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 세계 <6>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 흑인 인어공주와 화려한 색상의 파르테논신전…상식의 틀 깨기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2023. 7. 3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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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작 영화 ‘인어공주’. 사진 디즈니

디즈니의 고전 ‘인어공주’가 34년 만에 실사 뮤지컬 영화로 돌아왔다. 인어공주는 1989년 개봉 당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으며,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으로 이어지는 ‘디즈니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연 대표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원작 인어공주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셀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제작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이는 투명한 판인 셀 위에 여러 그림을 그리고 카메라로 한 프레임씩 촬영한 후 정상 속도로 재생시켜 움직임을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과거 수많은 셀 위에 이차원의 모습으로 갇혀 있던 인어공주는 이제 최첨단 블루 스크린 환경에서 가상의 수중 공간 속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현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바젤 사무소 건축가

롭 마셜(Rob Marshall) 감독은 “바다 왕국은 우리의 손으로 만든 마법의 세계지만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서 “수중 공간을 실사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밝혔다. 감독의 실사화 과정은 등장한 캐릭터에 생생한 감정과 움직임을 주입하면서 감상자의 경험을 깊게 확장시킨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연출 방식에 대한 재해석이 뒤따른다. 대표적인 예로 제62회 오스카상을 받은 인어공주의 주제곡 ‘언더 더 시(Under The Sea)’와 함께 나오는 한 장면을 들 수 있다. 이 곡은 빨간 집게발을 한 세바스찬이 인간을 동경하는 인어공주 에리얼에게 인간 세상보다 바다 밑이 훨씬 행복한 곳이라고 설득하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봉고, 팀파니, 셰이커 등으로 각색된 흥겨운 리듬을 배경으로 황홀한 만화경 같은 바닷속 풍경을 여행한다. 파란 물속에서 자유롭게 회전하고 솟아오르며 하강하는 에리얼의 주변으로 완벽하게 실사화한 산호초와 수중 동물의 다채로운 색채가 폭발한다.

여기에서 원작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원작에서는 노래의 가사 내용처럼 물고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세바스찬이 수중 밴드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가운데 가자미가 베이스를, 농어가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식이다. 반면, 실제 외관을 가진 수생 동물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설정은 현실감을 흩트리며 어색한 장면을 만든다. 대신 영화는 발을 두드리는 바다거북, 흔들리는 갯지렁이, 솟아오르는 야광 해파리로 구성된 댄스파티를 연출한다.

2023년 신작 영화 ‘인어공주’. 사진 디즈니

원작 훼손 논란

바닷속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는 ‘언더 더 시’의 가사는 불행하게도 현실이 됐다. 영화는 개봉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원작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중심은 에리얼 역에 캐스팅된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Halle Bailey)였다. 1989년 인어공주는 빨간 생머리의 백인 여성인 반면, 2023년의 인어공주는 갈색 레게 머리의 흑인 여성이다. 대중은 고전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와 그에 따른 이유 있는 각색은 환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에리얼 고유의 이미지가 맥락 없이 변경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크게 분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확산한 해시태그 운동인 ‘나의 에리얼이 아니다(#NotMyAriel)’가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인어공주의 피부색과 외모가 영화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본질과 별개의 요소라는 것이다. 영화는 인종을 초월한 사랑, 우정 그리고 주체적인 삶과 모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캐스팅을 비판하는 여론은 1989년에 각인된 에리얼의 이미지를 영화의 본질보다 우선시한다. 이렇듯 개인이 어떤 대상의 본질이라고 믿는 이미지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본질임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파르테논신전. 사진 위키피디아

이미지에 가려진 본질

건축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바로 19세기의 파르테논신전을 둘러싼 다채색 논쟁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고대 그리스 미술의 최고 절정으로 손꼽힌다. 오랫동안 예술사학자들은 빛나는 대리석의 ‘순수한 백색’ 이미지가 고대 미술의 숭고한 본질을 대표한다고 여겨왔다. 이러한 신념은 19세기 초에 영국미술관이 파르테논신전의 일부, ‘엘긴 대리석상(Elgin Marbles)’을 들여올 때, 비누와 산성 용액으로 두 차례 세척하는 일까지 초래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영국 수정궁 박람회장에서 건축가 오언 존스(Owen Jones)가 파르테논신전의 벽면 모형을 채색 복원해 전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전시물은 ‘프리즈(Frieze)’로 불리는 신전의 상부 장식벽으로서, 아테네의 연례 축제를 묘사하는 사람과 말의 형상이 조각돼 있었다. 존스는 고대 문헌과 관련 유물 자료 등을 토대로 흰 대리석 부조 위에 붉은색, 파란색, 검은색, 분홍색 등의 화려한 색상을 입혔다. 강렬한 색채로 뒤덮인 신전의 모습은 당시 고대 미술의 본질이 엄숙하고 꾸밈없는 이미지라는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존스는 당시 논란을 향해 ‘수정궁 그리스관의 채색에 대한 해명(1854년)’이라는 소책자를 출판했다. 책에서 철학자 조지 H. 루이스(George H. Lewes)는 다음과 같이 채색 비판론자들에 대해 기술했다. “그리스인이 조각상에 색칠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들이 그리스인은 현실이 아닌 이상을 지향했다고 믿는 데 반해, 조각상을 색칠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채색 복원된 파르테논신전 모형. 사진 Ancient Athens 3D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상식 속에 각인된 파르테논신전의 순백색 이미지는 2500년 전의 본질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대 문명을 상상하고, 믿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퐁피두 센터. 사진 위키피디아 커먼스

맥락이 요구되는 혁신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1977년 개관 당시 외관으로 인해 많은 비평을 받았다. 철제 기둥과 트러스 구조,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다양한 설비 배관이 고스란히 노출된 공장 같은 박스 건물이 주변의 전형적인 파리 도시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디언’의 한 미술 평론가는 “이 끔찍한 물체를 덩굴로 덮어 가리고 싶다”고 비판했고, 르 피가로(Le Figaro)는 “네스호에 괴물이 있다면, 파리에는 퐁피두 센터가 있다”며 혹평했다.

하지만 상식의 틀을 깨는 디자인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맥락과 명확한 지향점이 존재했다. 당시는 예술의 형식이 급변하던 시기였고, 건축가에게는 학제 간의 융합과 복합적인 문화 활동을 촉진하는 공간의 설계가 요구됐다. 설계자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렌조 피아노(Renzo Piano)는 건축물의 모든 기능 요소를 외부로 계획하면서 내부의 기둥을 삭제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열린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군중과 예술가들로 붐비는 전면 광장과 탁 트인 도시 전경을 제공하는 투명 에스컬레이터와 전망대는 이 같은 개념을 강화한다. 현재 퐁피두 센터는 하이테크 건축의 독보적인 선례이자, 파리 시민이 자랑하는 랜드마크다. 모든 혁신은 맥락과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 인어공주에서 디즈니가 반론으로 제시한 ‘다양성의 추구’가 캐스팅 논란을 쉽게 잠재우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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