려가면 석탄 발전기 출력을 올려 공급을 늘리고, 5.5GW까지 낮아지면 전력 수급 경보 첫 단계인 ‘준비’를 발령하고 전압 하향 조정에 나선다. 이후 예비력 감소 상황에 따라 경보는 관심(예비력 3.5~4.5GW)→주의(2.5~3.5GW)→경계(1.5~2.5GW)→심각(1.5GW 미만) 등으로 바뀐다.

◇ 불볕더위에 노후 변압기發 정전 속출

문제는 한빛 2호기 가동 중단처럼 예기치 못한 고장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여름 전력 관련 사고는 이미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광주 남구 월산동의 한 아파트 2개동 312세대 전기 공급이 4시간가량 끊겼다. 같은 날 경기 용인시 풍덕천동의 770세대 아파트에서도 정전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 10개동 가운데 5개동은 밤새 복구가 안 돼 입주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들 정전 사고의 원인은 모두 변압기 문제로 알려졌다. 변압기 고장은 특히 20년 넘은 노후 아파트에서 자주 나타난다. 과거에는 아파트 가구당 전력 수요를 1~2킬로와트(kW) 정도로 계산해 변압기를 설치했다면, 지금은 가구당 5kW는 잡아야 할 만큼 전력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변압기가 낡거나 용량이 적다 보니 쉽게 과부하가 걸리고 이것이 정전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비 전력이 충분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전력설비 고장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사진은 2020년 8월 17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 14차 아파트 단지가 변압기와 전선 노후화로 정전돼 깜깜한 모습. / 뉴스1

한국전력이 15년 넘은 아파트 변압기 교체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예산 한계로 모든 신청 가구가 혜택을 누리진 못 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예산은 약 33억원이다. 전체 신청 아파트의 30% 정도만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다.

◇ 태풍 오면 송전망도 위험

폭염이 변압기에 위협을 가한다면, 폭염 뒤에 찾아올 태풍은 송전망 고장에 영향을 준다. 한전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 17개 시·도의 전선 지중화(地中化·전선을 땅에 묻는 것) 비율은 평균 21%에 불과하다. 나머지 79%는 전신주 등을 통해 외부로 노출돼 있다. 전국 곳곳에 꽂힌 전신주 숫자는 1012만기, 전선 길이는 총 7178만c-㎞(서킷킬로미터‧회선수×길이)에 달한다.

지중화가 이뤄지지 않은 송전망은 폭우·강풍·산불 등의 자연재해 리스크에 항상 노출돼 있다. 7월 7일 전북 정읍시 쌍암동 내장산 내장저수지 인근에 산사태가 발생해 도로 위로 토사가 흘러내리고 전신주가 쓰러져 있다. / 뉴스1

외부로 노출된 송전선로에는 폭우·강풍·산불 등의 자연재해 리스크가 뒤따른다. 올해 4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도 강풍에 부러진 소나무가 인근 전신주를 덮친 게 원인이었다. 이때 고압 전선이 끊어지면서 시작된 산불이 축구장 530개 규모의 면적을 태웠다. 전력시장감시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송전설비 연간 고장건수의 37%가 여름철(6~8월)에 집중된다. 가장 큰 고장 원인은 장마철 낙뢰 등 자연재해(31.1%)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당국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드는 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국지성 호우와 폭염, 태풍 등의 강도가 날로 세진다는 사실이다. 전력 공급을 둘러싼 돌발 변수가 상존하는 만큼 정부도 24시간 모니터링 체제에 착수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계속되는 열대야, 극심한 폭염, 태풍 등으로 불확실성이 크다”며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대비해 송·변전과 발전 설비를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고장 시 신속히 복구할 수 있도록 대응책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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