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비용 명세서]④ 필수코스 된 ‘호텔 프러포즈’...100만원대 패키지 ‘불티’

이현승 기자 2023. 7. 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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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급 호텔, 100만원대 프러포즈 패키지 출시
“코로나 거치며 호캉스 문턱 낮아져... 문의 증가”
50만원짜리 출장 꽃 장식에 반지는 200만원대
日선 반지 대신 신혼집 지분 교환하기도

지난 4월 한 달간 혼인 건수는 1만4475건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같은 달 기준)를 기록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결혼 비용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부담으로 여기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허례허식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에 프러포즈부터 결혼식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각종 이벤트가 젊은 층의 트렌드가 되면서 결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업계의 상술과 소셜미디어에 결혼 사진을 올리며 과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예비 부부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부추긴다. 조선비즈는 기형적인 결혼 비용이 나오게 된 이유를 결혼 준비 과정을 따라가며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서울 도심에 있는 호텔을 2~3개월 전에 예약하는 손님이 많지 않은데, ‘타임리스 로맨스(timeless romance) 패키지’ 상품은 10월까지 예약이 들어와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5성급 호텔 ‘조선 팰리스 강남’ 관계자)

조선 팰리스 강남이 지난 4월 선보인 ‘타임리스 로맨스’는 프러포즈 하려는 연인들을 위한 패키지 상품으로 △객실 1박 △생화 부케 △레스토랑 조식 2인 △와인 1병 △커피·쿠키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가격은 가장 인기 있는 객실 타입(그랜드 마스터스 스위트) 기준으로 143만원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에 대한 문의는 꾸준히 들어온다”며 “프러포즈는 일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이벤트라는 생각도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거치면서 호캉스에 대한 허들(장벽)이 확 낮아져서 도장 깨기처럼 5성급 호텔에 다니는 커플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5성급 호텔에서 결혼반지와 별개인 프러포즈 반지를 건네는 고가의 프러포즈 문화가 국내에서 확산하고 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특급호텔 한두 곳이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을 출시하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모든 5성급 호텔이 비슷한 구성의 상품을 매년 내놓고 일부 비즈니스호텔도 가성비 프러포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가격은 어떤 객실에 묵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소 80만원대에서 최고가로는 2000만원이 넘는 상품도 있다.

한국식 프러포즈의 특이점은 이미 결혼하기로 한 사이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약혼이나 결혼하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허락을 구하려는 취지의 서양식 프러포즈를 본떠 왔지만 국내에선 결혼식장까지 다 잡아놓고 그 직전에 해야 하는 통과의례로 변질 됐다. 예비 신랑·신부들은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하는 분위기라서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그니엘부산의 프로포즈 패키지 '이터널 프로미스' 객실 내부. / 호텔롯데 제공

◇ 호텔 패키지에 출장 꽃장식, 반지까지 준비하면 400~500만원

호텔롯데의 5성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이 특별한 날 이벤트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이터널 프로미스는 2분기 판매 실수가 1분기보다 40% 증가했다. 이 상품은 객실에 ‘Would you be my love?’라는 문구를 적은 풍선을 달아주고 꽃· LED 양초로 방을 꾸며준다. 반지를 넣을 수 있는 꽃 박스와 샴페인 1병, 초콜릿을 제공해 특히 프러포즈하려는 예비 신랑·신부에게 인기가 좋다. 1박 최저가가 150만원이며 객실 입구 주변에 풍성한 꽃길을 만들거나 침대 위나 욕조에 꽃잎 장식을 할 경우 가격이 올라간다.

서울 용산구의 그랜드 하얏트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등 도심 내 5성급 호텔도 비슷한 구성과 가격대의 프러포즈 패키지를 판매 중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서울 도심 호텔들은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왔는데 코로나 기간 여행길이 막히면서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 상품을 세분화해서 출시하기 시작했다”며 “이때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된 예비 신혼부부들이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생기면서 프러포즈 패키지를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래픽=손민균

호텔에서 제공하는 꽃장식 서비스가 워낙 비싸다보니, ‘출장 꽃장식’ 서비스 전문 업체도 생겨났다. 네이버에서 ‘프러포즈 출장 꽃장식’을 검색하면 100여 개 업체가 나온다. 이들은 ‘시그니엘서울 프러포즈 꽃장식 출장’ 등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판매하며 가격은 30~50만원이다. 호텔에선 내부에 플로리스트가 상주하는 만큼 이런 서비스를 대놓고 허용하거나 반기진 않지만 고객들의 수요가 있는 만큼 금지하진 않고 있다. 업체들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객실 내부에 꽃장식을 해준 뒤 스스로 수거해 간다.

요즘 프러포즈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것이 프러포즈 반지다. 결혼반지와 별도인 프러포즈링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앤코, 까르띠에 기준으로 200~300만원대다. 프러포즈 반지로 인기가 있는 티파티 밀그레인 밴드 링 가격은 207만원이다. 같은 브랜드 다이아몬드 결혼반지인 티파티 하모니링은 455만원인데, 즉 결혼을 위한 반지값으로만 600만원이 넘어가는 돈을 들여야하는 셈이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호화로운 프러포즈를 인증하는 문화가 과소비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호텔 프러포즈를 태그한 게시물은 5만개가 넘는다.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유진형(35) 씨는 “여자친구도 호텔 프러포즈를 크게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오히려 돈이 아깝다고 얘기해 왔는데 막상 결혼할 때가 되고 지인들의 SNS 인증을 보더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주변에서도 프러포즈 제대로 안 하면 평생 고생이라고 조언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 일본에선 반지 대신 ‘신혼집 지분’ 교환... 한국도 간소화 필요성

일본에선 최근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젊은 층들이 고가의 프러포즈를 당연시하던 분위기를 바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결혼 정보 사이트 ‘모두의 웨딩’의 올해 2월 조사 결과 ‘약혼반지를 받지 않았다’고 밝힌 신부의 수는 31.1%로 전년 대비 4.4%포인트 상승했다. 그동안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동경하는 여성이 많았고 월급 3개월 치가 약혼반지의 적정 시세로 불리기도 했으나 평소 착용할 기회가 많은 목걸이, 손목시계를 주고받거나 신혼집 아파트의 지분과 가구로 대신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부동산업체 오픈하우스그룹은 올해 초 신혼부부를 위한 서약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변호사의 감수를 거쳐 구입할 집의 지분을 파트너에게 증여하는 서비스다. 이를 기획한 회사 관계자는 “주변에서 ‘비싼 약혼반지나 화려한 결혼식은 필요 없다’는 의견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커플을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처럼 한국의 프러포즈도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프러포즈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주로 남성들의 부담을 키워 결혼을 쉽게 결심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장인 박 모(36) 씨는 “동년배 친구들 대부분 프러포즈며 선물 부담으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다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비교에 비교를 하니 대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이 원래 여유롭지 않은 이상 빤한 월급을 받으면서 결혼을 위해 큰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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