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페미니즘’ 영화? 잘 만들면 장땡이지[시네프리뷰]

2023. 7. 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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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류승완도 시류 따라 ‘페미니즘 영화 찍었네’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다. 영화가 어떤 지향을 가졌냐가 아니라 만듦새가 얼마나 훌륭하냐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푯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다.

제목 밀수(Smugglers)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9분
장르 범죄
감독 류승완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개봉 7월 2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외유내강
제공/배급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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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를 경신했다. 영화 속 김혜수의 연기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 ‘영화배우 김혜수’ 하면 무슨 영화가 떠오를까, 생각했다(뭐 드라마로 치면 <소년심판>(2022) 같은 OTT 드라마도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아무래도 <타짜>(2006)의 정 마담이지 않을까. 리뷰를 쓰면서 <타짜>의 제작연도를 확인했는데 세상에,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등 인터넷밈이 된 숱한 명대사를 쏟아낸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7년이나 됐다.

염정아는 또 어떤가. 이 코너에서 평론가가 리뷰를 하기도 했지만,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중년 아줌마역을 소화한 <인생은 아름다워>(코로나19 때문에 2019년 촬영해 3년 후인 2022년에 개봉)에서 한국에서 보기 드문 뮤지컬 장르에 도전했다. 전반적으로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염정아의 경우 더 빛을 본 것이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해에 촬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배우 염정아의 연기를 강렬하게 기억하게 된 작품은 <장화, 홍련>(2003)의 이지적이지만 섬뜩한 계모역이었다.

레전드 경신한 두 여배우 주연 영화

원래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사전정보를 거의 체크하지 않는다. 일부러라기보다 게을러서인데, 그럼에도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가 잘빠졌다는 ‘소문’은 그러한 게으른 기자의 귀에까지 당도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도시 군천 앞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져 생활하는 해녀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군천이라고 하지만 영화에 언뜻언뜻 노출되는 지도 등에서 보이는 도시는 전북 군산이다.

진숙(염정아 분)과 춘자(김혜수 분)는 군천 앞바다에서 해녀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1970년대 “잘살아보세~!”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천 바닷가에 들어선 공장 때문에 섭·전복 등 해산물이 못 쓰게 되자 배를 몰던 선주 진숙의 아버지에게 다른 일거리가 은밀히 제안된다. 그 건은 생필품 밀수. 일본 등지를 거쳐오는 외항선이 밀수품을 미리 방수 포장해 바닷속에 던져놓으면 진숙 등이 해녀 일을 하는 척하며 건져내 다른 중간상에게 넘기는 일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일은 꽤 짭짤했다. 코끼리밥솥, 양담배 같은 것부터 더 큰 돈이 되는 ‘금괴’로 종목을 바꾸는 순간 세관 단속선이 뜬다.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불의의 사고로 진숙의 남동생과 아버지는 사망하고, 춘자는 어수선한 틈을 타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교도소에서 2년을 보낸 진숙에게 면회 온 동료들은 그날 밀고한 당사자가 사라진 춘자 아니겠냐는 소문을 건넨다. 한편 천하의 악당으로 몰린 춘자는 서울로 올라가 역시 몰래 들여온 밍크코트 같은 걸 유통하는 지하세계에서 일하는데, 거기서 국내 밀수업계의 왕초인 권 상사(조인성 분)를 만난다. 부산 유통망이 일망타진돼 새로운 거래선을 고민하는 그에게 춘자는 자신이 있던 군천을 제안한다. 그렇게 3년 만에 춘자가 다시 군천에 나타난다. 3년 사이 배에서 일하던 꼬마 장도리(박정민 분)는 커서 군천을 지배하는 조폭 두목이 됐다. 춘자는 그를 만나 한탕을 제안한다. 한편 세관 쪽에서는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와 춘자가 군천 바닥에 나타난 것에서 수상한 냄새를 맡고 그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한다.

평가 기준은 지향보다 만듦새

영화는 타란티노 영화들이 그렇듯 불법과 탈법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삶, 그들 사이의 음모와 배신을 다룬다. 도덕적 단죄를 택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들의 밀수품 목록에 다이아몬드까지 있어도 마약이 없는 건 ‘길티플레저’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감독의 주도면밀한 선택 아닐까.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브로맨스’물이 많은데-예컨대 전작 <모가디슈>의 김윤석과 조인성을 보라-그걸 뒤집어 두 여성의 우정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 악당들은 탐욕의 노예가 된 나머지 끊임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천하의 류승완 감독도 요새 시류를 따라 “페미니즘 영화 찍었네”라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 영화가 어떤 지향을 가졌냐는 평가에서 중요하지 않다. 만듦새가 얼마나 훌륭하냐를 두고 판단하면 된다. 이 영화, 재미있다. 극장에서 볼 만하냐고? 그렇다. 푯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다.

밀수에 등장한 1970년대 노래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찬욱이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을 만들 때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듣고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렇다. <헤어질 결심>은 노래 ‘안개’가 담고 있는 분위기와 회한을 빼고선 거론할 수 없다. ‘안개’가 이 영화의 알파고 오메가다.

<밀수> 영화의 음악은 장기하가 담당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197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 1>(2003)을 찍으면서 자신이 비디오가게 점원일 때 좋아했던 홍콩 액션물들, 일본 야쿠자와 닌자 영화들을 오마주하면서 결정적인 결투 신에서 산타 에스메랄다의 ‘돈 렛 미 비 미스언더스투드(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마 이 영화를 통해 1970년대 한국 대중가요를 처음 접한 사람일지라도 음악에 ‘뿅 가버릴’ 것이다. 필자는 김추자의 ‘무인도’(사진·1974년 출시 LP판 표지)를 제대로 써먹는 영화는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류승완 감독이 그 이미지를 훔쳐내 제대로 필름으로 박았다. 축하하고 싶다. 나이트클럽 신에서는 이은하의 ‘밤차’가 진짜 1970년대 분위기를 뿜어내며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다(심지어 이은하 본인은 아니지 싶은데,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1970년대 후반의 젊은 이은하를 쏙 빼닮은 여성이 ‘밤차’를 부르고 있다). 진숙 역을 맡은 염정아가 홀로 초저녁 밤을 배경으로 뱃전에 기대앉아 노래를 부르는 시퀀스도 흥행에선 실패한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아쉬워한 감독의 배려처럼 보인다. 이 밖에도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딘지 몰라도’나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등 1970년대 배경 노래가 영화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아마 개봉하면 한동안 레트로 열풍이 불 듯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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