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목재 유전자 교정으로 친환경 종이 만든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7. 26. 15: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종이소비량이 오히려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얼마 전 TV 뉴스에서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장면을 봤다. 야당 국회의원이 자료 열람 여부를 두고 정부 산하 기관의 한 간부를 다그치자 “화면으로는 제대로 못 볼 것 같아 프린트해서 나눠 줬다”고 반박했다. 야당 의원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흥분했지만 간부의 나이대를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50대 중반인 필자 역시 웬만한 자료는 프린트로 뽑아서 읽는다. 화면에서도 파일을 보며 줄을 치고 메모도 할 수 있지만 막상 해보면 어색하고 집중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도 온라인 구독료가 훨씬 쌈에도 여전히 해외 배송료까지 내며 실물을 받아본다. 사실 논문 같은 자료는 어려운 내용이라 그렇다고 쳐도 아침이면 신문을 뒤적이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 종이 소비량 오히려 늘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의 미래 예측이 크게 빗나가고 있다. 당시만 해도 IT가 생활에 스며들면 머지않아 종이로 된 서류와 책, 신문이 사라지고 그 결과 종이 사용이 크게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감소 폭이 완만하다. 게다가 일회용품인 휴지(티슈) 사용이 급증하고 포장용 박스와 충진재 등 다른 수요가 커져 지구촌 종이 생산량은 2000년 3억2460만 톤에서 2021년 4억1730만 톤으로 오히려 늘었다. 

‘그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보다는 낫겠지...’ 이렇게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고 실제 종이가 비닐(플라스틱 필름) 대신 쓰이기도 하지만 종이 역시 그다지 친환경적인 대안은 아니다. 목재에서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갈 뿐 아니라 해로운 화학물질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제지 산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1억6800만 톤으로 전체 배출량 375억 톤의 0.45%를 차지한다.

펄프섬유 - 종이 봉지를 200배 확대한 이미지로 펄프 섬유가 엉킨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목재에서 리그닌을 없애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화학약품이 많이 쓰여 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  인류 배출 이산화탄소의 0.45% 차지

지난 14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게놈편집으로 목재의 리그닌 함량을 줄여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음을 보인 연구 결과가 실렸다.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목재의 성분과 제지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나무는 세포벽이 견고해 자체 무게와 주변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 목질부의 세포벽을 이루는 세 가지 주요 성분은 셀룰로오스와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이다. 앞의 둘은 포도당을 기본 단위로 하는 수용성 고분자이고 리그닌은 리그놀이란 페놀화합물을 기본 단위로 하는 불용성 고분자다. 

세포벽을 담장이라고 하면 셀룰로스는 벽돌이고 헤미셀룰로스와 리그닌은 벽돌을 고정하는 시멘트다. 그럼에도 둘은 큰 차이가 있는데 리그닌은 붙이는 힘이 훨씬 강력할 뿐 아니라 방수 기능도 있다. 관속식물, 물과 영양분의 이동통로인 물관과 체관이 있는 식물은 많은 세포가 리그닌 시멘트로 두꺼운 2차벽을 만든 세포벽을 지니고 있다. 리그닌의 함량은 나무 종류에 따라 목재 건조 질량의 20~35%를 차지한다.

그런데 리그닌은 종이의 질을 떨어뜨리므로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최대한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종이(표백 공정 추가)와 봉지, 골판지를 만드는 원료인 크래프트 펄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목재를 잘게 부숴 수산화나트륨, 황화나트륨 등이 들어있는 알칼리성 수용액에 넣고 끓여 리그닌을 떼어낸다. 참고로 신문지는 이런 약품처리를 하지 않아 리그닌이 여전히 많이 들어있는 펄프로 만든 종이로,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 색이 누렇게 변하고 특유의 냄새가 난다.

아무튼 목재로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매년 8억 톤이 넘는 화학물질이 쓰이고 그만큼의 폐기물이 나온다. 만일 목재의 리그닌 함량을 낮출 수 있다면 이를 없애려고 들어가는 화학물질의 양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리그닌은 목재에 강도를 부여하고 물에 젖지 않게 해주는 고분자로 단위체인 모노리그놀 의 중합반응으로 만들어진다. 모노리그놀의 생합성 경로를 보여주는 도식으로 21개 유전자와 24개 대사산물이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게놈편집으로 관련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바꿔 반응 네트워크의 흐름을 조절하면 모노리그놀의 양과 조성을 바꿀 수 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7가지 전략 골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자들은 제지에 널리 쓰이는 나무인 포플러의 리그닌 생합성 네트워크를 연구했다. 포플러는 식물 가운데 세 번째로 2006년 게놈이 해독됐을 정도로 연구가 많이 됐고 그 결과 복잡한 리그닌 생합성 경로가 거의 밝혀졌다. 이 과정에는 21개 유전자가 관여하고 24개 대사산물이 만들어져 쓰인다.

