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오늘도 켜진 ‘불안 스위치’, 꺼버릴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3. 7. 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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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2)

잠이 안 올 때 억지로 자려고 하면 잠이 더욱 달아나듯, 불안한 생각은 무시하려 할수록 더 떠오른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할 때, 전날 밤엔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빨리 자야 해’라고 생각할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오히려 평소보다 늦게 잠들기 쉽다. 반대로 밤 새워 공부해야 하는 시험 전날에는 아무리 참으려 해도 잠이 쏟아진다. 내 마음대로 뭔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면 몸이 이상하게 말을 듣지 않는다.

불안이나 걱정도 이와 같다. 강제로 없애려고 하면 아무리 밟아도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무성해진다. 스위치를 끄듯 불안한 생각도 원할 때 꺼버릴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불안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지금부터 불안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겠어!”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강압적인 접근으로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불안과 싸워 이겨서 의식에서 없애버리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이미 패배가 결정된 싸움에 맹렬하게 달려드는 꼴이 된다.

이는 앞서 기사(1월 30일 자 심심토크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기사 참고)에서 설명한 ‘백곰 효과’로 살펴볼 수 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절대 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받은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백곰에 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 머릿속에서 백곰을 몰아내기 위해 백곰이 떠오르는지 집중하게 되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백곰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원리다. 이를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 한다.

즉,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오히려 늪에 빠진다.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제이슨 모저 미국 미시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불안한 사람에게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하라고 하자 혈류 속도가 빨라지는 등 뇌에 부하가 왔다. 강제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려다가 원래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과 부딪치며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진 탓이다.

따라서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첫걸음은, 불안을 비롯한 모든 생각은 스위치처럼 마음대로 끄고 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달리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다

유독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자기 잘못을 곱씹는 경향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불안한 생각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난히 불안에 취약한 유형이 있다. 매사에 자신이 잘못해서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나, 생각의 의미를 곱씹으며 쓸데없이 의미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베다니 티치맨 미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백곰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를 주제로 연구했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 126명에게 ‘내 커리어는 망할 것이다’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면 좋겠다’ 등 비관적이거나 부도덕한 생각을 최대한 억제해보라고 시켰다.

역시나 대다수가 생각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억제한 생각이 유난히 많이 떠올라 더 괴로워한 사람일수록 ‘이 생각이 자꾸 나는 건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 또는 ‘이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원인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면서 생각과 감정에 압도돼 고통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연구진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서 더 생각났다’며 상황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람들은 그닥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빈도도 남들보다 덜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 남 탓을 해버리니 속이 편했던 것이다. 자신을 달달 볶지 않고 단순하게 남 탓, 상황 탓하는 태도가 때로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안한 나를 ‘알아차리기’

불안한 상태에서는 나로부터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각에서 나의 생각을 바라보는 ‘메타인지’ 연습이 필요하다. pixabay(@leninscape)
이는 ‘불안을 없애야 한다’에서 ‘내가 불안한 생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로 관점을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쓸데없이 내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있지도 않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스스로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려면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과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물러나 ‘메타인지’를 활용해야 한다. 메타인지란 제3자의 시각으로 내 생각을 바라보는 것을 일컫는다. 불안장애 치료법의 하나인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 Commitment Therapy·ACT)’에서는 메타인지적 접근법을 강조한다.

여기서 ‘수용’이란 고통받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구나’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내 탓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구나’ ‘특별하지 않은 일에 의미 부여하면서 나를 괴롭히고 있구나’하고 자각하는 것이 메타인지다.

전쟁터에서 싸우지 말고, 전쟁터를 떠나라

수용전념치료를 소개하는 책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의 공동 저자인 스티븐 헤이스 미 네바다대 심리학과 교수와 작가 스펜서 스미스는 마음을 전쟁터로 비유하며 “전쟁터를 그만 떠나버리라”고 조언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안을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지는 싸움을 열심히 하는 꼴이다. 하지만 전쟁터를 그대로 두고 떠나버리면? 싸우는 당사자가 사라졌으니 전투는 잠잠해질 수 있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도망치라는 것이 아니다. 메타인지를 통해 전투의 관찰자가 되라는 의미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것은 전투에 여전히 참전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쉬운 비유를 들자면, 불안이라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리는 상상을 해보라. 불안하고 초조한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차에서 풀쩍 뛰어내려 저 멀리 내달리는 기차를 바라보자.

