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 ‘동 주민센터가 생활민원 처리’…“주민과 거리 가까워져”

서울앤 2023. 7. 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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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15개동 주민센터, 3월부터 소규모 생활민원 직접 해결
상시순찰 구역 정해서 선제 대응…동별 1천만~1400만원 예산

[서울&] [커버스토리] 동장·직원들, “‘민원 처리 빨라졌다’는 주민 반응에 보람 느껴”

중곡4동, 보행로 개선 등 예산 98% 써

자양1동, ‘저장강박 의심 가구’ 해법

화양동, 화재 위험 고립가구에 소화기

“인력보강, 예산 항목 조정 등 필요해”

지난 3월부터 광진구 15개 동 주민센터가 ‘동 지역책임제’ 시행에 따라 간단하거나 긴급한 생활민원을 직접 처리한다. 광진구는 올해 1억8천만원의 예산을 마련해 동별 1천만~1400만원을 배부했다. 동 주민센터는 민원이나 순찰 등으로 파악한 문제를 처리한 뒤 구청 담당 부서와 공유한다. 지난 20일 오후 자양1동 장독골어린이공원에서 한 주민이 순찰 중인 이근묵 자양1동장에게 가로등 고장으로 겪는 불편을 알리고 있다.

“너무 불편하시죠. (동 예산으로) 주문한 가로등을 받는 대로 곧 설치해드릴게요.”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면서 폭염 경보가 내려진 20일 오후. 광진구 자양1동 장독골 어린이공원 뒤쪽 주택가에 사는 70대 주민이 순찰하던 이근묵 자양1동장을 보자마자 가로등이 고장 나 얼마나 불안한지 하소연했다. 이 동장은 주민에게 불편 처리 진행사항을 알리며 안심시켰다. 자양1동을 비롯해 광진구 15개 동 주민센터는 지난 3월부터 ‘동 지역책임제’ 시행으로 자체 정비할 수 있는 단순·긴급 소규모 불편사항은 즉시 처리하고 있다.

이 동장은 직원들과 공원 주변에 물이 고인 곳이 있는지 주의 깊게 둘러봤다. 그가 들고 있는 관내 지도에는 침수 이력과 물막이판 등 수해 예방 시설이 설치된 곳들이 표시돼 있다. 공원 화장실도 침수된 적이 있고, 입구에 있는 경로당도 출입문이 길보다 낮아 침수 우려가 있어 모래주머니를 쌓아뒀다. 지도는 자양1동 주민센터가 동 지역책임제 예산으로 지난달 만들었다. 종이가 아닌 비닐 재질이라 비 오는 날 순찰 때에도 요긴하게 쓴다.

앞서 이들은 빈집 세 곳을 점검했다. 쓰레기 무단투기나 화재, 범죄 등 안전이 우려되는 곳이라 주기적으로 순찰한다. 자양전통시장도 들러 침수 방지 모래주머니가 잘 쌓여 있는지도 살폈다. 129개 점포가 영업하는 시장은 10여 년 전 침수 피해를 본 경험이 있어 상시순찰 구역이다.

다세대 주택 근처 빗물받이 상태도 점검했다. 특히 한 달 전 긴급하게 보수공사한 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차량 진입로 바닥의 깨진 시멘트 조각들이 빗물받이에 흘러들어가 폭우 때 피해가 우려된다는 민원이 있던 곳이다. 이 동장은 “이전엔 순찰하고 구청에 알리는 거로 그쳤는데, 이제는 동에서 직접 시행할 수 있어 처리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했다.

중곡4동 주민센터는 주민자치회와 함께 긴고랑길 보행로 개선사업으로 노후화된 벽면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광진구의 동 지역책임제는 소규모 생활민원을 동 주민센터가 직접 처리하는 제도다. 김경호 광진구청장이 구청과 동 주민센터 사이 소통과 현장 중심 행정을 강조하며 추진했다. 제도 시행으로 민원 처리 방식이 기존 구청 부서에서 동 현장 중심으로 개편됐다. 동마다 상시 순찰로 민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구와 동이 민원 공유 체계를 만들어 운영한다.

구는 동 지역책임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민 불편 사항을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는 예산을 올해 새롭게 만들었다. 지난 2월 추경예산을 통해 소규모 수선비성 사무관리비도 추가 편성해, 총 1억8천만원의 예산이동 주민센터로 배정됐다. 주민 수 등을 고려해 동 주민센터마다 1천만~1400만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신익준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제도 시행 4개월째인 6월 말까지 15개 동에서 7천여만원, 약 40% 정도 예산을 집행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예산을 거의 다 집행할 만큼 적극적으로 시행한 동도 있다. 중곡4동의 경우 동 지역책임제 예산 집행률이 98%에 이른다. 지난달에는 아차산 등산로로 가는 긴 고랑길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9개 구역 꾸미기 사업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 대형 화분 100여 개를 치우고 의류수거함을 정리한 자리에는 꽃길을 만들고 벤치를 설치했다. 이주연 중곡4동장은 “경사길이라 보도 경계석에 앉아 쉬는 어르신이 많아 안전을 위해 벤치를 마련했다”며 “동에서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 민원처리에 대해 주민 체감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중곡4동 주민센터는 주민자치회와 함께 시멘트 칠이 벗겨진 낡은 계단과 벽들을 밝고 따뜻한 타일로 다시 시공했다. 낙서처럼 쓰인 지하철 아차산역과 군자역 가는 길 표시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순찰에 나선 자양1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반지하 가구의 물막이판을 점검하고 무단투기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동 자체로 힘든 사업은 관계 기관과 협업해 진행했다. 앞서 4월 주민 민원이 잦았던 등산로 인근 초등학교 통학길 안전 조치로 우선 울타리 밖 경사지 무단투기 쓰레기 1t을 동 주민센터가 계약한 청소업체가 치웠다. 이와 더불어 구청 도로과에는 보안등 설치, 광진소방서에는 후문 데크길에 보이는 소화기 설치를 요청했다. 교육지원청에는 안전한 통학로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동 지역책임제로 해묵은 민원을 해결하거나 안전 위험에 선제 대응하는 동들도 있다. 자양1동 주민센터는 오랜 설득에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저장강박 의심 가구 문제를 동 주도로 처리할 수 있었다. 외롭게 홀로 사는 59살의 가구주가 지난봄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로 자양1동 주민센터에 짐을 정리해달라고 연락해왔다. 동 주민센터는 그의 마음이 바뀌지 않게 바로 청소업체를 투입해 15t의 쓰레기를 치웠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던 반려견 세 마리도 그의 동의를 얻어 입양을 보냈다.