리그닌 생합성의 출발물질은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세 가지 모노리그놀(monolignol)이 만들어진다. 이들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 고분자인 리그닌이 만들어지고 각각은 하이드록시페닐(H), 구아이아실(G), 시링길(S) 단위체를 이룬다. 

모노리그놀 생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21개 가운데 최대 6개를 표적으로 삼는 게놈편집은 경우의 수가 7만에 가까워 연구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각각의 리그닌 함량, S/G 값, C/L 값, 성장률을 예측했다. 네 범주 모두에서 합격선을 통과한 347개 전략 가운데 7개를 골라 실제 게놈편집을 진행했다. 사이언스 제공

식물 종에 따라 리그닌의 함량 및 세 단위체의 비율이 다르고 이는 제지 공정에 영향을 미친다. 목재의 리그닌 함량이 적을수록, 탄수화물/리그닌(C/L) 값이 클수록, 시링길/구아이아실(S/G) 값이 클수록 펄프를 만들기 좋다. 

연구자들은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작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게놈편집 기술을 써서 포플러의 목재 특성을 제지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리그닌 생합성 네트워크 유전자 21개 가운데 최대 6개 유전자를 바꾸는 경우의 수가 무려 7만에 가까워 먼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결과를 예측했고 이 가운데 7가지 경로를 선택했다. 적게는 유전자 3개에서 많게는 6개까지 한꺼번에 바꾸는 설계다.

이렇게 얻은 174개 식물체를 6개월 동안 키운 뒤 수확해 목재의 조성을 분석한 결과 리그닌 함량이 야생 포플러의 20.9%에 비해 최대 49%까지 줄어든 개체가 있었고 C/L 값은 야생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개체가 있었다. S/G 값도 야생 포플러의 2.9에서 최대 4.0까지 커졌다. 

게놈편집 포플러 목재(파란 점)와 야생 포플러 목재(빨간 점)의 리그닌 함량과 펄프 수율을 보여주는 그래프(A)와 게놈편집 목재로 만든 종이(B).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 값들이 우수하면서도 성장이 억제되지 않은 몇몇 개체를 골라 크래프트 펄프를 만들어봤다. 그 결과 야생 포플러에 비해 펄프 수율과 생산 효율이 뚜렷하게 나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게놈편집으로 목재의 리그닌 함량을 낮추고 S/G 값을 높인다면 제지 과정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20%까지 낮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 육지의 12% 면적에서 조림되는 삼나무는 매년 1228만 입방미터의 목재를 공급하지만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이다(위).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은 게놈편집 기술로 ACOS5a와 b 유전자를 망가뜨렸고(위) 이 가운데 성공한 것으로 확인된 개체들(2-1과 2-2)은 구화에서 꽃가루(분홍색 입자)를 만들지 못했다(아래).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 꽃가루 알레르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목재 대다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자국산 삼나무에서 상당량을 수급한다. 일본 육지 면적의 무려 12%에서 삼나무가 자라고 있고 연간 목재 생산량은 1228만 입방미터에 이른다. 일본 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목재다.

일본 삼나무는 생김새도 멋있고 경제성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봄철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는 일본인 10명 가운데 4명이 시달리는 국민병으로 ‘일본삼나무꽃가루증’이라는 병명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숲·임산물연구소(FFPRI)가 주도한 일본 공동연구팀은 지난 21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꽃가루가 없는 삼나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게놈편집 기술을 써서 꽃가루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인 ACOS5를 망가뜨렸다. 

삼나무는 게놈이 110억 염기로 엄청나게 커 아직 해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관련 유전자를 콕 집어 편집할 수 있었던 건 모델 식물로 일찌감치 게놈이 해독된 애기장대와 벼에서 해당 유전자가 꽃가루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삼나무에도 해당 유전자가 있을 것이고 실제 염기서열이 거의 비슷한 유전자를 두 개 찾아 각각 ACOS5a와 ACOS5b로 명명했다.

이들 유전자를 표적으로 게놈편집을 해 얻은 개체들을 재배했고 이 가운데 유전자 네 개(2×2, 부계와 모계가 있으므로) 모두가 망가져 구화(겉씨식물의 꽃)에서 꽃가루를 만들지 못하는 개체들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일본은 게놈편집으로 만든 가바(GABA) 함량이 높은 토마토 시판을 승인했다”며 일본인들이 삼나무꽃가루증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게놈편집 삼나무가 재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지난 2021년 80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한 책에서 작업실 책상에 대해 언급한 게 생각난다. 원목으로 넓고 두껍게 만들어 엄청나게 무겁지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너무 부러워 ‘프리랜서가 되면 나도 그런 책상을 장만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여전히 압축 목재(PB보드)로 만든 책상을 쓰고 있다. 점점 게을러지고 작업 능률도 떨어지면서 받아놓은 일이 밀리고 있는 요즘 책상을 바꾸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