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 빼라” vs.”못 뺀다” 삼성생명 평촌 사옥에 무슨 일이
어반어스측 “재건축 사유로 갱신 거절 가능”
삼성생명측 “구체적 계획 고지받지 않았다”
경기도 안양시 범계역 일대 상권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삼성생명 평촌사옥’을 놓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재계약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5년전 재건축 계획을 염두에 두고 전(前) 임대인인 반도건설로부터 해당 건물을 매입한 어반어스홀딩스는 삼성생명보험이 ‘방 빼기’를 거부해 손해가 막심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삼성생명측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며 사실상 퇴거 의사가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25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사건은 2018년 10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생명은 향후 철거 및 개발사업 진행을 전제로 자사 소유 건물을 반도건설에 매도하는 동시에 임대차 계약(세일앤리스백)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5년간(2023년 11월 28일까지)이었다. 이후 2021년 8월 27일, 시행사인 어반어스가 반도건설로부터 토지와 건물을 사들였다. 임대차 계약상 임대인 지위도 그대로 승계 받았다.
어반어스측은 작년 2월 4일, 삼성생명측에 “오는 9월 철거 예정”이라며 “계약기간을 8월 26일까지로 변경하자”고 요청했다. 삼성생명은 “이전 부지와 건물 후보지로 2~3곳을 실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6월에는 “올해 말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으니 내년 3월말 정도 돼야 가능하다”고 했다. 해당 건물은 작년 5월 11일자로 건축심의가 완료됐고, 어반어스측이 6월 8일 건축허가 접수를 한 상태였다.
‘철거 일정’을 미뤄둔 어반어스측은 올 들어 “4월에 철거하겠다. 계약기간을 3월 31일까지로 하자”며 또 다시 변경요청을 했다. 이에 삼성생명측은 2월 어반어스측과 미팅을 갖고 “대체부지로 마땅한 장소가 없다. 이전 장소가 확정되더라도 최소 4개월 정도 필요하다”며 이전 지원비용을 정식으로 제안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어반어스측은 2월 20일, 조기퇴거에 따른 지원금액 10억원을 제시했다. 동시에 7월 15일로 계약 만료 날짜 변경요청을 다시 했다. 그러자 삼성생명측은 5월 25일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이후 이달 5일에도 같은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어반어스측은 삼성생명측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 7호 가목’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와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할 경우’에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절 할 수 있다. 또 반도건설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철거 및 개발 전제로 건물을 매입했을 당시, 5년 후 개발가치를 고려해 높은 금액으로 건물을 매입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거절 사유(서로 합의해 임대인이 임차인에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 제10조 제1항 제3호)에도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어반어스측 관계자는 “정당한 계약갱신 거절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사정에 비춰 삼성생명이 계약갱신을 요구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 위반(모순행위)일 뿐더러 권리남용에 해당해 위법하다”면서 “임대차보호법은 약자를 위해 있는 법인데 대기업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반어스측은 인허가 용역비만 18억6100만원을 투입했다. 건축허가 이후 2년 내 착공이 안되면 효력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이대로 삼성생명측과 재계약을 하게 될 경우, 재건축 지연에 따라 약 202억원의 손해액이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부동산시장 침체 이후로 개발 착수 지연에 의한 기대이익 감소는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반면 삼성생명측은 상가임대차법에서 정하는 임차인의 당연한 권리인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법상 6개월전에 임대인에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달 들어 갱신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특히 어반어스측으로부터 철거 및 재건축 예정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고시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계약갱신 거절 근거 조항 중 ‘임대차 체결 당시’라는 부분을 들어 “당시에 고지받은 사실이나 정황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어반어스측에 건물을 팔기 3일 전, 반도건설로부터 ‘임대차 갱신 불가, 최초 계약체결대로 개발 진행’이라는 공문을 받은데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보낸 통보 성격의 공문이다. 우리에게 회신 요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반어스가 아닌 반도건설이 보낸 것”이라고 했다.
또 올해 5월과 7월에 공문을 보낸 것은 임대차 계약만료 6개월 전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갱신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5월 공문’은 지난 4월에 신영에셋(어반어스측 자문사)으로부터 ‘계약 연장을 희망하는 경우 현재 보다 30% 높은 계약 금액을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회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7월 공문’도 법적 검토 결과, 계약 갱신 청구가 타당하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삼성생명측 관계자는 “대체 해당 건물 영업부서는 4월 신영측에 회신하면서 재계약이 연장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재건축 진행과 관련해 일정 등을 고지 받은 것도 없고 행정적 절차에 있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안내받은 것도 없다”면서 “현 시점에서 인허가도 나지 않고 진행된게 없는데 손해액 산정이 근거가 뭔지 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험업의 특성상 해당 지역에서 안정적인 영업 환경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대체부지도 최대한 알아봤지만 설계사(영업직원) 포함 54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어반어스에서 일방적으로 ‘재건축해야 하니까 나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임대인의 횡포 아니냐”고 반박했다.
해당 건물은 수도권 남부권역의 핵심도시인 안양 평촌신도시 내 범계역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GTX-C가 지나는 인덕원역과 인접해 있을 뿐더러 2026년 월곶판교선(월판선)이 개통 예정 인근 상권은 안양의 강남이라 불리는 평촌로데오 거리를 포함하고 있어 최고 선호 지역으로 꼽힌다. 빌딩 내 삼성물산 지점, 한국씨티은행 지점, 피부과의원, 법무법인 등 4곳은 이미 퇴거했고, 현재 삼성생명보험과 삼성카드, 삼성화재해상보험,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 등이 남아 있다. 삼성생명보험을 제외한 나머지는 7월말까지 퇴거 유예를 요청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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