이근묵 자양1동장은 “의사결정 단계가 줄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며 “예산이 있으니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화양동 주민센터는 고시원 10곳의 70가구에 스프레이형 소화기를 나눠줬다. 화양동은 서울에서 역삼1동 다음으로 1인가구가 많은 곳이다. 고시원이 많고 40~70대 사회적 고립 1인가구가 많이 산다. 소방청이 다중이용업소법에 따라 관리하는 고시원이 47곳에 이른다. 낡고 좁은 열악한 환경에서 숙식하다보니 화재 위험도 크다. 이태익 화양동장은 “가볍고 누구든 손쉽게 초기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으로 골랐다”며 “가구를 방문해 소화기 사용과 관리하는 방법도 알려주며 안부도 확인한다”고 했다.

순찰에 나선 자양1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반지하 가구의 물막이판을 점검하고 무단투기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동 지역책임제를 시행하면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중곡4동에서는 7~8월 두 달 동안 주민자치회와 직능단체 11곳이 책임 구역을 나눠 빗물받이를 관리한다. 여름철 집중호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담당 주민들이 빗물받이 안과 주변을 청소하고, 직접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동 주민센터에 알린다. 이주연 중곡4동장은 “250여 명의 주민이 주인의식을 갖고 나섰다”며 “단톡방(카카오 오픈채팅)으로 소통하며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화양동에서는 ‘건대 맛의 거리’ 지역 주민과 상인이 자율적으로 청소에 참여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하루 3만~4만 명이 지나다니는 유흥가인데 무단투기 쓰레기로 민원이 잦았다. 화양동 주민센터가 이달 상가에는 담배꽁초 전용 수거통을, 주택가에는 폐화분 활용 수거통을 20여 개 설치했다. 상가 상인들은 자율 청소 서약서를 쓰고 참여했다. 이태익 화양동장은 “‘내 가게 앞 청소는 내가 먼저’라는 의식을 갖는 상인들도 생긴 것 같다”며 “시행한 지 보름 남짓인데도 주변 빗물받이에 버려지는 담배꽁초 양이 절반 정도 주는 등 효과가 있다”고 했다.

‘민원 처리가 빨라졌다’는 주민들의 반응에 동 주민센터의 동장과 직원들은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중곡4동 주민센터의 박용식 행정민원팀장은 “불법 광고물 부착을 막는 방지시트 설치, 타일 벽화 조성 등 여러 분야를 동시에 추진하다보니 정신없이 바쁜데 주민들 반응이 좋아 힘이 난다”고 했다. 강윤미 주무관은 “관련 법과 제도도 확인해야 하는 등 공부를 많이 해야 해 힘들지만, 효과가 바로 나타나 성취감과 보람이 크다”고 했다.

자양1동 주민센터는 지난 6월 동 지역책임제 예산으로 침수 이력 지도를 만들었다. 침수 피해가 있었던 곳과 물막이판 등 재해 예방 시설을 지도에 표시해 순찰 때 활용한다. 종이 대신 비닐 재질로 지도를 만들어 비가 올 때도 요긴하게 쓴다.

인력보강과 예산 증액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있다. 이근묵 자양1동장은 “순찰 업무가 강화되면서 직원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렸다”며 “기존 업무에 순찰 등 부담이 늘어 인력보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주연 중곡4동장은 “올해 배정된 동 예산을 거의 소진했다”며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한 사업추진이 신속하게 이어질 수 있게 증액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예산 항목의 다양한 편성도 필요해 보인다. 이태익 화양동장은 “대부분 사무관리비로만 편성돼 다양한 주민 요구를 반영하기 곤란하다”며 “효율적으로 예산을 쓸 수 있게 항목이 조정됐으면 한다”고 했다.

광진구는 동 지역책임제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동 행정 종합평가에 성과를 반영할 계획이다. 동별 특성을 살릴 수 있게 정량 평가보다는 우수 사업 등 정성 평가에 중점을 둔다. 내년 예산도 동별 사전 수용조사를 해 동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편성할 예정이다. 김경호 광진구청장은 “구와 동의 민원 공유체계를 구축해 구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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