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문자, 귀찮다고 무조건 ‘수신 거부’ 하기 전에…

변진경 기자 2023. 8. 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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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문자는 위급재난·긴급재난·안전안내 문자로 나뉜다. 위급재난 문자는 60데시벨 이상, 수신 거부 불가이지만 긴급재난 문자와 안전안내 문자는 수신 거부가 가능하다.
정확하고 신속한 재난문자는 재난 발생 시 피해 축소와 예방에 도움이 된다. ⓒ시사IN 이명익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찾아오는 여름,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에 재난문자 알림이 울린다. 행정안전부, 시청, 구청, 산림청, 기상청 등에서 폭염주의보나 호우경보 발령 소식, 외출 및 야외활동 자제 권유, 산사태 위험경보, 교통통제구간 안내 등을 90자 이내 문자메시지로 알려온다. 유용하지만 가끔 성가시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같은 고빈도·고강도·예측 불허의 재난 시대, 시민의 생존에 필수 요소가 된 재난문자의 A to Z를 문답으로 정리해봤다.

■ 언제부터 얼마나 보내왔지?

재난문자가 처음 도입된 때는 2004년 12월이다. 경기·강원 지역에서 시범 시행되었다. 2005년 5월 전국 송출 체계를 갖추었으나 2020년 이전까지는 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공공데이터포털의 ‘재난문자방송 발령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한 해 발송된 재난문자는 2012년 340건에서 2019년 910건으로 소폭 늘다가 2020년 5만4383건으로 급증했다(〈그림 1〉 참조). 그 가운데 4만6881건이 코로나19 관련이었다.

올여름에는 홍수·호우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 대비 문자가 주를 이룬다. 7월12~19일 8일간 전국에서 발송된 재난문자는 모두 2089건이었다. 이 가운데 홍수·호우·폭염·산사태 등 기상 악화로 인한 재난 대비 문자가 1859건으로 전체의 88%를 차지했다.

■ 누가 무슨 권한과 기준으로 보내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38조의2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재난에 관한 예보·경보·통지나 응급조치를 실시하기 위해 필요할 때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필요한 정보의 문자나 음성 송신을 요청할 수 있다. 재난문자의 세부 사항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이라는 행정안전부 행정규칙에서 정하고 있다. 재난문자의 관리 체계와 책임자, 사용 가능한 국가기관, 재난정보 입력자의 임무 등이 기술되어 있다.

이 규정 '별표 1'에는 어떤 재난일 때 주야간 각각 어떤 기준으로 재난문자를 발송해야 할지 상세히 적혀 있다. 예를 들어 태풍의 경우 주야간·출퇴근 시간대 재난문자의 발송 기준이 모두 다르다. 출퇴근 시간대(평일 6~10시, 16~21시) 태풍주의보나 태풍경보가 발효되면 그 둘을 모두 문자로 알리지만 나머지 시간대에는 태풍경보일 때만 재난문자를 보내게끔 되어 있다. 미세먼지의 경우 경보·비상저감조치 발령 시 주간 시간대(6~21시)에는 보내고, 야간(21시~익일 6시)에는 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발송 기준은 계속 업데이트·수정되고 있다.

재난문자를 국민에게 ‘직접’ 송출할 수 있는 권한은 대개 행정안전부와 각 지자체 재난 업무 담당자가 지녀왔다. 하지만 재난 상황 전파의 신속·효율성을 위해 이러한 권한 또한 관련 기관으로 확대·이양되는 경우도 있다. ‘시간당 50㎜, 3시간당 90㎜ 집중호우 동시 관측 시’ 기상 상황을 가장 먼저 감지한 기상청이 행안부나 지자체, 언론사 등을 거치지 않고 해당 지역에 직접 긴급재난 문자를 발송할 수 있게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상청의 긴급재난 문자 직접 발송은 지난 6월15일부터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내년 5월까지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강하 기상청 예보정책과 기상사무관은 “기상청에서 관측을 통해 그곳 기상이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도 현장에 그 위험을 당장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 안타까워서 방법을 찾아보다가 재난문자 직접 발송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난해 8월8일 서울 신림동 반지하 침수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이 시스템이 있었다면 119에 최초 구조 신고 전화가 들어간 오후 8시29분보다 20분 빠른 오후 8시8분경, 기상청이 신림동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등을 안내하는 긴급재난 문자를 발송할 수 있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 재난문자? 긴급문자? 안전문자? 너무 헷갈려!

재난문자 중 어떤 것은 조용히 오지만 어떤 것은 휴대전화를 진동이나 무음으로 설정해놓았는데도 삑삑 큰 소리로 울린다. 무슨 차이일까? 재난문자는 세 갈래로 세분화되어 있다. 재난의 경중에 따라 위급재난, 긴급재난, 안전안내 문자로 나뉜다. ‘위급재난’ 문자는 공습경보·경계경보·화생방경보·경보해제 등의 상황에서 60데시벨 이상의 알림 소리로 수신되게끔 되어 있다. 수신 거부도 불가능하다. 북한이 우주 발사체 천리마-1을 발사한 지난 5월31일 서울시민들의 아침잠을 깨운 서울시의 ‘경계경보’ 재난문자가 바로 이 위급재난 문자였다.

위급재난 문자 아래 단계인 ‘긴급재난’ 문자는 테러·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등일 때 발송된다. 위에서 설명한 기상청의 집중호우 시 직접 발송 재난문자도 이 긴급재난 문자에 속한다. 40데시벨 경보음을 울리지만, 휴대전화 설정을 통해 수신 거부가 가능하게끔 되어 있다. 맨 아래 단계인 ‘안전안내’ 문자는 위급·긴급재난을 제외한 재난경보 및 주의보를 알릴 때 발송된다. 일반 문자메시지처럼 휴대전화 소리 설정 상태에 따라 알림음이 울리며 수신 거부 또한 가능하다. 코로나19 관련 '손 씻기, 마스크 끼기' 안내 등이 이런 유형으로 발송된다.

