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놓칠라"…'가상현실→2차전지→초전도체' 테마주 아수라장

양지윤 2023. 8. 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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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도, 사업 접점도 없는데 날뛰는 주가
만년 적자 기업이 영업이익 16% 종목 시총 앞지르기도
2차전지株로 영향력 증명한 동학개미 손실 만회도 '테마주'
테마주, 단기 과열 후 나락…"코스닥 '머니게임' 놀이터 우려"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초전도체가 상용화하면 2차전지는 다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국내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개발’ 논문이 공개된 뒤 온라인 주식정보 카페에는 초전도체 테마주로 갈아탈지 문의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2차전지 수급 쏠림 완화로 관련주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자 초조함을 느낀 동학 개미들이 ‘한탕’ 수익을 기대하며 새로운 테마주를 탐색하면서다.

가상현실 관련주부터 시작된 테마주 쏠림 현상이 2차전지, 초전도체로 이어지며 과열 양상이 심화하고 있어 증권가에서는 증시가 투기판으로 변질하는 것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체도, 사업 접점도 없는데 날뛰는 주가

3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초전도체 테마주로 분류되는 서남(294630)과 덕성(004830)은 3거래일 연속 상한가에 마감했다.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신성델타테크(065350)와 파워로직스(047310)는 이날 장중 18~20% 치솟았다가 종가는 전날과 큰 차이 없이 거래를 마쳤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남과 덕성, 신성델타테크 등의 평균 주식 거래량은 연초 대비 최소 20~60배 이상 뛰었고, 거래대금 역시 10배 이상 급증했다.

국내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개발’ 논문 공개 이후 실체에 대한 논란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가로 나타나는 대목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연일 치솟는 주가에 시가총액도 급격하게 불어났다. 연초 430억원대에 불과하던 서남은 2400억원대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 64억원에 24억원의 적자를 냈던 회사가 영업이익률 16%(매출액 891억원·영업이익 120억원)인 영풍정밀(036560) 시총(2385억원)을 추월한 셈이다. 덕성도 780억원대에서 1500억원대, 신성델타테크 역시 2700억원대에서 6900억원대로 시총이 불어났다.

증권가에서는 초전도체에 대한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전도체 기술과 사업 접점도 불분명한 기업의 주가가 날뛰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이날 국내 초전도체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영상과 논문을 검토한 결과, 상온 초전도체로 지목받고 있는 ‘LK-99’는 마이스너(자석에 반발하는 반자성 특성)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며 초전도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LK-99를 발표한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샘플을 제공하면 교차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당분간 진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남은 구리 전력선에 쓰이는 고온 초전도 선재와 이를 이용한 초전도 자석을 생산해 초전도체 관련주로 묶였고, 덕성은 초전도체 연구 이력이 있는 게 주가 상승의 재료가 됐다. 신성델타테크와 파워로직스는 초전도체 개발 논문을 발표한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지분을 보유한 엘앤에스벤쳐캐피탈에 투자한 점 때문에 테마주에 이름을 올렸다. 상온 초전도체 상용화 여부를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미래 실적 추정이 불가능한 기업에 ‘투자심리’만 쏠리는 실체 없는 투자이다 보니 향후 주가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영향력 커진 개미, 돌격…손실 만회도 ‘테마주’

2차전지에서 초전도체로 테마주 열풍이 옮겨붙은 이유 중 하나는 동학개미들이 국내 증시를 움직이는 주체로 다시 떠오르면서다. 개미들은 투자 열기로 에코프로 등 2차전지 기업의 주가를 단기간 끌어올렸지만, 주가 조정도 가팔랐다. 미래 신사업 가치에 대한 멀티플(수익성 대비 기업가치)이 과도하다는 인식이 확산한 탓이다.

2차전지주 쏠림이 완화하는 국면에 초전도체 관련주가 급부상한 것은 단기 급등한 종목의 물량을 뒤늦게 투자에 뛰어든 개미가 받아준 영향으로 풀이된다. 주가 움직임이 큰 테마주는 단기 손실을 만회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의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2차전지 업종에서 수급이 일부 이탈해 초전도체 테마 관련주로 이동하면서 관련 주식들의 주가 폭등세를 유발하고 있다”면서 “2차전지주 급등락의 피로감이 제2의 2차전지주, 차기 급등주를 찾고자 하는 욕구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인이 특정 테마주로 몰려든 현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메타버스 열풍에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가상현실(VR)·확장현실(XR)·대체불가토큰(NFT) 등 가상현실 관련 테마주에 질주했다. 그러나 현재 주가는 고점(2021년 11월) 대비 50~70% 급락했다. 향후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단기 급등했다가 성장성을 숫자로 입증하지 못해 추락한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테마주 투자자들에게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다’는 주식 격언이 거듭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2차전지와 초전도체 등 테마주로 엮인 기업 다수가 코스닥 시장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머니게임’에 빠져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시가 총액 상위 기업이면서 외국인 투자 비율이 30% 이상인 위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galile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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