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막아선 ‘비밀해변 캠핑’, 다음엔 기필코 [ESC]

한겨레 2023. 8.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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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캠핑의 정석]캠핑의 정석 충남 보령 고대도
지난달 21일 방문한 충남 고대도 ‘비밀의 해변’ 전경.

한 후배가 귀어(어촌에 정착하는 일)를 목표로 충남 보령의 고대도에 둥지를 틀었다며 수개월 전부터 러브콜을 보내왔다. 여름 휴가철 ‘물 반, 사람 반’ 걱정부터 앞선 내게 그런 고민은 일절 붙들어 매란다. 무엇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해변에서 노지 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곧장 시동을 걸었다.

여름철 이어지는 비 소식에 이번 캠핑이 가능할지 노심초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여행을 떠난 지난 7월20일 시작부터 장맛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하루 3회 운항한다는 뱃길이 비바람에 괜찮을까. 섬까지 어떻게든 간다고 해도 나올 때는 괜찮을까. 지난여름 제주도 캠핑의 악몽이 떠올랐다. 대형 크루즈 운항이라 웬만한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다기에 걱정 하나 없다가 폭우 난리 통에 결항하는 바람에 다음날 강연 일정이 몽땅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 탓에 이후부터는 그토록 좋아하는 섬 여행이라도 날씨가 불안정하면 걱정부터 앞섰다. 그저 앞뒤로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떠나는 게 최선일 뿐. 고대도 역시 섬인지라 일정 조율은 넉넉히 해 두었다. 다만, 입도 여부가 문제였다.

전화로 부르는 ‘수상택시’

걱정이 태산이던 나와는 달리 후배는 ‘수상택시’를 보내주겠다며 여유를 보였다. 대천항과 섬을 이어주는 작은 모터보트라고 했다. 동남아에서나 보았던 수상택시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니. 정기선보다 이용료는 비싸지만, 이동이 자유로워 아는 사람들은 자주 이용한다고 후배는 덤덤하게 소개했다. 보령 원산도 선촌항에서 고대도까지는 수상택시로 10분 거리라면서. 대천에서 원산도까지 해저터널을 타고 선촌항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수상택시는 콜택시처럼 전화로 부를 수 있었다. 마침 선촌항에 수상택시가 있어서 전화하고 바로 탈 수 있었다. 너댓명이 겨우 탈 수 있는 보트의 뱃머리에 ‘포세이돈’이란 이름이 선명히 쓰여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도 수상택시는 거침없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수상택시.

고대도에 도착하자 후배가 마중 나왔다. 항구 근처에 민박집을 잡아 두었다며 그간의 소식을 미주알고주알 전한다. 새까맣게 탄 피부에 이곳 사정에 훤한 후배는 그사이 현지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고대도는 충남 서해안에 있는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예로부터 집터가 많아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어 고대도라 불렸다. 인근에 있는 삽시도·장고도는 비교적 홍보가 잘 된 편이라 사람들이 곧잘 찾지만 그에 비해 고대도는 잘 알려지지 않아 그런지 한여름 성수기에도 조용했다. 여의도 면적 9분의 1 정도 크기의 작은 섬마을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는 곳. 100여 가구, 300여 주민이 살고 있다는 일부 통계와는 달리 실제로는 30여명만이 이 섬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300여명은 여러 이유로 이곳에 주소를 옮겨 놓은 외지인들, 주소를 옮겨가지 않은 섬사람들을 포함한 내부적 수치라며 후배가 귀띔했다.

어업이 주업인 고대도는 일찍부터 자가 발전소는 물론 자체 전화, 상수도 시설과 현대식 주택이 있었고 연안에서는 새우류, 전어, 멸치, 남방 붕장어, 바지락, 꽃게, 조개류 등이 많고 멸치와 액젓이 유명하다. 섬에는 그 흔한 펜션 하나 없다. 식당은 영업하지 않았다. 슈퍼도 마을 내 단 하나, 그나마 있는 민박 역시 2곳이 전부다. 이렇듯 낚시꾼들만 드나들던 조용한 섬이었던 고대도는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1832년 독일 출신의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가 영국 무역선 ‘로드 애머스트’를 타고 고대도 땅을 밟으며 조선에 입국한 흔적이 발견되면서다. 고대도는 개신교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은 곳으로 기록되며 기독교 순례지로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여행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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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해지면 반려견과 같이…

비가 억수같이 퍼부으면서 ‘해변에서의 낭만적인 한여름 밤 캠핑의 꿈’도 사그라들었다.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고 습하고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오후엔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 아침 산책을 하며 비밀의 해변으로 향했다. 언덕 오르는 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언덕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귀여운 해변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손톱 모양으로 아담하게 들어앉은 해변이 정말이지 아는 사람 아니면 찾아오기도 힘들 것 같다. 유료 캠핑장은 없지만 백패킹 캠핑은 가능해 보였다.바닷물에 잠시 다리를 적셨다. 해안 깊이가 얕아서 물놀이하기에도 그만이다. 반려견 겨울·바다와 함께 왔다면 좋았을 텐데. 얕은 바다에서 마음껏 달리며 물놀이를 즐겼으리. 선선해진 가을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후배가 바다에 던져 놓은 통발을 걷으러 갔다. 후배는 방파제 끝으로 내려가 밧줄을 당겨 통발을 끌어 올렸다. 미역줄기, 불가사리, 소라, 낙지, 작은 생선 등이 들어 있었다. 후배는 통발의 내용물을 모두 걷어내고 통발 안에 미끼로 쓸 작은 닭을 하나 넣어 다시 바다로 던져 넣었다. 중복이라 백숙에 소라죽을 준비한 후배의 정성에 감동했다. 고대도 제철나물부터 생선, 고둥, 소라, 낙지볶음까지 잘 차려진 한 상에 고대도 바다내음이 가득했다.

저녁에는 고대도 빨간 등대로 가는 바닷장어 낚시에 따라나섰다. 고대도에 남방 붕장어가 유명하다더니 한밤에 잡으러 나오면 꽤 실한 장어가 왕왕 잡힌다고 한다. 후배가 바쁘게 낚싯대를 매만지며 장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손맛이 기가 막힌다면서. 갯지렁이를 꽂아 낚싯대를 던지자 휘리리릭 낚싯줄이 한없이 풀려 앞바다 저 멀리 툭 하고 떨어졌다. 폭우가 몰아친 다음 날이어서였을까. 두어 시간 씨름을 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놀래미 같은 물고기들만 간간이 올라왔을 뿐. 후배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이 바다에선 욕심부리지 않고 딱 먹을 만큼만 거두어들이고 나머지는 되돌려 보낸다. 자족하는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어부의 꿈을 꾸는 후배는 아직은 배우는 중이라 수입이 많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안다. 그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 두면 좋아요

1. 고대도로 가는 배편은 대천항에서 하루 3회 출발하며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다. 대천항~삽시도~장고도~고대도 코스인데 마지막 3항차는 대천항~고대도~장고도~삽시도로 항로가 바뀐다. 고대도까지 1·2항차는 1시간30분, 3항차는 55분 걸린다.

2. 여객선 이용이 어려울 때 수상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원산도 선촌항에서 출발해 고대도까지 10분 정도 걸린다. 편도 요금이 2인 기준 5만원 정도로 여객선보다 비싸다.

글·사진 홍유진 여행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시크릿 후쿠오카>, <무작정 따라하기 오사카 교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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