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들 “159명 죽음에 아무도 책임 안 져…각자도생의 사회 살아야”
“헌재, 헌법이 부여한 책임 부정…죽은 사법에 애도 표한다”
특별법 통과 촉구…기자회견 중 보수단체와 충돌해 실신도
“오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부정됐습니다. 이제 유가족과 국민들은 159명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각자도생 사회를 살아가야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신청을 기각하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장관의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침에도 헌법재판소는 면죄부를 줬다. 스스로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오후 2시 ‘10·29 이태원참사 책임자 이상민 파면’이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헌법재판소 앞에 모였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탄핵심판 과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도로 반대편에는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정치 탄핵 기각’ 등 손팻말을 들고 맞불집회를 열었다.
오후 2시30분쯤 이 장관의 탄핵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족들은 말없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유가족은 발을 구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탄핵심판 방청을 마친 유가족들이 굳은 얼굴로 헌법재판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유가족들은 지난해 10월29일에 느꼈던 아픔을 오늘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국가와 행정기관은 159명의 죽음을 외면했다”며 “이번 결정으로 행정부 수장뿐 아니라 국가기관의 장은 참사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유가족들은 이 순간에 굴하지 않고 특별법을 통과시켜 참사 책임이 있는 이들을 응징하겠다”며 “이제는 탄핵이 아니라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고 했다.
기자회견 중 유가족과 보수단체 간 충돌도 있었다. 한 보수단체 회원이 유가족을 향해 “이태원은 북한 소행이다”라고 외쳤다. 유가족이 항의하자 방송 차량에 탄 보수단체 회원은 “좋은 날에 싸우지 말라. 이렇게 좋은 날에 왜 싸우려고 하느냐”고 조롱했다.
유가족들이 방송 차량에 달려들자 경찰이 제지하며 현장은 30여분간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 1명은 실신했고, 2명은 탈진 상태로 구급차를 타고 이송됐다. 경찰이 차량을 이동시킨 뒤에도 일부 유가족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이 직무대행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잘못된 권력에 대한 응징이 제대로 이뤄져야 (저런 사람들이) 없는데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 저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는 “유가족과 국민들은 오늘 죽은 사법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면서 “국민들은 이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고, 유가족들은 복귀한 이 장관이 월급을 받고 호의호식하는 것에 때때로 좌절감을 느끼고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아무 책임이 없고, 국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헌법이 사라졌다는 것”이라며 “이제 헌법적으로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 사회가 됐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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