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레기 투기에 시민의식 실종…을왕리해수욕장 몸살

송승윤 2023. 8. 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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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에 폭죽, 텐트까지"…피서철 쓰레기에 해수욕장 '신음'
해수욕장에 버려진 소주병 [촬영 송승윤]

(인천=연합뉴스) 송승윤 기자 =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네요"

2일 오전 6시 40분께 인천시 중구 을왕리 해수욕장.

해수욕장 청소 용역업체의 작업반장 이모(69)씨는 바쁘게 손을 놀리며 "더워지기 전에 빨리 청소를 끝내야 힘들 때 그나마 쉬어가면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오후부터 놀다간 피서객들이 빠지자 해수욕장 곳곳은 이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가득 찼다. 이씨 등 청소업체 직원 6명은 이곳 해수욕장에서 오전 내내 쓰레기와 전쟁을 벌였다.

맥주캔·소주병에 먹다 남은 라면도 여기저기

해수욕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먹다 남은 치킨이 든 박스와 과자 포장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여기서 50여 m 떨어진 곳에선 누군가 단체로 와서 먹은 것으로 보이는 맥주캔과 소주병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청소업체 직원들을 따라 백사장을 걷는 도중 온갖 쓰레기를 마주쳤다. 플라스틱 물총과 채집 도구 등 아이들의 장난감을 비롯해 각종 병과 캔, 심지어 입던 속옷이나 수영복도 나왔다.

이런 쓰레기를 치우는 장비는 목장갑과 집게, 갈퀴 정도가 고작이다. 크기가 작은 쓰레기는 일일이 손으로 집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소업체 직원들은 한 번 청소를 끝내면 허리가 휠 지경이 된다고 한다.

청소업체 직원 구모(67)씨는 묵묵히 쓰레기를 주워 담다가 누군가 먹다 남은 라면을 모래사장에 그대로 부어놓은 장면을 보자 잠깐 허리를 펴고 허공을 쳐다보면서 긴 한숨을 내뱉었다.

구씨는 "분리수거는 바라지도 않는데 치우기 힘들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차에 있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은 기본이고 텐트째로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쓰레기 분리 작업중인 청소업체 직원들 [촬영 송승윤]

널브러진 폭죽 쓰레기는 안전 위협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지 등 음식물과 관련한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지만 이에 못지않게 많은 것은 바로 폭죽 쓰레기다. 해수욕장 곳곳엔 터트리고 난 폭죽이 널려있거나 로켓처럼 모래에 수직으로 꽂혀있기도 했다.

손에 들고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일명 '스파클링 폭죽' 쓰레기도 많았다. 이 폭죽은 모래에 반쯤 묻힌 채 뾰족한 철사 부분만 겉으로 튀어나와 맨발로 백사장을 걸을 경우 발을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 보였다.

백사장에 있는 쓰레기만 치우면 청소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을왕리 해수욕장은 해변 입구마다 총 8곳에 포대를 건 쓰레기통을 마련했다. 분리수거를 유도하기 위한 재활용품 수거시설도 있다.

하지만 분리수거는커녕 포대엔 온갖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더 이상 넣을 자리가 없어 쓰레기통 주변에 하나둘 쓰레기를 던지고 가면서 이곳 주변은 쓰레기 집하장을 방불케 했다.

커피가 든 플라스틱 컵이나 음식물이 들어있는 포장 용기를 통째로 버린 경우가 많아 내용물을 버리고 분리하는 과정에서 액체와 음식물이 청소업체 직원들의 얼굴과 팔 등에 튀기 일쑤였다. 직원들 사이에선 "음식이라도 좀 버려주지"라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폭죽 쓰레기 [촬영 송승윤]

무더위 속 청소 구슬땀…평일에도 쓰레기가 90개 포대

청소업체 직원들 주변엔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늘 따라다닌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과정에서 음식물이 곧잘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곧바로 낚아채 가기 위해서다.

해수욕장에 아침 산책을 나온 듯한 피서객들은 작업자들이 쓰레기 줍는 장면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지나가거나 몇몇은 쌓여있는 쓰레기에 눈살을 찌푸리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바다에서 밀려 올라온 쓰레기도 청소 직원들의 몫이다. 밀물에 모래사장까지 밀려온 쓰레기는 썰물로 바뀌며 모래사장에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렇게 남은 쓰레기들이 백사장을 따라 띠처럼 늘어서 있어 직원들은 이를 '물띠'라고 부른다.

스티로폼과 부러진 나뭇가지, 비닐 등을 비롯해 해초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치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침이어도 무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려야 했던 청소는 약 3시간 30여분만인 오전 10시가 돼서야 겨우 끝났다. 청소를 마친 직원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인근에 있는 왕산해수욕장을 청소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전날 오후부터 이날 오전까지 을왕리해수욕장에서 나온 쓰레기는 70ℓ 종량제 쓰레기봉투 50개, 80㎏ 포대 40개 분량이었다. 휴가철이라 피서객이 분산된 데다가 평일이어서 이 정도면 적게 나온 편이라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을왕리해수욕장에 버려진 쓰레기 [촬영 송승윤]

매일 넘쳐나는 쓰레기…"성숙한 시민의식 보여야"

을왕리해수욕장은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중구가 청소용역을 맡긴 청소업체에서 평일 기준 직원 6명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변 청소 작업을 한다.

쓰레기양이 많은 을왕리해수욕장은 오전, 오후 각각 1번씩 보통 하루에 2번 청소가 이뤄진다. 쓰레기양이 많은 주말엔 12명이 한 번에 투입된다.

청소직원 김모(72)씨는 "이렇게 치우는데도 내일이 되면 또 똑같은 상황이 펼쳐져 허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도 피서객들이 잘 놀다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을왕리해수욕장에선 지난달 4일 개장 이후 평일 기준 하루 평균 종량제 봉투 100개, 포대 80개 수준으로 쓰레기가 배출된다. 주말의 경우 종량제 봉투가 120개, 포대가 100개에 달한다. 평일의 경우 2t 이상, 주말은 3t에 달하는 양이다.

청소업체를 비롯해 자원봉사자 등도 정화 작업을 위해 매일같이 해수욕장을 찾지만 피서철을 맞으며 찾는 이가 많아지자 이런 노력도 역부족이 된 상황이다. 주말이던 지난달 29일과 30일 이틀간 을왕리해수욕장은 3만8천여명이 다녀갔다.

중구 관계자는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피서철엔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내가 편하면 누군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kaav@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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