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는 멀고 내진율도 저조… 지진 나면 넋 놓고 당할 ‘판’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더 큰 규모 단층대 존재할 가능성
한반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 아냐
대피소 안내 표지판 찾기 힘들고
해일 대피 장소는 해변에서 멀어
관리 주체 지자체는 안일한 태도
학생·주민 대피교육·훈련 흐지부지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율도 15%뿐
“학교 등 밀집시설 훈련 의무화를
20년 이상 장기 마스터 플랜 시급”
#2. 올해 4∼6월 약 두 달 간 200회가 넘는 지진이 잇따른 강원 동해안의 중심 도시 강릉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시가 지정·운영하는 지진·해일 긴급대피소인 하시동2리 마을회관은 가장 가까운 염전해변에서 2.3㎞나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동해안에서는 지진·해일 대피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아예 없는 해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안내 표지판과 실제 위치가 다른 경우도 파악됐다.
재난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특히 지진, 해일은 피해 규모가 여타 재해와는 차원이 다른 재난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새 크고 작은 지진이 관측되며 더 이상 한반도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평소 대비 실태가 중요하지만 지진·해일 대피소 안내나 관리 문제부터 저조한 건축물 내진설계비율, 형식적인 교육·훈련까지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도 ‘위험지대’… 대비는 ‘안일’
24일 기상청 날씨누리에 따르면 디지털 관측을 시작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한반도에서 매년 평균 70.6회(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관측됐다. 아날로그 관측을 했던 1978년∼1998년(매년 평균 19.1회)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한반도에서 관측 이래 가장 규모가 컸던 경주 지진(규모 5.8)과 포항 지진(규모 5.4)이 발생한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252회, 223회의 규모 2.0 이상 지진이 관측된 바 있다. 당시 인근의 원자력발전소들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인명·재산 피해가 컸다. 사상 최초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언제든 지진이 재난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지진 발생시 가장 먼저 찾게 될 대피소 관리·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관리 주체인 각 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함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이나 휴가철 인파가 몰리는 해변의 경우 위험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신보금 강릉시의원은 “동해 앞바다에서 규모 6.5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해일을 동반하는데, 육지까지 10분도 채 안 돼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런데도 일부 대피소는 해안가와 너무 먼 곳에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지진 관련 교육은 어떨까. 전국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는 ‘학교안전교육 실시 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라 △재난안전 △생활안전 △교통안전 등 7대 분야의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재난안전교육은 연간 6차시 이상 하도록 돼있는데, 여기엔 지진 같은 자연재난은 물론 화재, 폭발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교육 내용은 각급 학교 재량이다. 6차시 중에 지진 관련 교육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이와 별개로 매년 초등학교·특수학교를 대상으로 지진과 화재 대응 상황을 교육하는 ‘어린이 재난안전훈련’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참여학교는 지난해 175곳, 올해 200여곳으로 전체 초등학교(6000여개)의 3% 수준이다. 이 밖에 전국에 있는 학생안전체험관 등에 지진체험실이 있어 지진 대피 훈련 체험이 가능하지만, 의무교육이 아닌 만큼 지역·상황별로 체험빈도 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 지자체가 시행하는 지역 주민 대상 지진 대피 교육·훈련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다. 강릉시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해안가 마을을 지정해서 주민들과 지진·해일 대피소까지 찾아가는 훈련을 했었으나,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추진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의 지진 대피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교철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학교 같은 밀집 시설은 더더욱 대피 훈련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2016년과 2017년에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당시 학생들이 대피하는 장면이 방송 등에 나왔었는데, 그냥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았나. 자칫 외벽이 무너지면서 잔해에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기본적인 대피법부터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까지, 연간 한 번 정도는 꼭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재난대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여러 자연재해 중에서도 특히 지진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진방재관리과를 별도로 두고 있고, 지진안전누리집과 국민재난안전포털 등을 통해 지진 발생시 행동요령을 안내하는 등 온라인 홍보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진의 경우 피해가 한 번 발생했다 하면 워낙 크게 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에 대비하려면 권역별 위험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내진설계를 할 수 있도록 ‘국가지진위험지도’를 그리는 게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지진 연구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지금까진 전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내진설계를 해왔다”며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에야 지진 유발 단층을 찾는 조사를 전국 권역별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홍 교수는 “연구를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진행해야 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니 벌써부터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주영·구윤모·이규희·김유나 기자, 강릉=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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