■ 다른 지역 재난문자가 왜 나한테 울려?
재난문자는 단체문자와 다르다. 다수가 같은 내용을 받아본다는 점은 같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SMS 단체문자는 각각의 휴대전화에 개별적으로 문자를 전달하는 반면 재난문자는 특정 휴대전화가 아닌 해당 지역의 모든 휴대전화로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행안부와 지자체 등이 특정 지역을 문자를 받아볼 재난지역으로 한정해 이동통신사에 내용을 보내면 이동통신사는 기지국을 통해 그 기지국과 연결된 휴대전화 가입자들에게 재난문자를 발송하게 된다. 재난문자 시스템을 CBS(Cell Broadcasting Service)라고 부르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재난문자 송출은 ‘방송(Broadcasting)’에 가깝다.

기지국이 관할하는 구역(cell)이 실제 재난 발생 지역이나 법정 행정구역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재난문자 과수신·미수신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재난문자가 필요한 지역에 가지 않거나 혹은 필요 없는 지역에도 송출되는 것이다. 지난 5월31일 아침 서울시 경계경보 재난문자를 어떤 서울 주민은 받지 못했고 어떤 경기도 주민은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오펜싱(Geo-Fencing) 등 수신기 기반 지역 맞춤형 재난문자 기능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행안부는 지난 5월24일 재난문자 송출권역을 기존 시군구에서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한글 못 읽는 사람은 어떡하나?

현재 재난문자는 한글 텍스트로만 최대 90자까지 전송된다. 다국어나 음성·이미지 서비스는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글 텍스트를 읽기 힘든 외국인·장애인·노인·어린이 등에게 장벽이 발생할 위험이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통신사에 따라 일부 다국어 번역이나 ‘쉬운 일본어’ 서비스, 심벌(부호) 이미지를 재난문자 서비스에 포함하기도 한다(〈그림 2〉 참조).

<그림 2> 일본은 심벌(부호)이 포함된 재난문자를 발송하기도 한다. 각각 쓰나미 경보 재난문자(왼쪽)와 긴급 지진 속보. NTT도코모 홈페이지 갈무리.

재난문자의 최대 글자 수 제한도 한계다. 90자 내로는 구체적인 대피 요령 등을 담기 힘들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경보 메시지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사실 현재의 송출 시스템 아래 157자까지 전송하는 데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다. 다만 행안부는 지난 6월16일 설명자료를 통해 “외산 폰을 비롯한 4G(LTE) 단말기(구형 폰)는 157자를 수신하지 못하거나 글자가 깨질 우려가 크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구형 폰 사용자는 올해 4월 말 기준 114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 재난문자, 효과 있나?

정확하고 신속한 재난문자는 분명 재난 발생 시 피해 축소와 예방에 도움이 된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긴급재난 문자의 경제성 분석(재정학연구, 2022년 2월)’을 통해 자연재해와 관련된 긴급재난 문자를 1회 더 발송하면 자연재해 피해 복구비가 약 1억원 감소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긴급재난 문자 송출에 따른 유동인구 및 효과성 분석(국립재난안전연구원, 2022. 12, 3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4.8%가 “재난문자는 재난 상황 발생 시 대처에 도움이 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재난문자의 수신 여부를 물었을 때 23%가 “수신은 받지만 확인하지 않는다”, 8%가 “수신 거부 했다”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미확인·수신 거부의 이유를 물었더니 “비슷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와서” “필요하지 않은 정보가 와서”라는 답변이 많았다. 비슷한 내용의 재난문자가 누적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재난상황에서의 공공데이터 활용에 관한 실증분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21년12월).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서도 재난문자의 효과는 달라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긴급재난 문자 송출에 따른 유동인구 및 효과성 분석’은 모바일 데이터를 활용한 유동인구 이동 패턴 분석을 바탕으로, 산불 발생 지역에서 대피를 안내하는 긴급재난 문자 발송 이후 해당 지역 주민들이 평소와 달리 언제 얼마나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분석해보았다. 울진·삼척 산불(3월4~10일), 강릉·동해 산불(3월4~8일), 합천·고령 산불(2월28일~3월1일), 밀양 산불(5월31일~6월3일) 등 총 4건 사례를 분석해본 결과, 유동인구 이동 패턴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4월11일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난곡동 일대에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대피안내 긴급재난 문자 송출 직후 특정 지역으로의 이동 패턴이 확연하게 나타난 사례(울진·삼척 산불과 강릉·동해 산불)와 대피안내 송출 시점 이후에도 평소의 이동 패턴과 큰 차이가 없는 사례(합천·고령 산불과 밀양 산불)였다. 전자는 ‘동해체육관’ ‘망상컨벤션센터’ 등 구체적인 대피 장소를 명기한 경우였고, 후자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만 안내된 경우였다. 정보가 구체적일수록 재난문자 수신자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낼 확률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분석 보고서의 연구 책임을 맡은 박근오 강남대 스마트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제 재난은 더 이상 정해진 유형 안에서 'FM대로' 생겨나는 게 아닌데 기존 틀 안에 새로운 재난 상황을 끼워맞추려다 보니 빈틈들이 계속 생기게 된다. 매뉴얼은 갖추되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개별의 재난에 특화된 맞춤형 형태로, 좀 더 유연하고 선제적으로 재난문자가 진화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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