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산행 양자산 문바위계곡] 서울 근교에 숨어있는 호젓한 계곡

서현우 2023. 7. 2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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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산~주어고개~앵자봉~문바위계곡 12.5km
맑고 투명한 문바위계곡의 계곡물이 빠듯한 산행으로 달아오른 젊은 산꾼들의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빠져나간다.

불볕더위에 지글지글 익은 자동차 속에 들어앉은 채 꽉 막힌 강변북로에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대체 이 대열의 맨 앞에 어떤 차가 있기에 이렇게 막히는 걸까?'

매년 여름 반복되는 이 시답잖은 투덜거림을 올해도 이어가다가 문득 이 생각을 산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었다. 뼈가 시리도록 차갑고 맑은 물을 다른 이들의 체온이 닿기 전에 먼저 극상류에서 만나고 싶었다. 제논의 역설에선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지만, 아예 출발 지점을 다르게 해버리면 될 문제였다. 능선을 타고 올라 계곡으로 떨어지면 된다.

이러한 산행이 가능한 곳이 수도권, 그것도 전철로 갈 수 있는 여주에 숨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 등산화 끈을 졸라맸다. 앵자봉 동쪽 골짜기 깊숙이 숨겨진 문바위계곡이다. 앵자봉만 오른 뒤 계곡으로 내려오기에는 코스가 짧아 이웃한 양자산을 먼저 오르기로 했다. 조금 더 진득하게 땀을 흘리고 열이 바짝 오른 상태로 계곡에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주시민인 조미옥, 조은혜씨가 거침없이 산길을 오르고 있다.

여주 대표 명산인데 지명은 제각각

경강선 곤지암역에 내리자마자 비릿한 밤꽃 냄새가 맞이해 준다. 아직 봄을 떠나보내기 싫은 건지 그윽하진 않고 무향으로 시작되는 들숨의 끝에 살짝 맺히고 만다.

여주에 살고 있는 등산 동호인 조미옥, 조은혜씨와 만나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산북면 고촌교로 이동했다. 코로나 시국 때 등산에 입문한 젊은 산꾼들이다. 산행은 양자산 남동쪽 지능선을 타고 올라 양자산 정상에 이른 뒤 주어고개를 통해 앵자봉 방면으로 넘어가 문바위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로 진행하기로 했다. 보통 주어리마을회관에서 이 지능선 중간에 올라타는 코스를 들머리로 더 선호하지만 양자산을 처음부터 오롯하게 오르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한번 땀을 세게 쏟고 벌겋게 달아오른 정수리에 차가운 계곡물을 들이붓고 싶었다.

"아니 그런데 이거 어디가 문바위계곡인지 모르겠네요."

등산로 초입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경사가 급한 묵은 산길이다.

양자산楊子山(710m)은 여주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한강이남 경기도권에서 가장 높다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데 지도상의 지명 정리는 허술한 점이 아쉽다. 출발 전 최종적으로 여러 지도를 펼쳐 놓고 비교하는데 아리송하다. 먼저 문바위계곡이 양자산 기슭에 있다고 된 지도도 있고, 각시산이란 이름도 제각각 다른 봉우리에 병기돼 있다.

"일단 정리하자면 문바위계곡은 앵자봉 동쪽, 주어사지가 있는 골짜기에서 주어리계곡으로 흘러드는 상류가 맞네요. 그런데 각시산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디에는 양자산 동남쪽에 솟은 봉우리가 각시산이라 하고, 또 봄이면 양자산 정상부의 철쭉 능선이 새색시 얼굴처럼 핑크색으로 물들어서 옛날엔 각시산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또 어떤 것은 양자산과 앵자봉을 부부 사이로 보고 각각 신랑산, 각시봉으로 불렀다고도 하네요. 여자관계가 복잡한데요."

팔각정을 지난 후 양자산 능선은 급격히 유순해지면서 걷기 좋은 산길로 변신한다.

초반부터 가파른 급경사 연속

물고기가 달리는 계곡이라는 주어계곡을 건너 시작한 산행은 초장부터 숨이 턱 막힌다. 시종일관 가파르고 묵은 산길이 펼쳐진다. 등산로 자체는 뚜렷한데 낙엽이 딱 미끄러울 만큼 얇게 깔려 있어 발이 쭉쭉 밀린다. 곳곳에 아직 굳지 않은 고라니와 멧돼지 분변이 있을 만큼 야생성도 짙다. 반면 이틀 전 덕유산 육구종주를 했다는 조미옥씨는 "몸이 완전히 등산에 적응해서 그런지 근육통이 없다"며 쌩쌩하게 올라간다.

첫 고개를 오르자 조망이 터진다. 남동쪽으로는 삼단으로 구성된 논 너머로 2029년 개통 예정인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양평~이천) 공사가 한창이다. 반대편에는 렉스필드 골프장이 보인다. 산을 깎고, 산을 뚫는 두 현장 사이에 깊은 자연미를 품은 능선을 걸어 오른다는 것이 생경하다.

