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18) 건국대 주장 박상우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

조형호 2023. 7. 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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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들의 美생을 위해’ 2023 KBL 신인드래프트를 빛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자.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열여덟 번째 미생은 건국대 주장 박상우(F, 194cm)다. 팀이 원하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은 박상우의 농구 인생을 살펴보자.

#키가 작아 농구를 포기했던 꼬마, 3년 만에 다시 농구공 잡다
박상우는 비봉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체육부장을 도맡을 정도로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엘리트 농구를 접하기 전 3학년 초반까지 단거리 육상선수였지만 하지만 학교 내 육상부가 사라졌고, 그는 자연스레 농구를 접하게 됐다.

“육상부가 사라지고 그냥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날 체육선생님이 운동 잘하는 애들을 다 강당에 모으셨어요. 그리곤 농구 좋아하는 사람 손 들으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더니 엉겁결에 농구부 창단 멤버가 됐죠(웃음). 돌이켜 보면 친한 친구들끼리 농구하고 함께 정리하고 하교하는 길이 정말 기억에 남아요.”

농구선수를 꿈꿨던 박상우의 초등학교 졸업 당시 신장은 160cm도 채 되지 않았다. 신체적 한계를 느낀 그는 농구 인생을 포기하고 일반 중학교로 진학을 선택했다. 이후 스포츠 클럽 혹은 친구들과 취미로만 농구를 즐겼다. 가슴 한 켠으로 엘리트 농구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지만 유난히 작았던 박상우에게 농구선수의 길은 유독 험난해 보였다.

“키가 작아서 농구선수의 길을 포기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엄청 컸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 앞에 설 때마다 냉장고가 점점 작아 보이는 거 있죠. 중학교 2학년 올라가기 직전 겨울방학에 키를 재보니 180cm를 넘겼더라고요. 거의 기적이었죠(웃음).”

“중학교 때 키가 쑥쑥 크더니 결국 중학교 3학년 때는 188cm까지 큰 거 같아요. 마침 청주신흥고 윤명수 감독님께서 다시 농구 해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왔고 엄청 고민이 되더라고요. 힘든 길이란 것도 알고, 공백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께서도 이왕 할 거면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셔서 윤명수 감독님을 찾아가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죠.”

#3년의 공백기, 어머니의 희생으로 이겨내다
다시 농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박상우는 중학교 3학년 8월부터 농구공을 잡았다. 초등학교 때 농구를 그만둔 이후 3년간의 공백을 줄이기 위해 기본기 훈련 등 기초 다지기에 구슬땀을 흘렸다. 학교도 나가지 않고 운동에만 매진했고, 또래 선수들과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유급도 선택했다.

“팀 사정상 선배들이 많지 않았어요. 운 좋게 기회를 많이 받았죠. 유급까지 하면서 열심히 했기에 더 잘하고 싶었는데 발목 인대 두 개가 끊어져 버렸어요. 근데 그때가 마침 전국체전 자격을 놓고 충주고와 평가전을 갖기 일주일 전이었거든요. 꼭 뛰어야 하는 경기였기에 수술도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경기를 뛰었어요.”

박상우의 부상 투혼으로 청주신흥고는 평가전을 승리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은 망가졌다. 수술과 재활에 매진해야 할 상태에서 경기를 뛰면서 발목에 무리가 갔다. 고등학교 때만 왼쪽 발목 두 번과 오른쪽 발목 두 차례 부상을 당했다. 부상이 잦아지고 폼이 떨어지면서 경기를 못 뛰는 날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중요한 시긴데 다치기도 하고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으니까 조급해지더라고요. 그때 어머니가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머니께서 아침 6시에 저희 학교에 오셔서 제 슈팅 훈련을 도와주시고 볼을 잡아주셨거든요. 새벽 훈련이 끝나고 나서야 어머니는 곧바로 회사로 출근하셨어요. 스스로 나태해질 때마다 어머니의 고생을 상기시키면서 마음을 잡았던 것 같아요. 연습량이 늘어나니 슈팅 감각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죠.”

부상과 슬럼프 이후 힘든 시간을 이겨낸 박상우는 고등학교 3학년 시즌 전국체전 동메달과 추계연맹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종의 미를 거둔 그는 고등학교 때의 성장세를 주목받으며 건국대로 진학했다.

#코치님의 애정과 조언, 빛이 나기 시작한 박상우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대학에 가면 잘할 거라고 응원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고등학교 때까지와는 너무 달랐던 것 같아요. 운동 방식이나 기본적인 공격과 수비 모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40분을 뛰어도 다음 날 또 풀타임을 뛸 수 있었거든요. 근데 대학은 1분이든 5분이든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도 살아남기 힘들더라고요(웃음).”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는 게 당연한 건 아니지만 1, 2학년 때는 물론 3학년 중반까지 경기를 거의 못 뛰었어요. 경기 때는 벤치 지키고 훈련만 참가하는 느낌이었죠. 육체적으로 힘든 건 버티겠는데 농구도 안 늘고 기회를 못 잡으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농구선수가 제 길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더딘 발전과 경쟁에서 밀리며 스스로에 화난 박상우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삭발을 감행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팀에 필요한 부분에 집중했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이후 박상우의 출전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건국대가 8강에서 연세대를 잡고 결승까지 오른 지난 시즌 왕중왕전에서는 그의 역할이 급증했다.

“문혁주 코치님께서 애정을 정말 많이 쏟아주셨어요. 항상 방으로 불러서 조언도 해주셨거든요. 후회할 날은 오겠지만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기 위해 더 노력하라고 동기부여를 심어주셨어요.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시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너무 감사한 마음에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죽기 살기로 했던 것 같아요.”

어두웠던 대학 생활에서 팀 최초 대학리그 결승 진출과 함께 출전 시간이 급증한 박상우는 점점 빛을 보게 됐다. 특유의 성실함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올 시즌을 앞두고 주장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주장이 되니까 책임감과 부담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코치님께서 그 부담을 덜어줄 테니 농구에만 집중하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지난 시즌에 기회를 받으면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수비나 몸싸움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슛도 더 자신 있게 쏘려고 하고요.”

대학 여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박상우는 올해 KBL 신인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민다. 올 시즌 건국대의 주장직을 맡은 그는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는 것은 물론 인성을 갖춘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운동선수로서 고집도 있고 자존심도 있어야 하지만 농구는 단체 스포츠잖아요.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부분, 팀에 필요한 부분, 동료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다 이행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올바른 인성과 성실함으로 꼭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다사다난했던 박상우의 농구 인생이 제2의 출발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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