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70년 다시 꿈꾸는 미래] 맥아더의 ‘This Man’ 평생 조국에 몸 바친 전쟁영웅 재조명

박지은 2023. 7.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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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첩보작전 ‘혁혁한 공’
미 정부 한국전쟁 4대영웅 선정
결정적 첩보 국군 큰 신뢰 얻어
군인 10만명 생명 살렸다는 평가
전역 후 강릉·속초시장 등 역임
고 김동석 대령 강원과 특별한 인연
▲ ‘전쟁영웅’ 고 김동석 대령이 여흥만, 여도, 웅도, 모도 등 36지구대 작전지역 현지 순찰을 하던 모습이 기록된 사진.

202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정전체제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유엔군 초대 총사령관을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함께 ‘한국전쟁 4대 영웅’ 중 한명으로 꼽히는 강원 연고의 고(故) 김동석 대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전쟁 당시, 김 대령의 결정적인 첩보를 받아본 맥아더 장군은 김 대령을 “This M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미국정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영웅은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매슈 리지웨이 장군, 백선엽 장군, 그리고 김동석 대령이다.

고 김 대령은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이다. 그는 대한민국 군인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광복군으로 복무했으며 국군으로 편입한 이후 6·25 전쟁에 참전했다. 첩보작전과 야전에서 많은 공적을 세워 미국 정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받았다. 딸은 가수 진미령이다.

▲ 2005년 10월 26일‘This man 전쟁영웅 김동석’의 출판기념회에서 가수 진미령이 아버지 김동석 대령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
▲ 가수 진미령이 고2때 아버지 김동석 대령,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고 김 대령은 강원도와 인연이 매우 깊다. 관선시절 당시에 제12대 삼척군수(1961년 10월 15일~1963년 7월 18일), 제7대 강릉시장(1963년 7월 19일~1963년 10월 13일), 제2대 속초시장(1963년 10월 29일~1964년 8월 26일)을 지냈다.

그의 활약상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면 늘 회자된다. 특히 정전 70주년인 올해엔 한미정상회담(5월)을 통해 고 김동석 대령 등이 미국 정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받은 사실이 집중 부각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고 김 대령은 광복 직후 김구 당시 비상국민회의 부의장의 수행비서와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194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국군으로 재입대했고 임관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수도경비사령부 제17보병연대 중대장으로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1950년 7월 17일~25일까지 조선인민군 제15사단 제45연대를 경북 상주군 화령장 일대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전멸하는 공을 세워 제17보병연대 연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했다. 그는 1950년 7월, 강화도와 경기도, 인천시를 통해 서울로 잠입한 북한군의 위치와 현황 등 고급정보를 유엔군사령부로 발송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장교로서 서울에 주둔하던 미합중국 육군 제8군 사령부 정보연락장교로 이동해 서울 탈환 작전에 필요한 첩보 업무를 이어갔다.

▲ 과거 미 2사단이 의정부에 주둔하던 시절, 김동석 기념관이 있었다. 사진 제공=진미령

고 김 대령은 1952년 8월, 조선인민군 제17사단장 취임식에 참석하는 김일성을 생포하기 위해 취임식장에 잠복했으나 김일성이 이른 새벽에 떠나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놓친 아쉬움을 겪기도 했다. ‘정보부대의 전설’로 통한 그는 육군 첩보부대에서 지구대장 임무를 수행하며 작전에 필요한 결정적인 첩보를 수집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는 맥아더 장군에게 즉시 보고되면서 맥아더 장군과 유엔군 내부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큰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맥아더 장군은 김 대령을 “This Man” 으로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특히, 고 김 대령은 1952년 육군 첩보부대 제36지구대장 임무를 수행하며 동해안 연선의 첩보작전과 북파공작 임무를 지휘했다. 1954년 2월엔 강원도 통천군 원산만으로 침투해 인민군 사단장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또, 1959년 육군 특무부대 정보과장을 거쳐 이듬해 육군 특무부대가 육군 방첩부대로 개명하자 대공과장으로 이동했고, 1961년 중앙정보부 정보처장으로 근무하다가 전역했다. 또, 그는 UN군 10만명 이상,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수십 명의 생명을 살렸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미군 군사(軍史)에 나오는 분석으로, 당시 8군 사령관 마크 M 클라크 대장의 회고록 《한국전쟁비사-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에도 비슷한 평가가 실려 있다.

▲ 지난 4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K-POP 광장 전광판에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알리는 홍보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 대령은 전역 이후엔 삼척군수, 강릉시장, 속초시장을 거치며 강원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후엔 목포시장, 수원시장 등을 지냈다. 또, 이북5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함경북도지사로 재직했다. ‘전쟁영웅’, 고 김동석 대령은 2009년 3월 26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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