그런데 양자산이 이렇게 잘 보존된 자연을 간직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영진 양평양자산산우회장에 따르면 1973년 4월 1일 치산녹화 입산금지 이전의 양자산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땔감을 제공하는 값진 보고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양자산에서 채취한 땔감은 매일 새벽 4시 나루터까지 지게로 옮겨지고, 배로 강을 건너 양평읍 삼거리 주변 나무시장에서 읍내 주민들의 땔감으로 팔렸다. 그래서 양자산도 예외 없이 민둥산이 되었지만, 산림녹화사업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문바위계곡은 길이는 짧지만 곳곳에 아기자기한 물놀이 포인트를 지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여름 피서지다.

화려한 멋은 없지만 소박하고 든든

조은혜씨는 가파른 오르막에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는 "산을 거의 1년 만에 탄다"고 했다.

"제가 코로나 백신을 1, 2차는 탈 없이 맞았는데 3차를 맞고 몸이 좀 많이 아팠어요. 열나고 발진, 트러블이 심했죠. 그래서 병원을 꾸준히 다녔는데 그때 청천벽력처럼 피부암 진단을 받았죠. 다행히 조기 발견해 잘 치료했는데 백신부작용 인정은 못 받았어요. 이제 다시 등산으로 건강 회복해야죠."

양자산은 그의 빠른 회복을 염원하며 계속 더 많은 구슬땀을 내놓기를 바라는 듯했다. 등산로는 편해지는 듯하다 다시 로프를 잡고 올려야 하는 급경사가 나오기 일쑤였다. 고도를 빠듯하게 올리고 나서야 낙엽 대신 암릉이 나오며 발이 편해졌다. 그리고 점차 등산로가 굳어지면서 숲이 울창해진다. 명품리(예전 설치된 이정표에는 옛 지명인 하품리라고 적혀 있다)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에 들어선 팔각정 이후 길이 완전히 편해진다. 하늘을 향해 길쭉길쭉하게 뻗은 낙엽송이 장쾌하고 멋들어졌다. 이 낙엽송 숲은 영명사를 품은 골짜기까지 가득 들어차 있다. 온 산을 가득 채운 새소리 사이로 은은하게 딱따구리 소리도 흘러나온다.

꿀풀이 곳곳에 솟아 있는 제1헬기장을 지나 계속 정상을 향해 오른다. 앵자봉을 마주 볼 수 있는 전망바위에 들어선 거대한 소나무가 이목을 확 잡아끈다. 발치에 작은 돌탑이 놓인 소나무는 세 갈래로 두텁게 뻗어 오른다. 앵자봉을 향해 자라던 가지는 무슨 연유인지 툭 잘리고 말았다. 암반 하나를 통째로 홀로 먹어치워 자란 그 위세가 등등하다.

여전히 정상은 멀다. 안전을 위해 박았을 말뚝은 곳곳이 뽑혀 있고, 밧줄은 설치된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올올이 풀리고 삭은 채 방치돼 있어 믿고 체중을 싣기 꺼림칙하다. 지자체가 관리하지 않은 숲길은 간만이다.

"저희도 여주 살지만 여긴 처음이네요. 그동안은 마감산만 다녔는데."

"마감산이 어디 있어요?"

"여주시청 동쪽 강천면에 있는 산인데 높이도 낮고 코스도 짧은데 일몰 맛집이라 여주 사람들이 자주 가는 산이에요."

생각해 보면 최근 화려하고, 등산로가 분명한 산만 다니는 경향이 있다. 가령 100대 명산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양자산은 어머니의 밥상 위에 있는 가지무침 같은 산이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소박하고 든든하다.

재 당일에는 문바위계곡에 비가 내리지 않아 수량이 적은 편이었다. 상류 계곡이기 때문에 우천 상황에 따라 물살이 급해질 수 있으니 입수 시 주의해야 한다.

주어리 임도와 계곡 상류 7월 중 공사 마무리

한결 편해진 길을 따라 나아가니 곧 양자산 정상이다. 양자산 정상에는 앵자봉 방면을 향해 큼지막한 데크가 설치돼 있다. 하필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질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잠시 숨만 고르고 나아간다. 50여 년 전에는 정상에 천문대가 있었고, 지금도 날씨가 좋으면 남산타워가 보인다고 한다. 정상 북쪽 송전탑이 들어선 곳에 있는 전망바위도 본래라면 굽이치는 남한강을 보여 줬을 텐데 이번엔 침묵했다.