불안이라는 기차에 타고 있을 땐 자신이 기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pixabay(@cocoparisienne)
불안함이 느껴질 때마다 불안해하는 자신을 깨닫고 제3자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정신없는 전쟁터나 기차에서 탈출할 수 있다. 고통에 허우적거릴 땐 고통 안에 있다는 것조차 자각할 수 없지만, 거리를 두면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헤이스 교수는 저서에서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을 달리하면, 고통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도 변하게 된다”고 했다.

이는 명상법인 마음챙김(mindfulness)과도 이어진다. 불안이나 우울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입증된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은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에 붙잡혀 과거나 미래로 가 있는 의식을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자리로 불러와 현재의 내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만 이때는 어떤 판단이나 평가도 배제해야 한다. ‘아 또 불안해하고 있네, 한심해’ 같은 판단이나 평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집중하면서 현재 상황을 알아차리고,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전쟁터 안에서는 결코 고요해질 수가 없다. (마음챙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2022년 9월 4일 자 심심토크 ‘빌 게이츠도 한다는 마음챙김이 뭐길래’ 기사 참고)

‘나’를 ‘남’처럼 바라보기

이와 연장선에서 좀 더 쉽고 실천적인 방법도 있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며 혼잣말하면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으로 시작하며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김○○’ ‘○○아!’ 등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혼잣말하면 감정을 조절하기 수월해진다.

앞서 소개한 모저 교수의 연구팀은 또 다른 연구에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1인칭 또는 3인칭으로 말할 때 뇌 반응을 각각 살펴봤다. 그 결과 1인칭으로 혼잣말한 실험참가자들보다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한 참가자들의 내측 전두엽 부분이 덜 활성화됐다. 내측 전두엽은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자기반성, 반추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즉,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때 심리적 고통을 덜 느꼈다. 지금 만약 “나는 지금 너무 불안하다”라고 느낀다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은 지금 불안하지만, 곧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라고 제3자를 대하듯 말해보자.

생각 속에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라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불행하다고 느낀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2010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하다’라는 연구를 보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앱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 하고 있는 행동, 생각, 기분을 기록하도록 했다. 83개국 성인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수집된 총 25만여 개의 기록이 연구에 사용됐다.

놀랍게도 참가자의 46.9%가 현재 하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절반은 정신이 딴 데 팔려있다는 의미다. 또 정신이 딴 데 팔린 사람들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불행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가사노동 같은 재미없는 활동을 할 때조차도 정신을 딴 데 두고 사는 사람들보단 행복하다고 느꼈다. 반대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데이트 등 즐거운 상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며 사는 이들보단 덜 행복하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할수록 불행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1년 전에 무슨 걱정 하고 살았지?

쉽지 않지만 희망은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오늘 무슨 걱정을 했는지 금방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걱정과 불안은 순간을 지나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런 걱정들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확률은 매우 낮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91.4%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불안을 느끼는 일 가운데 1/10 정도만 실제로 나타난다. 심지어 이 중에서도 약 1/3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고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그냥 잊어버려”라고 충고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안은 싸워 이겨서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외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불안한 상태를 ‘직면’해야 한다. 3인칭 혼잣말이 뻘쭘하다면 글로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순히 ‘기분이 나빴다’ ‘오늘 짜증이 났다’ 같은 서술이 아니라, ‘~을 느꼈다’ ‘~라고 생각했다’ ‘~라고 이해한다’ 등 자신의 감정을 통찰하는 서술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잠들기 직전에는 뇌가 깨어나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되도록 취침 직전은 피해야 한다. 물론 명상이나 혼잣말, 글쓰기, 현재에 집중하기 등 앞서 소개한 많은 시도를 하더라도 여전히 불안하고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개인사와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위해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아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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