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지구”… 도래한 ‘열대화 시대’에 전세계 초비상 [이슈+]

조성민 2023. 8. 6. 1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지구 온난화 시대 끝나고 ‘열대화’ 시작”
“7월 지구촌 인구 81%가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경험”
불가마 된 세계…미·유럽·아시아 ‘사람 살려라’ 초비상
공중보건 위기…中·韓 등 아시아 폭염·폭우 ‘연쇄재난’
폭염에 美 경제 생산성 ‘뚝’…“기후변화 비용손실 최대”
기후변화에 폭염뿐 아니라 지구 곳곳 중태…학계 경악

올여름 지구가 펄펄 끓는 듯이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번 폭염이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지목된다는 점이 우려할만한 대목이다. 최근 유럽연합(EU) 기후변화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7월 들어 15일까지 온도가 1940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WMO)도 올해 7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며 현 상황을 평가했다. 이어 “현재 기후 변화 현상이 진행 중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피부가 화상 입을 정도의 폭염은 전 인류가 겪는 현상이 되고 있다. 1일 비영리 기후 변화 연구그룹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은 전 세계 인구 81%에 해당하는 65억명의 사람이 지난달 최소 하루는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을 경험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기후 변화가 전 세계의 일일 기온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나타낸 기후 변화 지수(CSI)를 개발해 전 세계 200개국, 4700개 도시의 지난달 1일부터 31일까지의 기온을 조사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의 영향은 지난달 10일 정점을 찍었는데, 이날에만 35억이 폭염을 겪었다. 연구진은 “인간이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계속 사용하는 한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현상은 더욱 빈번하고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섭씨 37도가 넘는 폭염이 덮친 가운데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FP연합뉴스
◆8월에도 기록적 폭염 이어질 듯

북반구를 달구고 있는 기록적인 폭염은 8월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7월에 이어 역대 최고 기온 기록 경신이 계속되며 더 더워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고 유럽에서도 무더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는 폭염과 폭우가 연달아 닥쳐 신음하는 가운데 지구촌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노동자들이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3개월째로 접어든 미국 남부 폭염이 8월 들어서도 계속되며 기존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보됐다고 보도했다. 8월 첫째 주엔 미국 중부와 남부의 평원지대와 미시시피강 하류, 멕시코만 연안 일대에 무더위가 닥칠 것으로 예보됐다. 6월부터 발달한 열돔(heat dome)에서 비롯된 미국의 이번 폭염은 앞으로 몇주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WP는 8월 중순까지 남부 대부분 지역에서 예년 기온을 크게 웃돌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와 텍사스주 일대 기온이 전보다 더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는 최고 기온이 화씨 115도(섭씨 46.1도)를 넘어갈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텍사스주 오스틴과 댈러스도 화씨 105도(섭씨 40.6도) 안팎까지 올라가 이번 주 미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에 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텍사스주 휴스턴과 샌안토니오 등도 이주 초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으며,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 등은 더위가 잠시 누그러졌다가 다시 기승을 부리겠다고 WP는 전했다.

아시아도 극한 기상에 신음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신장 등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40도를 훌쩍 넘는 살인적 무더위에 이어 제5호 태풍 ‘독수리’가 동부 지역을 따라 북상하며 물 폭탄을 쏟아부었다. 수도 베이징과 랴오닝성 북동부 등에서 4명이 숨지고 수십만명이 대피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제6호 태풍 카눈까지 접근해오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CNN은 집중호우에 이어진 폭염으로 사상자가 잇따르는 한국의 상황도 조명했다. 이 매체는 정부 발표를 인용해 2주 전 폭우와 산사태로 오송 지하차도 사망자를 포함해 최소 41명이 숨졌으며 올여름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최소 1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섭씨 33∼39도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지난 주말 열사병, 열실신, 열경련 등 온열질환자가 1000명 넘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2일(현지시간) 겨울 날씨가 한창이어야 할 남반구의 칠레 산티아고에서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한 스모그가 도시를 뒤덮고 있다. 산티아고=AFP연합뉴스
◆산업현장 곳곳 무더위에 신음

