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지켜온 장인정신의 힘, 샌들 하나로 10조원 바라보는 이유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8. 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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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7][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12] 콘래드 버켄스탁

흥행 돌풍의 중심에 선 영화 바비. 영화의 인기 덕에 관련업계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바비 인형을 생산하는 마텔사는 바비인형을 비롯한 관련 제품 판매 급증으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인형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 슬리퍼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영화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마고 로비가 신은 분홍색 샌들인데요. 무더위 속 판매량 급증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버켄스탁입니다.

콘래드 버켄스탁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여름에 신을만한 슬리퍼를 검색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신발인 버켄스탁. 특유의 코르크 재질의 밑창은 신다 보면 발 모양대로 시커멓게 때가 묻어 항상 고민을 안겨주는 샌들로 유명합니다. 특히 헐리우드 등 여러 셀럽들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아이템이기도 한 버켄스탁은 마고 로비보다 훨씬 전인 2000년대 초반 당시 톱배우 기네스 펠트로우가 착용한 것이 목격되며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버켄스탁을 신은 스티브 잡스(우측)
또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샌달로 이름값을 높이며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바 있는데요. 다름 아닌 애플 창업 초창기부터 잡스가 착용해온 낡은 버켄스탁 샌들이 지난해 21만9750달러, 한화 2억9000만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샌달은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설립해 활동하던 1970~1980년대 주로 신던 신발로 잡스의 부동산 관리인이 짐을 정리하다 발견해 경매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로 대표되는 그의 패션의 일부분이 바로 매일 고민 없이 발을 집어넣던 버켄스탁 샌들이었던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신던 버켄스탁
이처럼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버켄스탁은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달리 무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뼈대있는 샌들입니다. 1774년 구두 장인 요한 아담 버켄스탁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구두를 수선하고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화공으로 시작한 그의 삶은 독일의 오래된 기업이 그렇듯 아들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증손자이자 오늘의 주인공 ‘콘래드 버켄스탁’이 등장합니다.

4세대 경영자였던 콘래드는 1873년 6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북서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버켄스탁 가문은 지역에서 조그마한 제화점을 운영하며 근근이 가계를 꾸려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콘래드는 사업가이자 발명가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한껏 뽐내며 버켄스탁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반을 닦습니다. 특히 올해는 현재의 버켄스탁을 만든 콘래드의 탄생 150주기이기도 한데요. 버켄스탁은 그의 탄생 150주기를 따로 기념할 정도로 그가 버켄스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입니다.

처음 개발된 풋베드
콘래드에게 신발은 숙명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업으로 이어온 제화공으로서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죠. 그는 1896년 프랑크프루트에 2개의 신발가게를 열어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버켄스탁은 사람의 발모양을 따라 제작한 신발의 안창(인솔)을 만들기 시작했고 15년간의 연구끝에 이상적인 안창, ‘풋베드(Fussbett)’를 개발했습니다.

그가 발명하기 이전 신발의 바닥은 발의 구조와 무관한 평평한 단면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오래 신으면 아프고 불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의 해부학 교수 헤르만 폰 마이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의 구조와 형태에 맞는 신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론을 제공합니다.

버켄스탁 풋베드 구조
이러한 이론에 영감을 받은 콘래드는 해부학적 구조에 기반한 플라스틱 신발틀을 개발했고 한발 더 나아가 발바닥의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한 풋베드를 발명한 것입니다. 버켄스탁은 이러한 인체공학적 신발틀과 풋베드를 특허로 등록했고 더욱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풋베드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고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현재 버켄스탁을 대표하는 합성 코르크 풋베드입니다.

문제는 정작 신발 판매는 신경쓰지 않고 연구개발과 풋베드 개발에만 매진하다 보니 돈을 버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단 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콘래드는 이러한 버켄스탁만의 풋베드 제조 노하우와 기술 라이센스를 제화공들에게 되파는 사업을 펼쳐갔습니다. 그의 풋베드는 입소문을 타고 독일, 오스트리아 전역에서도 찾아올 정도였고 그는 이러한 풋베드 연구개발과 제작원리 등에 대한 전문적인 강의를 하며 근근히 버텨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콘래드는 자신의 사업을 ‘정형외과 및 패션 신발 제조’라고 명명하며 장인정신에 기반한 전문성 확보에 공을 더욱 들였습니다.

버켄스탁 풋베드 광고
때마침 호재가 터졌습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이 전쟁에 참전했던 수백만 명의 군인들은 당시 불편하고 딱딱했던 군화를 오래 착용하는 바람에 발 문제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덕분에 풋베드의 인기가 높아진 것입니다. 콘래드는 1925년 프리드버그에 공장을 증설하며 풋베드 생산을 대폭 늘리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연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수많은 군인들은 전쟁후 발 통증을 호소했고 버켄스탁의 신뢰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사업을 확장할 귀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의 아들 칼 버켄스탁입니다. 아버지가 발명가이자 발 장인에 가깝다면 아들 버켄스탁은 사업가적으로 빛이 났습니다. 칼 버켄스탁은 풋베드 판매 뿐 아니라 신발 판매원, 제화공, 정형외과 의사 등을 상대로 족학 트레이닝 코스를 개설하고 족학 전문서적을 출간해 공전의 히트를 달성하는 등 돈벌이에 재능을 보입니다.

버켄스탁에서 출간한 족학 책
칼 버켄스탁은 이러한 풋베드에 맞는 신발을 개발하는데 공을 들였고 결국 1963년 가벼우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건강하면서 편안한 샌들 버켄스탁 마드리드가 탄생합니다. 이는 버켄스탁의 첫 샌들 모델입니다. 이 샌들은 착용자가 신을 때 발끝에 꽉 힘을 줘야 하는 구조로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종아리 근육이 단련되다 보니 체조 등을 하는 운동선수에게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엔 평소 발에 통증이 있던 미국인 마곳 프레이저는 독일 방문 중 발을 다쳤다가 주변의 추천으로 마드리드 착용을 권유받았고 그 매력에 빠지며 미국으로 수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글로벌 브랜드 버켄스탁의 시발점입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버켄스탁이 추구하는 ‘자연으로 돌아가기’ 철학이 히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며 자유로움과 젊음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큰 인기를 모읍니다. 또한 1973년 출시한 버켄스탁 아리조나 모델은 현재까지도 버켄스탁을 대표하는 샌들로 불립니다.

버켄스탁 아리조나 모델
현재 버켄스탁은 전세계 5500명의 직원을 둔 6세대 가족 기업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라인란트팔츠 등 독일 16개 사업장에서 생산을 하고 있고 현재 1억2000만유로를 투자해 신규 공장을 건설중입니다. 버켄스탁은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장기 전략을 펼쳐가기 위해 지난 2021년 경영권을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 그룹의 사모펀드 ‘엘 카터튼’에게 넘겼습니다.

현재 생산관리만 6대손인 알렉스 버켄스탁과 크리스천 버켄스탁 형제가 하고 있습니다. 콘래드 버켄스탁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버켄스탁엔 또 새로운 뉴스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뉴욕증시에 상장한다는 뉴스입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엘 카터튼은 오는 9월께 버켄스탁을 상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평가받는 기업가치만 80억 유로, 한화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250년의 역사를 갖고, 향후 250년의 비전을 그리기 위한 버켄스탁의 큰 그림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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