주어고개로 내려가는 길도 급경사다. 계단도 없고 신갈나무 낙엽만 수북하게 쌓여 있어 미끄러지듯 내려서야 한다. 주어고개는 옛날 항금리 주민들이 여주로 나들이 갈 때 넘나들던 고개라고 한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한 번 더 기운을 쥐어짜서 앵자봉을 오르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촉박한 탓에 남동쪽 임도로 접속해 진행한다. 빠르게 임도를 달려 문바위계곡을 만나고자 꾀를 부린 것인데 앵자봉 아래를 휘도는 임도도 만만찮다. 구불거리면서 계속 산 위로 타고 도는 탓에 진이 빠진다. 든든히 햇빛을 가려주던 나무도 없어 진땀을 쏙 뺀다.

앵자봉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교차점에 다다르면 오르막은 끝난다. 이정표에는 주어사지까지 2km 남았다고 쓰여 있다. 이 때부터 우거져 있던 참나무 대신 낙엽송이 반겨준다. 그런데 문명의 소리가 단절돼야 할 이곳에 거친 배기음이 연신 울려 퍼진다. 여주시청 건설과에서 진행하는 수해복구 사업이 주어사지부터 문바위계곡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담당 공무원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이곳 일대가 크게 수해를 입었습니다. 7월 중에 문바위계곡을 포함한 상류 공사를 먼저 마무리할 예정이고, 주어리계곡 중류는 오는 10월부터 내년 12월까지 공사가 계획돼 있습니다."

"그런데 주어리 주민들은 이번 공사에 불만이 있는 것 같던데요. 주어리계곡을 따라 곳곳에 항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예산이 한정적이라 먼저 복구에 중심을 둔 나머지 주민 분들께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공사가 미흡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 공사가 마무리되면 주민 분들이나 물놀이 오시는 분들 모두 크게 불편을 느끼시진 않을 겁니다."

산행을 마친 후 마을길을 따라 주어리 계곡을 내려서고 있는 조미옥, 조은혜씨가 돌담에 핀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물살 급하면 깊은 곳 가지 말아야

주어사지 턱 밑을 지나치자 임도 아래로 흐르는 작은 개울들이 계속 발견된다. 이 개울들이 모여 이룬 것이 문바위계곡이다.

주어사지는 1683년 이전에 세워진 절터다. 그런데 앵자봉 서쪽의 천진암 성지와 더불어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 꼽힌다. 18세기 후반 권철신, 정약전 등이 머물며 천주교 강학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박해받던 불교와 천주교가 한 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니 당시 이 계곡이 얼마나 은밀한 오지였을지 짐작케 한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사방댐부터 무릎 위까지 오는 정도로 물장구를 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세 곳 나온다. 사방댐에서 30m 정도 내려선 농막 앞, 50m 아래 계곡이 도로 위를 지나는 지점, 계곡 초입에 있는 문바위산장 다리 밑이다. 바위들을 시원스레 핥으며 맑고 차가운 물살이 쏟아지는 와폭도 몇 곳 있다.

다만 주의할 건 우천 등으로 인해 물이 불어 있을 경우에는 계곡 깊은 곳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길이 좁아 물살이 빠른 곳이 더러 있어 위험도가 높다. 이 경우 등산으로 열이 오른 발과 머리를 잠시 식히는 정도만 추천한다.

산행길잡이

일반적인 양자산 산행은 주어리마을회관 앞에 있는 양자산등산로주차장을 기점으로 앵자봉까지 경유해 원점회귀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차량 회수도 용이하고, 코스 난이도도 적당하며, 어느 쪽을 먼저 오르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 주어고개를 통해 탈출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된다.

다만 문바위계곡은 이 산행코스에선 접근하기 까다롭다. 그래서 취재진은 양자산을 먼저 오른 뒤 주어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 코스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주어리마을회관에서 출발, 남동릉을 따라 앵자봉을 먼저 오른 뒤 주어고개 쪽으로 진행하다가 동쪽 지능선을 따라 임도로 내려서면 된다.

교통

경강선 곤지암역에서 들날머리 방면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매우 제한적이다. 945번 버스가 기점인 곤지암역 기준 1일 2회(첫차 9시 5분, 막차 16시), 946번 버스가 1일 2회(첫차 7시 35분, 막차 17시 35분) 운행한다.

곤지암역에서 산행 들머리인 고촌교까지 들어가는 택시는 쉽게 잡을 수 있다. 요금 1만5,000원 정도 나온다. 다만 반대로 곤지암역으로 되짚어 나오는 택시는 통 잡히지 않는다. 산북파출소 인근 편의점에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 주므로 참고하면 된다.

맛집

들날머리 인근에는 한방닭, 오리백숙과 생삼겹살을 내놓는 느티나무가든(031-883-0142)과 그때그집(010-3568-2951)의 손칼국수, 콩국수가 깔끔하게 먹기 좋다.

취재진은 곤지암역 앞에서 모두 해결했다.

아침 9시부터 문을 여는 돈가네 옛날김치돼지찌개 곤지암점(0507-1348-5478)의 김치찌개, 봉급날(0507-1395-4556)의 소갈비, 쫀득살 모두 가성비 좋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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