건설 현장이나 논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에어컨 등 냉방장치 없이 열기를 견뎌야 하는 상황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캔자스주 도지시티에 있는 육가공업체 내셔널비프의 도축장에서는 직원들이 무더위에 그야말로 익어가고 있다. 작업을 할 때는 무거운 보호복과 헬멧, 보안경을 써야 하고 장비 소독에는 화씨180도(섭씨 82도)가 넘는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데, 도축장 안에는 열기를 내뿜는 선풍기 외에는 제대로 된 냉방시설이 없다. 캔자스·미주리·오클라호마주의 육가공업계 노조 대표인 마틴 로사스는 도지시티의 내셔널비프 도축장에서 일하는 직원 2500명 중 거의 200명이 지난 5월 이후 일을 그만뒀으며 이러한 퇴사자 수는 예년 같은 기간보다 10% 많다고 전했다.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방에 에어컨이 설치돼있기는 하지만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는 열기가 이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이런 이유로 그만둔 직원이 적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맥도날드 지점에서 20년간 일했다는 리아 로드리게스는 “매장 모든 곳에 에어컨이 있지만 주방의 온도계는 여전히 화씨 100도(섭씨 37.8도)를 넘는다. 이전에도 여름엔 더웠지만 이렇게 기절할 정도로 덥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창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한 창고에서 지게차를 모는 세르시 코브는 숨 막히는 더위 때문에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곤 해 올여름 두 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농부들은 땡볕 아래 작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멀쩡히 자라던 농작물이 타죽는 상황도 맞이해야 한다.

NYT는 이처럼 기록적인 더위가 노동환경에 악영향을 미처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에서는 무더위에 따른 경제 손실이 2020년 100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2050년까지 연간 5000억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수은주가 화씨 90도(섭씨 32.2도)에 이르면 생산성이 25% 하락하고 100도(37.8도)를 넘으면 70%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펜실베이니아대의 환경·노동경제학자인 R.지성 박 교수는 NYT에 “인간이 온도에 민감하고 열에 노출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번 더위로 우리는 폭염이 예상보다 더 여러 방식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하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폭염으로 인한 만성적 신체 위험이 세계적으로 GDP(국내총생산)를 2100년까지 최대 17.6% 위축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 달 이상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7000만명이 ‘열 주의보’ 또는 ‘폭염 경보’ 영향권에 들어간 상태다.

사진=AP연합뉴스
◆북대서양 온도 치솟고 남극 빙하 감소

올여름 일부 기후 변화 현상들은 너무나 비정상적이어서 과학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미국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의 과학자 클라우디아 테발디는 WP에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고 오랫동안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는 특히 매우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고 이례적 현상의 규모가 놀랍다”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북대서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과 남극 대륙의 얼음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영국제도부터 뉴펀들랜드 해안까지 북대서양의 7월 해수면 온도는 지난달 평균보다 섭씨 10도나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름 형성 범위가 줄고 사하라 사막 분진의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나오지만 과학자들은 북대서양 온도가 갑자기 오른 원인을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산하 고다드 우주연구소 소장인 개빈슈미트는 “그것(북대서양 해수면 온도 상승)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매우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1일(현지시간) 해수면 상승으로 잠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베네치아=로이터연합뉴스
북대서양뿐 아니라 지구 전체의 해수면 온도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올해 6월과 7월 지구 해수면 평균 온도는 작년 여름보다 거의 섭씨 0.25도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 지구 해수면 온도가 탄소 배출, 온실효과 등으로 10년 동안 섭씨 0.15도 정도 올랐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다. 해양학자 그레고리 존슨은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 상승은 엘니뇨(적도 부근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오르는 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올해 남극 대륙의 해빙이 형성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사라질 시기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 나사 지구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2월 2일 남극 해빙의 범위는 179만㎢로, 1979년 위성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소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지난해 2월25일의 기존 최소치보다 13만㎢ 적은 수준이었다. 이후 남극 대륙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해빙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매우 작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CNN에 따르면 미국 국립설빙데이터센터(NSIDC)는 현재 남극의 겨울 해빙 규모가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소치보다 160만㎢ 정도 작은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 남부에서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산호초 보호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산하 국립 데이터 부표 센터(NDBC)는 지난 24일 오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남쪽으로 약 64㎞ 떨어진 매너티 베이의 수심 1.5m에 있는 한 부표에서 측정된 수온이 섭씨 38.4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수온의 급격한 상승은 병원균으로 인한 산호초 질병을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영리단체 산호복원재단은 최근 마이애미 남부 해상의 솜브레로 지역에서 산호초가 100% 폐사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1도 정도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WP는 이런 지구 온난화 추세가 계속된다면 결국 산호초 소멸과 빙하 감소에 따른 광범위한 해수면 상승, 아마존 열대우림 같은 중요한 생태계 소멸 등의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