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하던 노인들 목숨 앗아간 ‘살인 폭염’…이틀 새 8명 사망
밭일 하던 노인 등 이틀새 8명 숨져
폭염·호우 ‘도깨비 날씨’ 원인
태풍 ‘독수리’ ‘카눈’ 中 향해 북상
韓에 열기·수증기 불어넣어 ‘찜통’
30일 서울·경기 등선 호우주의보
지하철 1호선 한때 운행 중단도
기상청 “폭염·열대야 한동안 계속”
유명 산림도 북적… 야영장 만실
도심 쇼핑몰, 카페 등 시민 몰려
유통가, 냉감 제품 등 판매량 쑥
각국도 극한 더위 ‘신음’
전국에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30일 행정안전부와 각 시·도에 따르면 장마가 끝난 뒤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온열질환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폭염 속 농사일을 하다 숨진 사례가 잇따랐다.
전날 오후 9시58분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밭에서 70대 남성이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같은 날 문경시 영순면에서 밭일을 하던 80대 여성도 숨졌다. 김천시·상주시에서도 각각 80대, 90대 사망자가 나오는 등 사망자가 주로 경북에 집중됐다.
온열질환이 주로 발생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4시다. 전문가들은 해당 시간엔 되도록 외출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행안부는 이날 각 시·도와 관계 부처들에 고령 농업인을 비롯한 폭염 3대 취약 분야 대책 추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했다. 31일에도 폭염 대책 긴급점검회의를 연다.
장마가 끝난 직후부터 전국이 불볕더위에 끓고 있다. 더운 공기 덩어리인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확장한 데다 태풍도 연달아 북상하며 우리나라로 열기를 불어넣는 탓이다. 여름철 불안정한 대기 탓에 일부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강한 국지성 소나기도 쏟아졌다. 기상청은 당분간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30일 기상청에 따르면 충청권과 경북 전역, 수도권과 남부 지방 대부분에 폭염 경보가 발효됐다. 다음 달 9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특별한 비 소식 없이 낮 최고기온이 30도 중반까지 오르는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제주도에 다음 달 3∼4일 비 예보가 있으나 나머지 지역은 낮 시간 소나기 가능성 외에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겠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20일부터 지난 28일까지 올해 온열질환자는 총 938명으로 이 중 178명은 장마가 끝난 지난 26일 이후 발생했다. 전날 경북에서만 밭일하던 70∼90대 노인 4명이 숨졌고, 경남에서도 농사일을 하던 2명이 숨졌다. 노인뿐 아니라 광주에서는 전날 광주 북구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A(14)양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 관람을 위해 표 구매를 하던 A양은 갑자기 구토와 어지럼증 등 열사병 증상을 보여 119구조대의 냉찜질 등 응급처치를 받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국으로 향하는 제5호 태풍 ‘독수리’와 제6호 태풍 ‘카눈’도 이번 여름을 더 무덥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5호 태풍의 오른쪽 반원에 속했고 예상 경로상 6호 태풍 북상 시에도 오른쪽 반원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 저위도의 뜨거운 공기를 품고 발달한 태풍은 북상 과정에서 열기와 수증기를 우리나라로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태풍으로 인해 남쪽으로부터 열기가 계속해서 공급된다”며 “6호 태풍 경로에 변동이 있더라도 우리나라는 태풍의 오른쪽 반원에 속할 것으로 보여 열기와 수증기 공급은 계속돼 더위가 지속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고기압이 평년과 다른 특징은 없지만, 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이 같은 더위는 당분간 지속된다”고 예보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는 찜통 더위가 이어진 30일, 전국의 유명 해수욕장과 물놀이장, 축제장 등은 여름휴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피서를 이미 다녀왔거나 아직 가지 않은 시민들은 도심 곳곳의 하천이나 수영장, 실내 쇼핑몰, 카페 등에서 더위를 피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폭염 속에 유통·가전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피서객으로 북적였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가족·연인·친구 단위 피서객들은 바닷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파도가 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전날 해운대해수욕장을 비롯한 부산 7개 공설해수욕장엔 57만8000명이 몰렸는데, 이날도 비슷한 인원이 찾았을 것으로 추산됐다. 강원 동해안의 해수욕장들도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피서객이 몰려들었다. 인천 을왕리·왕산해수욕장 등 수도권과 가까운 서해안의 해수욕장들 역시 물놀이를 즐기러 온 시민으로 가득찼다. 대부분 해수욕장이 ‘물 반, 사람 반’을 방불케 했다.
경기 용인시의 ‘캐리비안베이’ 등 유명 워터파크들도 극성수기를 맞았다. 캐리비안베이 입장객들은 형형색색의 구명조끼를 입고 넘실대는 야외 파도풀과 인기 놀이기구인 ‘메가스톰’, ‘타워부메랑고’, ‘아쿠아루프’ 등을 즐겼다. 영남권의 대표 물놀이시설인 김해시 롯데워터파크에도 수천 명이 몰렸다. 경기 시흥시의 인공 서핑장 ‘웨이브파크’나 가평군의 수상 레저시설들에서는 서핑을 하거나 수상스키, 물놀이기구 등을 타며 더위를 식히는 젊은이가 적잖았다.
기온이 상대적으로 서늘한 산지를 찾는 관광객도 상당수였다. ‘더위사냥축제’가 한창인 강원 평창군 땀띠공원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몰려 물싸움을 하거나 양동이 물폭탄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전북 정읍시 내장산과 무주군 덕유산, 충북 보은군 속리산, 제천시 월악산 등 유명 산들에도 행락객의 발걸음이 잇따랐다. 야영장들도 만실을 이뤘다.
서울 등 대도시 도심에선 시민들이 그늘이 있는 벤치나 하천, 분수대로 모여들었다. 대형 쇼핑몰이나 카페 등을 찾는 시민도 많았다. 이날 가족과 함께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식사와 쇼핑을 즐긴 이모(38)씨는 “휴가가 아직 2주 남았는데, 집에 있긴 그렇고 밖은 너무 더워서 낮 시간을 보낼 곳을 찾다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분수대를 비롯한 도심 곳곳의 분수대에선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소리가 새나왔다. 내달 20일까지 반포종합운동장과 용허리근린공원 등 2곳에 ‘서리풀 물놀이장’과 곳곳에 동네 물놀이터, 오는 9월30일까지 관내 6개 공원에 바닥분수 등을 운영하기로 한 서초구처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지역 주민을 위한 물놀이시설 설치에 나서고 있다.
‘지옥의 주간(settimana infernale)’.
최고 기온이 46도를 넘나들었던 지난주를 가리켜 이탈리아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식물원에서는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마저 폭염을 버티지 못하고 말라 죽어 가고 있다. 역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될 7월의 열기는 8월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29일(현지시간)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피닉스 식물원의 사구아로 선인장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폭염과 계절풍(몬순)의 부재로 썩어 들어가고 있다. 선인장은 낮에 받은 열을 기온이 내려가는 밤 시간과 비·안개를 이용해 식히는데, 열대야가 지속하고 비도 내리지 않아 과도한 열기를 빼내지 못한 사구아로 선인장이 결국 질식·탈수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례 없는 파괴적인 더위가 이어진 7월 한 달은 174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한 달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대다수 기상학자들은 다음 달에도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김주영·윤준호·박유빈 기자, 광주=김선덕 기자, 이지안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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